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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커버되는 지역과 운전 루트


이제 아테네를 출발해서 펠로폰네소스반도 입구에 위치한 코린쓰(Corinth)에 들어가보자. 
  
아테네에서 코린쓰로 가는 길. 그리스어로는 Korinthos.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대략 6km 정도 되는 땅으로 이어진 섬같은 반도야. 코린쓰가 바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지. 따라서 코린쓰는 고대시대부터 로마쪽에서 오는 주 교역항이자 펠로폰네소스반도와 아테네가 위치한 아티카를 오갈때 거쳐갈 수 밖에 없는 교역도시로 큰 발전을 했어. 

 
이탈리아반도에서 아테네를 더 빠르게 이어주기위해 예전부터 저 짧은 육지구간에 운하를 건설하려는시도가 여러번 있었어. 처음 시도한게 기원전 7세기 코린쓰의 왕이었던 페리안더(Periander)였고 후에 로마의 네로황제 또한 무척 적극적으로 시도를 했었어.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뚫을 수 없었던 암반때문에 실패로 돌아가고 근대에 들어와서 프랑스 회사에 의해 1893년에나 완공이 되지.

 
고속도로로 운하를 건너자마자 코린쓰로 들어가는 출구가 나와. 현재의 도시 코린쓰와 고대 코린쓰 유적지는 조금 떨어져있어. 물론 난 고대 코린쓰유적으로 향했지.
 
고대 코린쓰 유적. 코린쓰는 관능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숭배했어. 그래서 고대 그리스 시기 전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사창가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했지. 아프로디테 사원에서도 공식적으로 수많은 창녀들이 일했다고 해.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이곳으로 섹스여행을 오곤 했다고 해. 아테네처럼 저 멀리 보이는 산위에는 고대 코린쓰의 아크로폴리스가 있어. 

 
이 코린쓰는 그리스 도시 중 유일하게 로마군대에 의해 처첨히 파괴된 곳이야. BCE 143년 로마 공화정때 코린쓰는 원래 로마의 자치령이었는데 반란을 일으켜. 평소같았으면 반란만 진압하고 다시 살려두었을텐데 BCE 143년은 로마가 바다건너 카르타고를 3차 포에니전쟁으로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버렸던 해 이기도 했고 (사실 3차 카르타고 전쟁은 카르타고를 지도에서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로마가 어거지로 일으킨 전쟁이나 다를 바 없어. 이때 카르타고의 건물/기록등도 완전히 파괴되어버려 지금 카르타고에 대해 많은 부분이 잊혀졌지.), 그리스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보이던 원로들이 원로원을 구성하고 있던 시기여서 코린쓰에겐 더 안좋은 결과로 다가왔지. 
 
반란을 진압한 로마군은 모든 코린쓰의 남자를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 그래서 수백년간 이어오던 유력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코린쓰는 완전히 명맥이 끊기게 돼. 백년 후 정권을 잡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다시 도시를 재건하긴 했지만 구성원들은 다른 곳에서 온 이주민이었지.
 
여기가 고대 코린쓰 아크로폴리스의 입구 (사실 아크로폴리스는 산위의 요새라고 생각하면 돼. 한국의 산성처럼.)

 
그 앞의 주차장도 경치가 좋다.

 
조금 올라오니 성벽 입구와 주차장이 저 멀리 보인다. 이곳은 관리인은 있지만 그리스 유적지 중 몇 안되는 무료입장이 가능한 곳이야. 이곳이 코린쓰인들이 로마에 대항해 끝까지 저항하다 전멸된 곳이니 그들의 흔적을 생각하며 걸어보자.

 
산 위 절벽을 따라 성벽이 계속 이어진다. 성벽을 따라 가다보니 와치타워같은 게 나오네.


 
그 위에 올라가서 바라본 풍경

 
 
내려오면 서 보이는 나무 한그루.

 
이제 다 봤으니 다음 목적지인 BCE 1500년에 세워진 고대 미케네문명의 중심지에 가보도록 하자.
 
