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10개를 반박하겠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길지만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5.18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은 인터넷과 책과 방송에서 110개의 증거들과 근거들을 보았다.

5.18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110개의 증거들과 근거들을 여기서 전부 확실히 반박해서 박살내보이겠다.

5.18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은 내가 가진 것들이 245개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과 합치면 5.18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은 400개정도는 될것이다.

5.18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은 전부 엉터리이고 허접하여 반박을 하는 것이 매우 쉬웠다.

반면에 내가 가진 5.18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245개 중에 반박을 할 수 없는것이 100개는 될것이다.


5.18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10개에 대한 반박.

1.광주폭동때 목격자들이 많았는데 목격자들이 북한군들을 못보았다.

반박. 연고대생으로 가장한 북한군 500명을 많은 광주시민들은 환영식까지 열어주었다. 그 연고대생으로 가장한 북한군이 시위대나 시민군으로 위장하여 

맹활약하는것도 많은 광주시민들,시위대들,시민군들이 보았다. 북한군들을 보았는데 북한군인지 알아보지못했다고 말해야지.  말을 정확히 해야지

침투한 북한군들이 북한군복을 입고 나타나서 활약할줄 알았나?무장공비티가 나게 하고 올줄 알았나?AK소총으로 무장하고 올줄 알았나?

북한말씨를 쓸줄 알았나?북한군들은 남한사람말씨를 6개월간 훈련받고 침투했음.

북한군군번인식표를 휴대하고 올줄 알았나?자신들이 북한군들이라고 밝힐줄 알았나? 

남한사람들과 북한사람들이 외관상 구분이 되나?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해서 잠입했고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위장해서 활동했다.  북한군들,시위대들,시민군들은 구분이 안되었다.

그러니 북한군임을 못알아본거지. 광주폭동때 광주에 있었다고 모든걸 다 정확히 정확히 아는 것처럼 말하면 안되지.

북한군임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계엄군 5.18상황실장 홍순영.검문소 김대위, 북한군에 강간당한 여자 등이 그렇게 말했다. 그외에도 북한군임을 알아본 사람들이 많은데 쉬쉬하면서

침묵하고있다고한다.특히 광주시민들이 그렇다고 한다. 

당시 주한미군 2사단에서 광주에 북한군침투정보로 대책회의가 열였다고한다.북한군임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런거지.

계엄사령부와 계엄군지휘자들은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분명히 개입했다고 말했다.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북한군과 비슷한 것 아닌가? 시위대들과 시민군들과 광주시민들 중에서 북한군임을 알아챈 사람들을 북한군들이 2명만 제외하고 전부 죽였다.

2명만 살았는데 북한군에 강간당한 여자와 쌍간나새끼라는 말을 북한군이 해서 그쪽은 고향이 광주가 아닌 것 같은데 고향이 어디에요라고 말한 여자였다.

황장엽의 증언에는 남한에 북한간첩이 5만명이 있다고한다. 그 북한간첩 5만명 중에 북한사람이 7000명정도는 되지않을까?

북한사람인 북한간첩들 7000명이 남한에서 암약하며 수십년간 활동해도 잡혀서 처벌받은 경우는 극소수이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이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맹활약을 했는데 북한군임을 알아본 사람이 적은건 당연하지.

2.. 비상계엄하에 해안과 광주외곽경비가 철통같아 침투를 못한다.

반박.기나긴 해안선경비는 밤이나 새벽에 경비가 취약하다. 북한군들의 한 무리는 잠수함으로 5월 3일 새벽 3시에 영광해안으로  남한민간인으로 

위장하여 와서 상륙하여 간첩을 따라 광주에 잠입하고 한 무리는 철원에 있는  땅굴로 남한민간인으로 위장하여 와서 땅굴출구를 나와 간첩을 따라 

광주에 잠입했다. 5월 3일 광주에 잠입했으니 광주외곽경비가 허술했다. 계엄령하에 있었어도 생각보다 경비가 허술했다는 증언이 많다.

침투한 북한군들이 전남 17개군에서 무기고 44곳을 털어 엄청난 무기들을 탈취해서 무장한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지.

당시 전남은 치안부재상태였다는 증언들도 있고 광주진입도로들이 통제가 안되었다고한다.

대한민국수립이후 많은 무장공비들이 휴전선을 돌파해서 또는 잠수함으로 또는 땅굴로 침투했는데 그들은 어떻게 침투했다는 말인가?

휴전선과 그 부근은 항상 계엄령이 내려져있는거나 마찮가지 상태이다. 잠수함으로나 땅굴로 침투하는 것이 휴전선을 돌파하여 침투하는것보다

100배는 쉽지. 광주폭동때 김대중의 별동대와 서울에 있던 전라도출신 깡패들도 대거 광주에 침투했다. 김대중의 별동대와 

서울에 있던 전라도출신 깡패들도 광주에 대거 침투했는데 북한군의 최정예인 북한군 534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를 못할거라 생각하나?

3. 1.21사태 당시 무장공비 31명과 비교하여 왜 사람들이 잘 몰랐냐?

반박. 1.21사태 당시 124군부대 31명은 휴전선을 돌파하여 왔고 침투하며 총격전을 벌이고 총을 난사하고  버스와 검문소에 폭탄들을 던지고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북한군인줄 알았다.. 휴전선을 돌파하면 표시가 많이 난다. 반면에 광주침투북한군은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하여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아주 조용히 광주에 잠입했고 광주에서는 시위대들,시민군들로 위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군들인지 알아보지못했다.북한군들과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은 구분이 안되어서 북한군들을 보고도 본 남한사람들은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여겼다.

4. 전두환이 북한군침투를 모르겠다고 말한 신동아인터뷰.

반박.전두환은 광주사태가 난지 얼마 지나지않은 1980년 6월 4일부터 지금까지 39년 이상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해왔다.

1980년 6월 4일 전두환은 22명의 신원미상시신들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으로 보고있다고 말하여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가장 최근에도 전두환회고록에서 광주폭동때 북한군개입을 18번이나 주장했다.

단 한 번 신동아와 몇 분 인터뷰하며 북한군침투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39년간 주장해오고 가장 최근에 주장한 것이 중요하지.

단 한 번 신동아와 몇 분 인터뷰하며 모르겠다고 말한것이 중요하나? 정치인의 인터뷰는 한 번씩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회고록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며 명예를 걸고 쓰는 것이다. 몇 분 인터뷰한것보다는 훨씬 중요한 것이다.

5.  5월 9일자 CIA문서에서 현재 (5월9일) 북한군의 특이한 동향이 없다고 되어있다.

반박. 5얼 9일자 CIA문서의 그 구절은 전라도것들이 첫줄만 번역하여 왜곡해서 말한것이다.3페이지의 전체내용은 현재는(5월 9일) 북한군의 특이한 동향이

없으나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을 안가지면 북한은 대담한 야욕을 부릴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그 문서전체내용으로 보면 북한군침투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5월 9일에는 북한군들이 남한민간인으로 위장하여 와서 활동을 안하고 숨어있었으니 북한군들의 특이한 동향이 없었다고 할 수 있지.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는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시작해서 5월 24일까지 계속 했다.

북한군들이 잠수함으로 5얼 3일 새벽 3시에 영광해안에 상륙했는데 1980년 당시 군사첩보위성으로는 야간에는 지상의 사람들을 식별하지못했다고한다.

지상을 감시하는 시간도 적고 설령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한 북한군들을 보았다고해도 남한민간인들로 알지 북한군들임을 알아보지못한다.

1979년 말의 한 CIA문서에는 북한군이 후방 깊은 곳으로 군대가 투입될 예정이다라고 되어있다.

광주폭동당시 주한미군 2사단에서 광주에 북한군침투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 2사단의 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에서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줄 알았는데 CIA에서 몰랐겠나?

1980년 5월 19일자 CIA보고서에는 광주사태가 처음 난 다음날 5월 19일 김일성주재로 열린 북한고위급비밀회담에서 광주사태가 전국규모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면 즉시 남침을 한다고 김일성은 결심했었다고 되어있다.

다른 CIA문건에는 김일성과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등 북한군수뇌부는 광주사태가 나기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 있었다고 되어있다.

김일성과 북한군수뇌부들이 북한특수부대 600명에게 어떤 행동들을 할 것을 명령했으니 광주폭동때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았지.

1980년 5월 19일 주석궁에서 김일성과 오진우 등 북한군수뇌부 비밀회담에서 광주폭동이 전민봉기로 확산되면 남침하기로 결정했다고 되어있다.

6. 북한군 600명이 침투했는데 계엄군사망자가 왜 적었냐?

반박.  계엄군들과 북한군 600명은 총격전을 벌일 기회가 적었다.침투한 북한군들은 총격전을 벌이려 광주에 침투한 것이 아니라 심리전을 벌여 

광주폭동이 전라도로 확산되어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전라도의 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정부를 전복하려한 것이다.

침투한 북한군들 600명은 5월 21일 계엄군들과 총격전을 벌인다. 계엄군들 4000명은 조선대와 광주교도소로 철수했다가 광주밖으로 철수한다.

철수한 이유는 나의 추측인데 상대의 공격이 거세니 희생자들이 적게 나오게 하기위해서 작전상철수를 한게 아닐까?

북한군들이 광주교도소습격 5회를 할때 계엄군들과 총격전을 벌인다. 이때도 계엄군사망자들이 별로 나오지않았다고 한다.

계엄군들은 5얼 27일 광주에 재진입을 하며 진압작전을 펼치는데 광주에 있던 북한군들은 5얼 24일 밤에 갑자기 전부 사라졌다. 

그래서 재진입하여 진압작전을 펼치는 계엄군들과 총격전이 벌어지지않았다.

광주밖에서 북한으로 도주하는 북한군들을 계엄군들은 우세한 무기들로 사살할 수 있어서 계엄군사망자들이 적었다.

7.침투한 북한군시신들이 왜 없냐?

반박. 아니다 침투한 북한군시신들이 있다.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는 광주망월동묘역에 매장된 아직도 신원이 확인이 안된 12구의

시신 중 11구의 시신이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 시신이라고 되어있다.그 문서들에 의하면 팀투한 북한군들 600명 중 110명은 북한에 살아돌아가고 

475명은 광주근교에 암매장되었고 11명이 광주망월동묘역에 묻혔다고한다.

광주에 침투했던 북한군출신 탈북자의 내용인 보랏빛호수라는 책에는 북한군들이 계엄군들의 총에 맞아 전사하는 경우 시신을 노출시키지않을려고

북한군 개인마다 몸에 지닌 폭약 2~3킬그램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살아있는 북한군들이 북한군들시신들을 폭파해서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고한다. 그렇게 하면 시신을 찾기어렵고 발견도 어렵다.

8.항쟁지도부는 간첩으로 의심되는 자를 신고한 적이 있다.

반박. 연고대생으로 가장한 북한군 500명을 광주시민들,시민군들,시위대들은 환영식을 열어주었고 침투한 북한군 600명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

남한의 고정간첩 약 1000명도 광주폭동때 광주에서 활동을 했다. 그래놓고 어떻게 간첩으로 의심되는 자를 신고한 적이 있다고 북한군침투를 부정하려하나?

1~2명을 신고해서 광주침투북한군 600명과 고정간첩 1000명의 전모가 드러나나?

9. 보수의 인사 중에서도 광주폭동북한군침투개입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박. 대표적인 그런 사람으로 조갑제기자가 그런 주장을 하던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광주에서 북한군들을 보고도 북한군들임을 알지못했다.

조갑제기자가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은 전부 엉터리이고 허접하여 아주 쉽게 반박해서 박살낼 수 있다. 

진실을 잘 몰라서 그렇게 주장하거나 조갑제기자의 행적들에는 몇번 의심스러운 점들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전라도것들과 친북좌파,친북좌익의 편을

들어버렸다.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은 보수,진보,우파,좌파를 막론하고 역사적 진실이 규명되어야한다.

10.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주장하는 탈북자들의 말은 카더라에 불과하다.

반박. 탈북자들 몇명 몇십명이 그런 말들을 하는게 아니라 2만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비공개적으로 그런 말들을 하고 그 2만명 중에 극소수가 공개적으로

그런 말들을 증언한다.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 3만 2천명 중에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들어본 탈북자들이 90%이상이라고 한다. 

탈북자들말에 의하면 북한정권,북한군들,북한주민들사이에서는 광주폭동때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은 공공연한 확고한 사실이며 북한에서는 어린애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한다. 김대중정권때의 국정원과 노무현정권때의 국정원은 탈북자들이 5.18광주사태에 대해 증언을 하지못하도록 5.18보안각서를

써도록했다고한다.

북한군들을 광주에 침투,개입시킨 북한정권과 북한군들이 북한군광주침투개입여부를 더 잘안다. 

북한주민들은 그들로부터 전해들어 아는 것이고. 북한교과서와 북한역사책과 북한대남공작책에는 김일성이 광주사태를 일으키고 주도했다고 적혀있다.

김일성이 1980년 5월 중앙당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비밀지령을 내려 북한특수부대의공작을 직접 지시했고 그에 따라 현역 특수부대 1개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 광주폭동때 광주에 북한특수부대가 침투했는지 잘 아는 사람들 중에 한 부류는 북한특수부대로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을 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하여 북한에 살다가 북한을 탈북하여 남한에 오거나 해외에 간 탈북자들을 들 수 있다. 

남한에 온 그런 탈북자는 김명국(가명),박승원,분당에 산다는 탈북자가 있다.

그들은 모두 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했다고한다. 해외에 간 그런 탈북자들도 그렇다고한다. 

자신들이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해 활약했으니 아주 잘 알지. 북한군광주침투개입여부를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있겠나.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원이 아닌 북한특수부대출신탈북자들도 광주폭동때 북한군광주침투개입여부를 잘 아는 부류이다.

그들도 모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책이나 서류나 컴퓨터소프트웨어나 하드디스크나 usb도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을 기록한 것이다. 

탈북자들의 말은 광주폭동의 진실을 알 수 있는 인적정보이다. 카더라에 불과하다고 우기면 안된다.

탈북자들은 남한에 들어올 당시  경상도출신도 아니고 전라도출신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제 3자 입장이고 중립적 입장이고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의 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들을 믿을 수 있다.

11. 청진에 있는 광주폭동때 침투해서 사망한 북한특수군의 묘와 묘비(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는 북한 어느지역에나 있는 것이다.

반박.  북한 어느지역에나 있는 인민군묘와 묘비는 6.25전사자들의 묘와 묘비이고 청진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는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해서 광주와 광주근교에서 전사한 북한군 534특수부대의 전사자들의 묘와 묘비이다. 그 534북한특수부대전사자들 158명의 묘가 청진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이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도 청진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는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한

광주침투534북한특수부대전사자묘지라고 되어있고 문서의 명단과 묘비에 새겨진 명단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12.  북한특수부대 600명이면 휴전선에서 먼 광주까지 갈 필요없이 계엄사령부를 공격하지 왜 먼 광주까지 가서 공격을 했느냐?

반박.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무기들을 가지고 오지않았다. 전남 17개지역의  무기고 44곳을 털어서 무기들을 현지조달해서 무장했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무기고들을 털어서 무기들을 현지조달을 못한다.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계엄사령부를 공격하려 시도하면  공격하러가는 도중에 

전부 사살된다. 전라도는 남한에서 친북성향,반역성향,좌익성향,폭동성향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그런 전라도의 성향을 이용해서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켜서 

전라도전역에 폭동이 일어나게하여 전남국을 수립하거나 전라도의 폭동이 전국으로 번지게하여 당시 남한정부를 전복하면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10만에서 15만의 북한군들이 남한을 기습남침하여 남한을 삼키려했다.