고대도시 미케네로 가는 길

 
 
미케네(Mycenae)의 위치. 코린쓰에서 30-40분 정도 남쪽에 위치

 
미케네는 3500년 전 고대 그리스 문명의 두 갈래 중 하나였던 미케네문명의 중심도시야. 이 미케네는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전쟁의 당사국이기도 하지. 2편의 아테네 박물관에 나왔던 아가멤논 왕의 마스크라는 것도 이곳에서 발굴되어 그 이름이 붙었는데 사실 트로이전쟁보다 200년정도 연도가 앞서는 걸로 나와서 지금은 아가멤논왕은 아닐거라고 알고있지.
 
당시 그리스엔 육지의 미케네문명, 섬지역에 미노아문명 이렇게 두개의 문명이 공존하고 있었어. 이들이 사용하던 고유문자(리니어 A, 리니어 B라고 불러)도 있는데 수백년간 그리스 암흑시대를 거치며 완전히 잊혀져서 BCE 700년 경 현재에도 쓰이는 그리스 문자가 페니키아문자를 토대로 재발명돼. 그래서 그리스는 문자를 발명했다가 완전히 잊은 후 새롭게 두번째 문자를 발명한 유일한 문명으로 기록되고 있지. 재밌는 것 중 하나는 미노아문명 중심지 크레타섬에선 처음에 리니어 A문자가 발견되다 큰 파괴의 흔적층이 나오고 뒤이어 리니어 B문자가 발견됨. 즉, 미노아문명이 이 미케네문명의 공격을 받아 미케네문명권으로 넘어갔다는 걸 역사적 기록은 없어도 고고학적 유물발굴로 알 수 있는거지.

이 리니어 문자는 태블렛에 세겨진 유물로 수도 없이 발견이 되었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해독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어. 그러다 수십년 후, 1940년, 당시 18살이었던 영국의 언어학 천재 Michael Ventris라는 청년이 해독에 성공해. 현재의 그리스어의 음운을 바탕으로 해독에 성공했다고 하니 그 당시에도 지금의 그리스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어. 해독에 성공하니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열광하지. 잊혀진 역사정보를 알 수 있게 된 순간이잖아? 하지만 태블릿들을 해독해보니 실망뿐이었어. 역사적인 사건보다는 세금에 관련되어 아무개 닭 몇마리 이런 정도의 내용만 있었다고 해. 반면 리니어 A는 그리스어계통은 아닐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직 잘 해독이 안된 상태야.

교통사고로 이른나이에 요절한 언어학천재 마이클벤트리스가 해독에 성공한 리니어 B. 

  
미케네 유적의 입구에 있는 사자문 (Lion Gate). 미케네문명에 관한 글에는 어디나 사진으로 등장하는 곳이야. 사자의 머리는 소실되었어. 이 당시만해도 아치형으로 문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 큰 돌판을 이용해 문을 만든 모습이야. 여긴 수학여행 온 그리스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어.

 
 사자문 바로 뒤엔 방과 같은 공간이 있는 데 지금 개집으로 사용되고 있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집 ㅍㅌㅊ?

 
내부의 모습들. 왕궁터와 일반인들이 살던 집들의 흔적들이 있어.


 
여기엔 지면으로 부터 깊이 18미터 지하까지 파서 내려간 cistern(물 저장소)이 있어. 안정적으로 깊이 만들었다고 당시 공학기술의 뛰어남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사진에 보이는 안내문에 써있더라.
느낌상 원래 들어가면 안되는 곳인 거 같은데, 막혀있지도 않고 애들도 나오고 있더라고. 그래서 나도 혼자 들어가봄. 

  
여기가 제일 깊은 곳의 모습. 어떤 불빛도 없어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보이는 어두움 속이었어. 기온도 낮고 소름이 돋더라. 이사진 찍고 바로 나옴.

 
미케네 유적은 잘 봤으니 다음 목적지인 스파르타를 향해 가보도록 하자.
 
스파르타의 위치. 미케네에서 1시간 반 남쪽에 위치해 있어. 스파르타인들은 무예에만 신경쓰며 워낙 검소하게 살아서 큰 건축물을 별로 안남겼다고 해. 그래서 지금스파르타에는 특별히 유적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아. 하지만 고대역사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비중이 워낙 커서 나로썬 안가볼 수 없는 곳이었어.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대부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이거든. 