13. 광주폭동당시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1980년 5월 13일 북한남침설은 근거가 없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반박. 5월 13일에는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숨어있었다. 잠수함에 있으면 또 땅굴안에 있으면 또 남한민긴인들로 

위장해서 숨어있으면  군사첩보위성에서 보이지않는다. 5월 3일 새벽 3시 잠수함에서 영광해안으로 상륙하는 북한군들을 군사첩보위성으로 보지못했다. 

1980년의 군사첩보위성은 야간에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식별할 수 없었고 지상을 감시하는 기간도 짧았다.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정보요원들이 보았다해도 북한군들인지 알기 어려웠다.

철원에 있는 땅굴출구로 나온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북한군들인지 들키지않았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5월 21일부터 활약했다. 북한군들이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하니 이틀정도 지나서 북한군들이 침투한지 확실히 알게되었다.

5월 23일전에는 북한군침투첩보만 있었다.

5월 23일정도 되어서야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한지 주한미군에서 알게되었다. 5월 13일에는 주한미군에서 몰랐으니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그렇게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을것이다.. 광주폭동기간 중에 주한미군 2사단에서 북한군광주침투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 2사단 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다고한다. 주한미군 2사단에서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과에게 그런 보고를 했을것이다.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전두환과 매우 사이가 안좋았고 갈등이 심했으니 전두환에게 유리해질 말을 하지않았을 것이다..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회고록에는 전남출신의 당시 합참의장인 문형태의 발언내용이 있다.문형태의 말은 공산당들이 시내에 들어와 있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과격분자들이 조종하고 있는게 틀림없다고 말하여 북한의 개입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내용이 있다.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광주폭동때 북한의 개입이 근거없다고 생각했으면 자신의 회고록에 그런 내용을 썼겠는가?

14. 특수부대작전은 최소한 침투루트가 확보되지않으면 작전자체가 실현되기 어렵고 5.18진압작전기간은 며칠만에 종료되었다.

반박. 침투루트가 확보되었다.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간첩을 따라 광주에 조용히 잠입했다.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는 10.26사태이후부터 천재일우의 기회로 생각하고 맹훈련을 시켜온 북한특수부대를 남한에 침투시킬 것을 치밀하게 

준비해서 광주에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침투시켰다. 침투한 북한특수부대는 5월 21일부터 5월 24까지 맹활약을 하다가 광주도청에서 5월 24일밤에 

갑자기 사라졌다. 북한특수부대가 국군이 침투대비를 하지않고 있던 광주에 침투해서 빨리 치고 빠져나갔으니 작전이 성공한거지.

15. 2중 3중으로 봉쇄된 광주로 북한군 수백명이 들어올 수 있다면 방법은 딱 한가지다. 전두환정권이 북한군을 초청하여 길을 열어주고 북으로

호송까지 해주면 가능하다.

반박.  북한특수부대는 광주가 봉쇄되기전인 5얼 3일 한 무리는 잠수함으로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영광해안으로 상륙하여 간첩을 따라 

잠입하고 한 무리는 땅굴로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땅굴출구를 나와 간첩을 따라 광주에 조용히 잠입했다.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땅굴출구를 나와 간첩을 따라 광주에 조용히 잠입했다.  2의 반박을 참조.

16.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들어왔다면 광주는 지금도 북한정권의 섬이 되어있을 것이다.

반박. 계엄군들이 재집입하기전인 5얼 24일 밤에 북한군들은 광주에서 전부 갑자기 사라졌다. 600명의 군인들로 광주를 계속 장악할 수 있나?

17.계엄군의 장교들 중에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하여 보고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반박. 아니다. 광주와 광주근교의 일선지휘관들은 북한군들이 광주와 광주근교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고 북한군들 출현을 상부에 보고했다.

검문소의 김대위라는 사람이 돈 커크라는 외국기자와 그 일행이 광주로 들어가려하자 북한군들이 영광해안으로 들어와 

광주근교의 야산,들판,논에서 대기하여 위험하다고 말하고 진입을 제지했다.No1 Shimbun이라는 일본 도쿄의 일본 외국특파원협회지에 그 기사가 실렸다.

계엄군 5.18상황실장 홍순영증언에는 북한군같은 자들이 있었다. 북한군같은 자들이 1.21사태때 침투했던124북한군부대가 신었던 신발과 

같은 신발을 신고있었다.지휘체계가 북한군같다. 북한군시신들위에 하얀 찔레꽃이 놓여있었다.하얀찔레꽃은 북한군들이 가장 선호하는 꽃이고 

찔레꽃은 남파간첩의 암호이다. 무장트럭에 탄 북한군들로 추정되는 폭도들이 화이바에 찔레꽃을 꽃음 

광주폭동영상들에 북한군총지휘자 이을설이 찔레꽃이 놓인 관들을 붙잡고 우는 장면들이 있다. 북한군전술같다.걷는 모습이 북한군같다.

국군일선지휘관들이 상부에 보고했으나 상부에서 일리가 있다는 의견과 과한 주장이다라는 의견으로 대립했다고한다.

계엄사령부와 계엄군지휘자들은 공산당,공산주의자들,적색분자들,간첩들,불순분자들이 분명히 개입했다고 말했다.

공산당,공산주의자들,적색분자들,간첩들,불순분자들이 북한군들과 비슷한 의미 아닌가.

18. 600명의 북한군병력을 선박으로 목포인근해안까지 침투하는 작전을 시행할 수 있을까?

반박. 북한군들은 한 무리는 잠수함으로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영광해안에 상륙하여 간첩을 따라 광주에 잠입했다.선박으로도 불가능한게 아니다.

북한잠수함은 서해를 지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잠실까지 들어온 적도 있다.전라도해안에 어두운 새벽때 잠수함으로 침투하는 것이 어렵지않다.

북한군은 잠수함이 우세하고 1980년 당시는 더욱 그랬다.

19 국군대북감청부대는 계속 잠만 자고있었는가?

반박. 광주침투북한군들의 무선통신은 국군감청부대에 걸리지않았다. 북한군들은 광주폭동상황을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에 계속 보고했다.

황장엽의 증언에 의하면 남한에 북한간첩 5만명이 있다고 한다. 그 5만명의 북한간첩이 수십년간 간첩활동을 하고 북한정권과 교신을 해도 잡힌

북한간첩은 극소수이다. 5만명의 북한간첩이 수십년간 간첩으로 암약하여 북한정권과 교신을 해도 잡힌 북한간첩이 극소수인데 광주에서 북한군이

4일에서 5일정도 극히 짧은 기간 북한정권과 교신했던 것이 국군대북감청부대에 들켰겠는가?

20. 통신없이 장기작전을 1개대대 병력이 적진에서 한다?

반박. 아니다. 북한군들은 무선통신으로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와 교신했다.북한군들은 광주폭동상황을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에 계속 보고했고 

지시를 받았다. 북한군들이 맹활약을 한 것은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4일간이어서 짧은 기간이었다.

21.대규모비정규전으로 남한사회를 뒤흔들었다가 몇번의 실패를 하고 후회하던 김일성이 과연 이 작전을 허락했을까?

반박. 김일성은 1980년 5월 중앙당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비밀지령을 내려 북한특수부대의 공작을 직접 지시했고 그에 따라 북한군현역특수부대 

1개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대한민국수립이후 무장공비침투로 남한을 뒤흔들었으니 작전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 아니다. 어느정도는 성공한 것이다.

김일성이 후회했을리가 없다.

22. 대대단위는 특수전에서는 불가능하다. 통제가 안되니 자명하는 셈이다.

반박. 북한군은 20만의 특수부대를 보유하고있다. 대대단위로 특수전이 안되면 북한정권과 북한군이 미쳤다고 20만의 특수부대를 보유하고 있겠는가?

23.큰 희생을 치러 김일성이 얻는 이익이 무었인가?

반박.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광주에 침투시킨 목적은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당시 남한정부를 전복하여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군 10만에서 15만명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김일성은 아주 큰 이익을 얻는다. 그것이 성공못해도 국군,남한정부와

광주시민들,시위대들,시민군들,전라도인들을 이간질시켜 광주폭동을 크게 일으켜 남한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 남남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김일성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어 이익을 거두었다.

24.인민무력부장이 실패하면 자기목이 달아나게 되는 이런 작전계속을 수립하여 김일성에게 보고했겠나?

반박. 실패하지않기위해 북한특수부대는 오래동안 강훈련을 받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웠고 당시 남한의 혼란기라서 성공가능성이 높았다.

100%성공한다는 군사작전은 적다. 실패할 위험부담은 어느 군사작전에서나 있는 편이라서 그런 군사작전이 실패한다고해도 인민무력부장이 목이 

달아나지않는다.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한  북한군들과 계획하고 보낸 대남공작부,북한장성들,김정일은 훈장을 받거나 승진했다.

25.1968년이후 김일성의 대남무력도발은 그 전술이 바뀌어 더 이상 대규모침투는 안되겠다고 판단했다.

반박. 대규모침투를 안할 북한군이 미쳤다고 북한특수부대 20만을 양성하고 강훈련을 시키고 유지하나?

26.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정보는 고사하고 카더라식의 첩보도 없었다.

반박. 13의 반박과  17의 반박을 참조.

27. 많이 태울수록 배는 느려져 도주에 한계가 있다.

반박. 많이 태운다고 배가 그리 느려지지않는다. 북한군들은 바다에서는 잠수함을 타고 이동했다.

2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1개대대를 투입해서 무얼 얻고자 한 것일까?

반박. 23의반박을 참조.

29.북한군침투개입을 말하면 왕따를 당한다.

반박. 그건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것이다.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은 전부 엉터리이고 허접하다.

반면에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은 400개나 되는데 반박을 할 수 없는 것이 150개는 된다.

그러니 두 증거들과 근거들을 비교하여 생각하면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자들은 바보취급을 당한다.

30. 북한군 600명침투는 투명인간들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반박.  1의 반박과 2의반박을 참조.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투명인간들이라서 못본게 아니라 

남한민간인들,시위대들,시민군들,연고대생으로 위장했으니 북한군임을 알아채지못한거지.

31. 북한이 특수부대를 내려보낼때는 우리국군으로 위장시킨다. M1총,칼빈소총,우리군복을 마련해 입혀내려보내는데 600명분을 급히 마련하기는 

쉽지않았을것이다.

반박. 북한특수부대가 우리국군복장으로만 위장해라는 법이 있나? 남한민간인들,시위대들,시민군들,연고대생들로 위장할 수도 있는거지.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10.26사태이후부터 남한의 혼란기에 강훈련을 시켜오던 북한특수부대를 투입시킬려고 준비해왔다. 급히 마련한게 아니다.

32. 보급품은 어떻게 수송했나?

반박. 무기는 전남 17개 지역의 44곳의 무기고들을 털어서 현지조달하여 무장했고 식량은 시민군들,시위대들과 함께 있어서 별로 어렵지않게 조달했다.

33. 미국무부문건에 5.18은 공산주의가 배후에 있지않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다라고 되어있다.

반박. 원문은 The may 13 incident was not communist inspired or infiltrated or infected   This is clear fact. 라고 되어있다.

원문에 5월 13일로 되어있고 5월 18일로 기재되어있지않다. 5.18광주폭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벌어진 일을 말한다.

5월 13일에는 광주시민들인 대학생들이 평범한 시위와 데모를 했고 공산주의자들이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맹활약을 했다.

5월 21일전에는 북한군들이 잠수함에 있거나 땅굴안에 있거나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해서 숨어있었는데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한 것을 

미국무부는 5월 13일에는 몰랐을 것이다.

34. 1980년 5월 10일 육군정보참모부보고서에는 북한군사동향은 정상적인 활동수준으로서 특이한 전쟁징후는 없다라고 되어있다.

반박. 5월 10일에는 국군들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를 한줄 몰랐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했으니 국군은 

계엄군일선지휘관들이 5월 23일정도에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한줄 확실히 알았다. 

침투한 북한군들이 활발히 활동을 해야 알지. 땅굴안에 있거나 잠수함에 있거나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해서 숨어있으면 국군이 알기어렵다.

35. 북한군에 죽은 사람이 없다.

반박. 아니다. 북한군들에 죽은 사람들이 많다.민간인사망자들 166명 중에 120명정도가  북한군들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80명은 

칼빈총,M1총,LMG기관총에 의해 살해되었고 40명은 총이 아닌 수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계엄군들 중에도 약 20명정도가 북한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36.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 중에 북한군을 보았다는 기자가 없다.

반박. 1의 반박을 참조.  김영택기자는 정체불명의 복면부대는 대한민국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는 증언을 했다.. 

김동명기자는 북한군개입의혹을 5얼 19일부터 품었다고 증언했다. 미국의 NBC기자도 시민군총기에 의한 총상으로 죽임을 당한 시민사망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못박아 말했다. 운동권학생들이 누군지 알지못하는 과격파가 등장해서 무장봉기를 주도했다고 보도했다. 그 과격파가 북한군들이다.

다른 기자들도 위와같이 말하는 기자들이 있다.광주에 있던 기자들 중에 북한특수부대의 전술,지휘체계,침투방법,특징을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었겠나?

없거나 아주 적었을 것이다.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은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을 구분하는 비법이라도 가지고있었는가?

북한사람을 남한사람으로 위장해서 보여주면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은 북한사람이라고 판정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은 시위대들과 시민군들과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말하고싶은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이 유언비어에 영향을 안받았다는 

보장이 있는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이 행동과 취재에 크게 제약을 받았는데 많은 곳들을 보고 취재헀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은 광주폭동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게 계속 되고 있는 것 아닌가?

북한군들이 많았다고 주장되는 곳들에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은 그곳들에 가서 북한군들을 취재했는가?   

전라도것들이거나 좌익세력이거나 종북세력인 기자들은 북한군들을 보고서도 못봤다라고 말할 것이다. 전라도것들이거나 좌익세력이거나 종북세력인

기자들은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의 증거들과  근거들이 명확한데도 그들세력의 건재를 위해 무조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37. 5.18광주폭동때 연고대생으로 칭하는 500명은 투입된 신군부의 공작원들이거나 편의대거나 선무공작요원들이거나 전두환의 특수공작부대이다.

반박. 신군부의 공작원들,편의대,선무공작요원들,전두환의 특수공작부대가 미쳤다고 20사단지휘부차량을 공격하여 차량을 탈취하고 전남 17개지역의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엄청난 무기들로 무장하고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하여 장갑차 4대와 차량 420대를 탈취하고 장갑차로 계엄군을 깔아죽이고

광주교도소를 5번 습격하고 계엄군들과 총격전을 벌여 계엄군들을 광주밖으로 쫓아내나? 폭동이 빨리 진압되도록 노력하지. 미쳤다고 폭동을 크게

증폭시키고 무기반납도 못하게 막나? 전두환이 미쳤다고 분란을 크게 일으키며 느리게 권력을 잡으려고 했겠나? 분란을 덜 일으키며 빨리 권력을 

잡으려고 했겠지.

38.전남의 17개지역 44곳 무기고들은 알만한 위치에 있었다.

반박. 광주나 나주 등 도시에 있는 경찰서나 파출소에 있는 무기고들은 알만한 위치에 있었다고해도 다른 무기고들은 알만한 위치에 있었지않았다.