스파르타 갈때 일부러 돌아서 가본 바닷가길

 
가는 길에 동네 그로서리에 들려서 과일을 샀다. 복숭아에 1.39유로라는 가격표가 있길래 한개에 그렇게 비싼가 하며 옆에 있던 동네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1kg에 그 가격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어떤건 같은 복숭아인데 2유로가 넘길래 이건 뭐길래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보니 이건 "비오"라고 하네. 알고보니 유기농이란 뜻이었어. 영어로는 organic, 그리스에선 "bio"라고 표시함. 영어식 발음에 익숙해져 이걸 비오라고 발음할 줄은 몰랐다.
 
현재 스파르타 시내의 모습. 원래 없다가 고대 스파르타 유적지 근처에 180년 전 새로 생긴 마을임.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 동상. 시내 한가운데 세워져있어. 이 레오니다스는 여행기 1편에도 나왔던 써모필래에서의 2차 페르시아전쟁 때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을 지휘하며 전멸할 때까지 싸웠던 왕이야.

 
마을 북쪽에 위치한 고대 스파르타 유적지. 극장과 집터 일부만 남아있어. 관리하는 사람도, 구경온 사람도, 입장료도 없는 곳이야. 


 
이 사진에도 보이지만 스파르타의 서쪽으론 아주 높은 산맥이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BCE 700년경, 다른 그리스 도시인들은 지중해 연안의 새로운 곳에 콜로니를 건설할 때, 고대 스파르타인들은 이 험한 산맥을 넘어 그 동네 잘 살고 있던 도시국가 메시니(Messene)를 공격, 도시인들 전체를 노예로 만들어. 그래서 스파르타인들은 농업에 종사할 필요 없이 전부 군인으로써 훈련받으며 사는 생활을 할 수 있었던거야.
 
여긴 다 봤으니 다음 목적지로 가자. 이 다음은 저 산기슭에 위치한 비잔틴시대의 고대도시 유적 미스트라스(Mystras)야.
 
스파르타 바로 옆 산기슭에 위치한 미스트라스. 산 넘어 칼라마타가 오늘 최종 목적지다.

 
스파르타에서 미스트라스 가는 길

 
미스트라스는 비잔틴제국시대인 CE 1200-1300년대에 번성한 도시로 한때 비잔틴제국 4대 도시에도 들 정도로 큰 도시였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비잔틴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했지. 그래서 여기엔 황제가 가끔씩 와서 몇달씩 머무르다 간 황궁도 존재해. 하지만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쇠퇴하기 시작, 결국 완전히 잊혀진 곳이 되었지. 
근대 들어와 고고학자들이 스파르타의 옛 유적을 찾다가 먼저 발견한 것이 이 미스트라스의 유적이야. 그래서 한때 이곳이 스파르타의 유적이라고 잘못 알려진 적도 있었어.
 
수많은 건물/골목길들의 유적이 산기슭에 이곳저곳 산재해 있어. 사진에도 보이지만 산 꼭대기엔 요새가 세워져있지. 저기까지 올라가보자.

 
올라가는 길. 그야말로 예전 중세시대 배경의 RPG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야. 그리스엔 유적지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유명한 곳에만 사람이 많고 여기처럼 덜 알려진 곳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곳에서 보이는 스파르타 방면의 풍경. 저기 왼쪽으로 비구름이 보이지? 저게 곧 여기로 와. 비올줄 모르고 차에서 우산을 안가지고 와서 비맞고 다 젖은 채로 돌아다녔어. 

 
유적지 안에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수도원있다. 그리고 거기 사는 고양이가족


  
비잔틴 시대의 황궁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엔 잘 안보이지만 계속 비가 오는 중이어서 여유있게 못있었던게 아쉬웠다. 이곳은 지금껏 가본 유적지중 가장 보존상태가 높았던 곳이야. 중세시대의 골목길 풍경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곳이다.


 
산넘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칼라마타(Kalamata)가 가보자. 여기서 칼라마타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1시간 이상 달려야해.
올라가는 산길. 사실 여기 오기 전엔 그리스에도 이렇게 험한 산이 있는 지 몰랐다. 
 
폭이 4.3 마이크로미터, 높이는 3.8 마이크로미터라고 씌여있는 절벽길. (그리스에선 단위기호 m도 그릭알파벳의 μ로 사용하는 듯)

 
산의 정상부분. 구름을 뚫고 달린다.

 
길을 막고 있는 염소떼

 
어느새 바닷가마을 칼라마타가 보인다.

 
칼라마타부턴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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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자동차 여행 재밌게 다녀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