다른 무기고들은 극비사항으로 일반인들이 어디있는지 알기어렵다. 전남 17개시군의 44곳의 무기고들을 4시간만에 털어서 엄청난 무기들로 무장한건

미리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해두지않으면 그렇게 하기 불가능하다.  무기고들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기고들을 찾는 시간과 무기고들을 

터는 시간을 고려하면 위치가 극비사항인 무기고들을 털어서 무장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이나 이주일정도는 걸릴 것이다.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는 남한에 있는 간첩들과 광주폭동이 나기 몇달전에 미리 침투시킨 북한군들에게 광주폭동이 나기 몇달전부터 

전남의 모든 무기고들의 위치를 조사하게하였다. 남민전도 무기고들의 위치를 조사했다.

전라도것들이 주장하는대로 계엄군들의 과잉진압에 그에 대응하여 5월 21일부터 무장을 시작했으면 광주에 있던 경찰서들과 파출소들을 

터는정도였을것이다. 시민군들은 5월 21일이 아닌 5월 19일부터 광주와 나주의 무기고들을 털어서 무장했다.

힌츠페터의 영상과 사진에도 5월 20일에 찍은 영상과 사진에 총으로 무장한 폭도들을 태운 트럭들이 광주로 달려오는 장면이 찍힌 영상과 사진이 있다.

39. 장갑차는 광주시민들이 운전할 수 있었다.

장갑차를 운전하는 군인들과 군사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장갑차를 몰아보지않은 사람들은 장갑차를 몰지못한다고한다. 모든 유형의 장갑차들을 

장갑차들을 몰아보지않은 사람들은 장갑차를 몰지못한다고한다.폭도들은 장갑차를 아주 능숙하게 몰았다. 장갑차를 지그재그식으로 몰아 

한 명의 계엄군이 장갑차로 깔아죽였다. 장갑차를 몰아보지않은 현역군인도 못하는 행동이다.

당시 대학생들도 장갑차를 몰지못했다. 1980년에는 자동차를 모는 대학생들이 아주 적었다. 대학생들이 자동차도 몰지못하는데 장갑차를 몰 수 있었겠나?

북한군들은 연고대생으로 가장하여 와서 활약했지.  자신이 광주폭동때 장갑차를 몰았다고 주장하는 광주시민이나 대학생은 한 명도 없다.

40.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몇 피해상황에는  북한군내용들이 언급되지않았다.

반박. 안기부의 전신은 중앙정보부이고 1980년에는 안기부가 아니라 중앙정보부였다. 광주에 있던 중앙정보부분실,보안사분실,경찰서에 있던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기록된 서류들을 광주가 북한군치하인 5월 21일부터 5월 24일사이에 북한군들이 전부 수거해서 불태웠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는 폭도들 중에 공산주의자,공산당,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있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자, 공산당,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북한군과 비슷하지않은가. 광주폭동때 광주에서 북한군 600명과 간첩 약 10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다. 그 사실이 인정이 되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와 광주경찰은 큰 책임을 져야하고 큰 문책을 받을 수 있고 큰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아주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나의 추측인데 광주에 있던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기록된 자료들도 전부 불타서 없어진김에 큰 책임을 지지않기위해  큰 문책을 받지않기위해

큰 비난을 받지않기위해 아주 부끄럽지않기위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몰랐다고 말하거나 부정해버리자라고 결정한건 아닐까?

안기부와 국정원이 광주폭동때 북한군남파를 알고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안기부와 국정원이 그렇다면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도 알고있었을것이다.

김대중정부의 국정원은 탈북자들에게 절대로 광주사태에 말하지마라고하며 5.18보안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광주폭동때 북한특수부대로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해서 북한에 살다가 북한에서 못살게 되어서 탈북하여 남한에 온 탈북자에게는

김대중정부의 국정원이 광주사태에 대해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고한다. 진실이 공개되는게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일 것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정보를 왜곡했다는 증언이 있다. 미국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한 이유를 왜곡했다고한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북한군들 600명의 광주폭동때 광주침투개입을 알았다는 증언도 있다.

41. 탈북자들의 말들은 일관성이 없다.

반박.  탈북자 2만명이 말하니 약간씩 다를 수야 있지. 탈북자 2만명이 비공개적으로 북한군침투개입을 말하고 공개적으로 북한군침투개입을 말하는 

탈북자들은 극소수이다. 북한에서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공공연한 확고한 사실이니 탈북자들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지.

광주에 침투,개입한 북한군들은 4경로로 침투했다.. 잠수함으로 침투한  북한군무리.땅굴로 침투한  북한군무리. 

적은 수의 북한군들이  배로 침투한 무리, 적은 수의 북한군들이 광주폭동이 나기 몇달전에 침투한 북한군무리.

여러 경로로 나누어 보냈으니 어떤 경로만 알고있는 탈북자들은 말들이 다를 수가 있다.

42. 미육군방첩정보요원 5.18비밀요원 김용장의 말. 1980년 당시 미국에 군사첩보위성이 있었다.주로 한반도를 2~3시간 간격으로 순회한다.

5.18당시에는 광주상공체를 돌았다.

반론.  2.~3시간마다 군사첩보위성이 순회하니 새벽 3시에 잠수함으로 영광해안에 상륙하는건 몇분이면 되니 군사첩보위성이 못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1980년에는 군사첩보위성으로 야간에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식별하는건 어려웠다고한다. 아주 어두운 새벽 3시에 군사첩보위성으로 영광해안으로 

상륙하는 북한군들을 식별하기 힘들다. 설령 군사첩보위성으로 보았다고해도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북한군들임을 알아보지못한다. 

광주폭동때 주한미군2사단에서 광주에 북한군침투개입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 2사단 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43. 간첩 이창용조차 침투하지못했던 광주.

반박.  2의반박을 참조.  남한에 있던 북한간첩들과 북한에서 내려온 북한간첩들 합쳐서 북한간첩들 약 1000명이 광주폭동때 활동했다.

광주에 있던 북한간첩들도 있었겠지만 상당수는  광주밖에서 광주에 침투했을 것이다.수백명이상의 북한간첩들이 광주에 침투했는데 북한간첩 한 명이

광주에 침투못했다고 광주폭동때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나 근거가 되나?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긍정하는 근거이다.

44. 국방부장관 김관진이 5.18북한군개입을 부정했다.

반박. 김관진은 전북 임실출신이다. 전라도출신들은 극소수의 양심선언을 하는 전라도인들이외에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인정이 되면

전라도세력에 결정타가 됨을 알기에 우파,좌파,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일치단결하여 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45. 1980년 6월 2일 CIA문건에 미국국가정보위원회회의자료에서 현재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처하고있다. 북한군의 눈에 띠는 

어떠한 행동도 전두환에게 북한의 도발위협행동이 빌미를 제공하고 이는 결국 전두환을 돕는 행위라는 것을 김일성은 잘 알고있다는 내용이 있다.

반박.   6월 2일은 광주폭동이 완전히 끝난후이다. 그 말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광주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군 10만에서 15만이 남한을 기습남침을 하지않는 것이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런 도발위협을 안한다는 

의미이다. 해주지역이외에 휴전선근처에 있는 북한군들도 눈에 띠는 행동을 안한다는 의미이다.

46. 강명도의 책에 광주폭동소식이 북한정권에 전해지자 김중린은 3호청사의 전부서에 비상을 걸었으나 김중린은 타이밍을 놓쳤다. 김중린이 

정세판단서를 김일성에게 수표(재가)를 받을때쯤에 이미 광주폭동은 진압국면에 들어가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반박. 1979년 10.26사태와 12.12사건이후 김일성은 김중린을 불러 한국내의 현정세를 이용하여 비밀공작조직을 더욱 활발히 움직일데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고 광주폭동에 대비한 북한군지원작전을 지시했고 김중린은 북한군정찰국 및 특전사부대들을 광주에 투입할 것을 

당시 북한군 정찰국장과 정찰부장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달했다. 김일성은 오진우,김정일,이을설,문제심,김중린 등 북한군수뇌부와 북한정권수뇌부와

1979년 10.26사태발생때부터 적화통일의 호기로 보고 북한군침투를 준비하다가 김일성이 1980년 5월1일정도에 직접 북한군광주침투를 지시해서

이을설과 문제심이 북한군 534특수부대를 이끌고 1980년 5월 2일 출격하여 1980년 5월 3일 광주에 침투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다. 

김중린이 타이밍을 놓쳤고 김일성에게 수표(재가)를 맡을때쯤에 이미 광주폭동은 진압국면에 있었다는건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북한정권과 북한수뇌부가 광주에 북한군 600명을 침투시켜 광주폭동을 일으켜 남한사람들 많은 수를 (광주시민들 약 120명 계엄군 약 20명 

합쳐서  약 140명) 살해한데 대해 책임회피용으로 기만하는 것 일것이다.

위의 김중린에 대한 내용을 쓴 강명도는 북한이 5.18광주소요를 계획하고 지휘했다고 정반대되는 말을 하였다.

47.1980년 남북이 총리회담준비를 위한 고위급실무대표회담상황이 기록된 남북한대화록에서 5.18과 북한군의 상관관계가 확인되지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반박. 북한정권에 있는 자들이 바보가 아닌데 바보처럼 남북한총리회담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북한군600명을 광주에 침투시켜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고 광주시민들 약 120명과 계엄군 약 20명을 죽였다고 말하고 인정하겠나? 남북한총리회담은 김일성의 평화제스처였다.

48. 광주에서 멀지않은 전북 군산에 주한미군 공군베이스캠프가 있고 광주 송정동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했으니 북한군들이 정말 개입했으면 

주한미군사령부와 미국정부가 이를 수수방관했을리가 없다.

반박. 수수방관안했으니 북한군광주침투개입정보로 주한미군 2사단에서 대책회의를 했고 미국항공모함 코럴시호와 미국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한반도에 전개되었다.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을 격퇴하는건 한국군들이 맡게 한걸로 보인다. 광주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군 10만에서 15만이 남한을 기습남침하는걸 막기위해 미국항공모함 2대가 남한에 입항했다고한다.

전라도것들 중에는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미국에서 지원하기위해 항공모함을 남한에 입항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으나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광주시민들이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데 미국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할리가 있나? 당시 미국의 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한건

한반도의 상황이 최악으로 갈 위험성이 있기때문에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위한 것이고 광주폭동의 상황도 최악이라는 의미이다.

광주폭동의 최악의 상황 즉 북한군 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광주사태가 정말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미국은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지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미국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을 안한다.

49. 많은 병력이 광주에 진입했다면 북한군 침투시에 타고온 선박이나 이동할때 사용된 차량 그리고 인민군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목격되었을텐데

목격한 사람이 없다.

반박.북한군은 잠수함으로 침투했고 잠수함에서 영광해안으로 상륙하는 북한군들을 본 사람들이 없다. 땅굴로도 침투했고 땅굴출구에서 나오는 

북한군들을 본 남한사람들도 없다. 침투한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광주로 잠입했고 광주에서는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위장해서 활동했다 그래서 북한군들을 남한사람들은 보고도 북한군들임을 알아채지못한 것이다. 

남한사람들 중에서 북한군들의 전술,지휘체계,침투방법,특징을 알거나  눈썰미가 아주 뛰어나거나 침투한 북한군들이 실수로 북한말씨를 사용할때 

북한군들과 같이 있은 남한사람들은 북한군들임을 알아챘다. 북한군들은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하여 차량 420대를 탈취하여 이동했다.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위장해 탈취한 차량들을 타고 이동했으니 북한군임을 알아보지못한것이다.

50.무장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출몰했다면 계엄군과 조우하는 것과 쌍방간 무력충돌이 필연이었을텐데 교전을 벌였다고 밝힌 아군군대도 없었고

치열한 교전을 목격한 시민도 없었으며 사살되거나 부상 혹은 생포된 북한군은 왜 없는가?

반박. 연고대생으로 가장한 북한군들이 5월 21일 계엄군들을 광주에서 쫓아낼때 계엄군과 교전했고 북한군들이 광주교도소를 5회 습격할때 계엄군과

교전했고 북한군들이 광주밖에서 북한으로 도주할때 계엄군들과 교전했다.  그 교전들을 목격한 목격자들 많다. 그러나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알았고 북한군들인줄 몰랐다. 침투한 북한군 600명 중 490명이 사망했다. 광주망월동묘역에 아직도 신원이 확인이 안된 12구의 시신 중 11구의 시신이 

북한군들의 시신들이다. 북한군들은 교전으로 부상을 입어서 행군속도에 지장을 주면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개인마다 몸에 지닌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자폭을 했고 계엄군에 사살당한 북한군은 역시 개인마다 지닌 100그램의 고성능 폭탄으로 살아있는 북한군이 시신을 폭파해서 자폭흔적 

또는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그렇게 하면 북한군시신들을 찾기어렵고 발견하기 어렵다.

51. 말 몇마디만 섞어봐도 남한사람인지 북한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다.

반박. 북한군들은 남한사람의 말씨를 배우고 남한사람의 말씨를 써도록 6개월간 훈련을 받고 침투했고 광주에 와서도 남한사람의 말씨를 썼다.

북한군들은 실수로 북한말을 써서 북한군임을 알아챈 광주시민들을 2명만 제외하고 전부 죽였다.

52.전투요원들을 운송하는 선박이라면 군용선박이라야 하고 북한군 600명과 무기,식량,보급품,군용트럭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수송선이나 상륙정이

북한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있는데 무슨 배를 동원하여 들키지않고 12시간이상 항행할 수 있었을까?

반박. 북한군들은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했다. 무기,식량,보급품,군용트럭을 가져오지않고 무기와 보급품은 전남 17개 지역의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무장하여 현지조달했고 식량은 별로 어렵지않게 현지조달했고 군용트럭은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하여 군용트럭 328대를 현지조달했다.

그런 대형수송선이나 상륙정이 북한에 왜 없어.

53.상당기간 남한땅에서 숙식을 해결했어야 한다.그런데 어느 곳에도 노숙이나 취사흔적을 남지지않았다.

반박. 아니다 노숙흔적과 취사흔적을 남겼다. 침투한 북한군들은 시민군들이나 시위대들로 위장하여 숙식을 해결했고 북한군들의 숙영흔적이 있다.

광주 송암동 야산에 북한군들의 장기숙영흔적이 있는데 토굴과 숙영지와 북한군들이 소를 잡아먹은 흔적인 소뼈더미가 있다.북한군장기숙영물증이다.

54. 600명이상의 대병력이 승선한 군함이 해상분계선이남에서 아군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격침되거나 아군에 나포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는데 전면전을 

각오하지않은이상 성공가능성이 별로 높지않은 이런 무모한 작전을 수행할 정도로 북한의 수뇌부가 어리석을까?

반박.북한군들은 군함을 타고 침투한 것이 아니라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하여 격침이나 나포가능성이 아주 낮았다.작전성공가능성은 높았고 전면전도

북한은 각오했다. 광주폭동이 전남으로 확산되어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 정부가 전복되면 해주에서 대기하던

10만에서 15만의 북한군들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하는 전면전을 일으키려했다.

55.인민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가 인명피해없이 북한으로 복귀했다면 북한은 침투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유공장병들에게 대대적인 포상식을 

거행하고 경축하는 행사를 했을것이다.

반박. 북한군은 광주에 침투한 600명 중 490명이 죽고 110명이 살아서 북한에 돌아갔다. 북한으로 돌아간 그 110명의 북한군들은 공화국영웅칭호를 

부여받았다.북한은 5.18기념식을 매년 평양뿐만아니라 북한전역에서 대대적으로 거행한다.

56.침투한  부대명이나 침투장병의 명단을 제공하는 사람이 왜 없나?

반박. 아니다 있다.침투한 북한군부대는 북한군 534특수부대이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 침투한 북한군들의 명단이 있다.

57.포로,AK소총이 하나도 없다.

반박. 침투한 북한군들은 부상을 입고 움직이지못하는 부상자들이나 행군속도에 지장을 주는 부상자들은  2키로에서 3키로의 폭약과 맞먹는 개인마다 

몸에 지닌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자폭을 했고 자폭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그래서 북한군포로가 없다.

북한군들은 AK소총을 가지고오지않았고 전남의 44곳의 무기고들을 털어서 무장했다.북한군들은 총격전을 벌이려온것이 아니라 심리전을 목적으로 왔다.

58.데이비드 존스 당시 미합참의장은 1980년 5월 22일 북한의 부대이동은 없습니다. 

침투할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이 공격해오리라 생각하지않는다라고 말했다.

반박.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시작해서 5월 24일까지 맹활약을 했다. 북한군들이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해서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광주에 조용히 잠입을 하여 5월 20일까지는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해서 숨어있었다.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새벽 3시에 잠수함에서 영광해안으로 상륙했고 땅굴에서 새벽 2시에 은폐된 땅굴출구를 나왔다. 1980년에는 군사첩보위성이 야간에

지상의 사람들을 식별할 수 없었다고하니 새벽 3시와 새벽2시에 침투하는 북한군들을 군사첩보위성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했으니 정보요원들에게도 북한군들인 것을  들키지않았다.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들과 주한미군 2사단은 북한군들이 

맹활약을 5월 21일부터 시작하니 이틀 지난 5월 23일정도부터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광주폭동 중에 주한미군 2사단에서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는 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 2사단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2사단에서 

5월 23일정도부터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한 사실을 알았으니 5월 22일에는 데이비드 존스 당시 미합참의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사실을 보고를 

받지못해 그렇게 말한 것일거라고 추측한다. 정보요원들도 5월 23일정도 되어서야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보요원들이 광주폭동의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이틀은 걸릴 것이다.보고서를 보내도 보고서를 검토하는 시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데이비드 존스 당시 미합참의장이 그렇게 말했을거라고 추측한다.

59북한특수부대 600명이 한꺼번에 침투하면 드러난다.

반박. 2의 반박을 참조.

60.북한특수부대를 보내 광주를 점령할 이유가 없다.

반박. 12의 반박과 23의 반박을 참조. 북한군들이 남한에 침투하여 폭동,내란,반역을 일으키려면 친북성향,반역성향,폭동성향,좌익성향이 높은 대도시를 

선정해서 그런 행동들을 일으키려할 것이다. 북한군들이 폭동,내란,반역을 일으키려면 시골보다는 사회의 밑바닥인 자들과 학생들을 많은 도시에서 

그런 자들을 선동하거나 꼬드기어서 폭동,내란,반역에 가담하도록 할것이다. 광주폭동때 실제로도 사회밑바닥인 자들과 학생들이 폭도들로 가담했다.

광주는 전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북한특수부대를 보내 광주를 점령할 이유가 없는게 아니라 그런 이유들이 많고 침투시킬 곳으로 광주가 유력했다.

61.광수지목은 엉터리이다.

반박.광수는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의 별칭이다. 북한사람이 북한티비에서 광주폭동영상을 보다가 아는 사람이 티비에 나오자 

쟤 광수네라고 말한 것이 시초가 되어 그런 별칭이 생겼다. 황장엽이 광수라는 주장은 나도 믿지않는다. 그러나 영상분석시스템으로 분석하여 지목한 

478명인 광수들 사진들을 6개월간 광주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들에 전시하여 사진의 인물들이 광주시민들 중에 있으면 나타나달라고 했는데 겨우 

10명만 나타나 자신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4명이 광수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후에도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광주시민들은 

더 나타나지않는다. 478명의 광수지목 중에 4명정도는 잘못 지목이 될 수 있다. 478명의 광수지목이 엉터리라고 주장하려면 광주시민들 중에 300명정도가

광주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200명정도가 광수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야 478명 광수지목은 엉터리라고 할 수있다. 그런데 겨우 10명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4명이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았다. 그러니 478명 광수지목이 엉터리가 아니고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의 증거가 된다.

전라도것들은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10명과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은 4명을 아주 떠들며 478명 광수지목이 전부 엉터리라고 우기고있다.

62.월북한 윤기권은 핵심요원이 아니다.

반박. 윤기권이 핵심요원이 아니라도 광주폭동때 폭도였고 보상금을 받고 북한으로 월북을 한건 맞지않은가.

63.신원미상의 12구 시신들이 북한군시신이라는 증거가 없다.

반박.남한사람이 아니면 북한사람이지. 그 12구의 시신 중 11구의 시신은 광주폭동때 폭도들로 활동하다가 광주에서 죽었는데 주민등록에 없고 

남한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 광주에 침투해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북한군들일 가능성이 아주 높지.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도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해서 활동한 북한특수부대원들 중 사망한 자들중에 아직도 남한에서 

신원이 확인이 안된 12구의 시신 중 11구의 시신이 북한특수부대원들이라고 되어있다. 

북한고위층들이 남한에 오면  휴전선에서 먼 광주까지 가서 광주망월동묘역에 가서 참배를 할려는 이유도 그 11구의

북한군들 시신에 참배를 할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4.19희생자묘역에 북한고위층들이 참배안한다.

64.전두환정권하에서는 북한군들이 침투,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하려했을 것이다.

반박.  전두환은 1980년 6월 4일 22구의 신원미상시신들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으로 보고있다고 말했다. 북한특수부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22구의 단서가 있지. 광주와 광주근교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5월 23일정도부터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고한다.

5월 23일 이전에는 북한군들이 영광해안으로 침투했다는 첩보가 있었다고한다. 검문소 김대위의 말이 협회지에 났다.

계엄군 5.18상황실장 홍순영의 증언.국군일선지휘관들이 상부에 보고했으나 상부에서는 일리가 있다는 의견과 과한 주장이다라는 의견이 

대립했다고한다.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일선지위관들의 증언들과 상부보고도 단서가 되지.

주한미군 2사단에서 광주폭동때 광주에 북한군침투개입정보로 대책회의를 했고 주한미군 2사단 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말했다.

그 대책회의와 그 말도 단서가 되지. 

계엄군지휘자들과 계엄사령부는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세력이 광주에 침투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한다고 말했다.

공산당,공산주의자,간첩,적색분자,불순세력이 북한군과 비슷한 의미이다. 단서가 없는게 아니다.

65 1997년 대법원판결로 종결됐다.

반박. 1997년 대법원판결이 날때는 북한군침투개입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었다.북한군침투개입이 재판의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는데 1997년 당시

대법원이 무슨 수로 북한군의 침투,개입이 없었다는 판결을 할 수 있었겠나. 

전두환이 내란죄를 선고를 받았다고 북한군들이 침투,개입을 한 것이 안한 것으로 되는게 아니다.

66.북한이 해마다 국가차원의 기념행사를 한다고 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이 왔다고 할 수 없다.

반박. 김일성과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는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광주에 침투할 것을 지시해서 침투한 북한군들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다.

김일성,북한정권,북한군수뇌부,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그랬으니 북한은 5.18광주폭동(광주인민봉기)를 국가차원의 기념행사를 매년 거행하니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의 근거가 된다.

67.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이미 역사적 사실이다.

반박. 광주폭동은 처음에 법률적으로도 그렇고 평가도 광주폭동,내란,반역으로 규정되었다. 처음의 판결과 평가가 맞았다.

그후 민주화세력의 득세와 국민화합차원에서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주고 보상도 해주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하고 최근과 근래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근거들도 많이 나왔으니 더욱 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한다.

68.여러번 진상규명과정에서 북한군침투개입의 증거가 없었다.

반박. 1988년 광주특위. 2005년 국방부과거사규명위원회.2017년 국방부 5.18특조위. 2018년 5.18진상규명법.

2018년 5.18진상규명법이전에는 북한군침투,개입이 논의과정에 없었다. 2018년 5.18진상규명법에서 북한군개입에 대해 진상규명하도록 주제로

선정되고 법에 규정되었다. 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을 해놓고 그에 맞게 진상규명을 한다고 했으니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을 조사에서 배제하거나

무시했다. 그런 중대한 사실에 대해 입증할 증거들과 근거들이 전에는 부족했으나 이제는 입증할 증거들과 근거들이 충분하다.

69.김관진 국방부장관과 정홍원 국무총리가 북한군개입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박. 그런 발언은 5.18성역화에 부역하는 발언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의 장을 봉쇄하는 발상이다.

44의 반박을 참조. 정홍원국무총리가 그런말을 한 날은 2013년 6월 10일인데 그 당시에는 아주 중대한 사실인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인정하기에 

증거들과 근거들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이 충분하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는 매우 중대한 문제인데 정홍원 한 사람의 의견으로 모든걸 결정하려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주장들과 의견들과 증거들과 근거들을 모두 검토하고 연구하여 신중하게 결정을 하여야 한다.

70. 군과 정보기관과 경찰에 당시 작성된 서류에 그런 기록이 없다.

반박. 40의 반박을 참조. 북한특수부대의 행동지침에는 흔적을 남기지않아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 

그 지침에 따라 그런 서류들을 북한군들이 수거해서 전부 불태웠다. 수배받고있는 북한간첩은 즉시 구별해서 잡아내었겠지만 

남한민간인으로 위장해 있다가 시위대나 시민군으로 위장해서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활약하다가 짧은 기간에 치고빠져나가는 북한군들을

확실히 북한군들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7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반박.5.18광주폭동의 기록에는 허위사실인 유언비어들이 가득한 대자보들과 성명서들이 많이 있다. 유네스코에서 심사할때 그런 자료들이 허위사실인 

유언비어인줄 유네스코가 어떻게 알겠나? 또 5.18광주폭동기록 중에는 북한방송이 허위로 남남갈등을 조장하기위해 모략하는 내용들이 들은 기록들이

상당수 있다. 유네스코가 그런 기록물들이 북한방송이 허위로 모략하는 내용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있는 기록물들은 전부 제외하고 유네스코에 보냈으니 유네스코에서 북한군침투개입여부를 알지못한다.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있는 기록물들을 유네스코가 보았으면 유네스코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지 않았겠지.

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을 해놓고 그에 맞는 기록물들을 유네스코에 보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달라고 떼를 쓰니 유네스코도 들어준거지.

72.2013년 박근혜보수정부에서 북한군침투,개입이 부정된 적이 있다.

반박. 그 당시에는 북한군침투,개입여부가 주된 주제가 아니어서 철저한 조사가 행해지지않았다.

또 그 당시에는 그런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기에 증거들과 근거들이 부족한 면이 있었으나 현재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인정할 증거들과 근거들이 충분하다.

73.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주장은 정부와 국군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반박. 국군이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지못한 것은 부끄러운 면이 있지만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 중 490명을 사살했으니 

국군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도 아니고 국군을 모욕하는 것도 아니다. 당시 정부도 침투한 북한특수부대600명이 일으키고 주도한 광주폭동,내란,반역을 

빠른 기간에 효과적으로 잘 진압했으니 당시 정부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도 아니고 당시 정부를 모욕하는 것도 아니다. 부끄러운 면이 있다고 그런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무작정 부정하거나 숨기거나 덮을려는건 국가와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74.계엄군이 연행자들과 부상자들에 대해 대공용의점을 수사했으나 그런 혐의가 확인된 관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박. 1980년 5월 24일에 생존해잇던 북한특수부대원들은 5월 24일 밤에 전남도청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5월 24일 죽어있던 11명의 북한특수부대원들은 신원이 확인이 안되었다.사라진 북한군들과 죽어있는 북한군들에게서 어떻게 대공용의점을 찾을 수 있겠나

죽어있던 북한특수부대원들 11명은 사람들이 시민군들로 알았다.

75. 1980년 5월 20일 한미연합사령부가 미국에 보낸 전문에 그 시점까지 북한군의 어떤 이상한 동향은 발견되지않았다는 구절이 있다.

반박. 58의 반박을 참조.

76.1개대대라면 500명정도의 인원인데 이 많은 인원이 광주에 들키지않고 진입하는게 가능했겠나?

반박. 2의 반박을 참조.

77.전남도청지하실의 다이나마이트들은 뇌관을 끼우지않았고 도화선을 연결시키지않았다.엄포용으로 쌓아놓은 것이다.

반박. 아니다.전남도청지하실에 북한특수부대들이  8톤 TNT들로 제조하여 설치한 폭탄들은 뇌관도 끼우고 도화선도 연결시켜 

터트릴 준비를 완벽히 하여 대폭발이 가능하게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만든 것들이었다. 그 8톤 폭탄들이 폭발하면 광주시의 상당부분이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것들이었다. 전라도계엄군에서는 배승일만이 그 폭탄들을 해체할 수 있었다고한다.남한에 그 폭탄들을  해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명 안될 정도로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폭탄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수부대훈련을 아주 많이 받지않은 군인들은 그런 폭탄들을 만들 수 없었다고한다.

그래서 매우 위험하니 김창길 등 온건파시민군들이 계엄군들에게 그 폭탄들을 해체해달라고 요청하여 계엄군지휘자와 계엄군들은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폭탄전문가 배승일을 전남도청지하실에 보내 5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어렵게 폭탄들을 해체해서 대폭발이 일어나지않았다.

78 화순광업소에서 탈취한 다이나마이트 8톤은 일반인도 조립할 수 잇는 간단한 것으로 설치를 했던 사람들은 화순광업소에 근무한 김영복이었다.

반박. 77의 반박의 참조. 전남도청지하실에 8톤 TNT로 제조되어 설치된 폭탄들은 일반인들도 조립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 아니라 특수부대훈련을 

아주 많이 받은 군인들만이 제조가 가능한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만들었다. 북한특수부대가 전남도청지하실에서 폭탄을 제조할 당시 김영복은

신문마을 가정집에서 자신이 구한 다이나마이트들을 결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영복은 북한특수부대가 전남도청지하실에서 폭탄을 제조하고

설치하는 것을 구경도 못했다. 김영복은 북한특수부대가 전남도청에 폭탄들을 제조하고 설치한후 전남도청지하실에 가서 폭탄관리팀으로 있었다.

김영복과 시민군들 중 누구도 설치된 8톤 폭탄들을  해제를 못하니 김창길 등 온건파들이 계엄군들에게 그 폭탄들을 해체해달라고 요청했다.

79. 전남도청지하실에 있던 TNT는 10상자였다.

반박. 아니다. TNT10상자는 한국화약광주보급소에서 탈취한 것이고 8톤 TNT는 화순광업소에서 탈취한 것들이다. 8톤 TNT는 TNT3000상자였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도 8톤트럭 1대분량의 폭발물을 전남도청지하실에 설치했다고 되어있다.

80. 서정갑은 황장엽이 자신에게 말하기를 북한군이 머리가 나쁜가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황장엽은 광주사태는 북한군특수부대가 침투하여 선동하여 벌인 폭동반란사건으로 북한정권과 북한군이 일으켜놓고 남한정부에 책임을 전가했다고 말했고

광주학생문제는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北공명주의자들이 책임전가한 일이다라고 말했고 5.18은 북한이 배후조종한후 남한에 책임전가한 것이라고 

말했고 북한대남공작부인 조선노동당대남부서에 소속된 상당수가 광주사태가 끝난후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고 말하여 명백히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주장했다. 서정갑은 황장엽이 말한 북한군이 머리가 나쁜가라는 말을 의미를 왜곡해서 말하거나 일부만을 잘라내 왜곡하는 것 아닌가?

북한군들이 머리가 나쁘지않으니 광주에 침투해서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고 북한군 600명 중 110명은 북한으로 돌아갔지.

81.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도 물랐다.

반박. 40의 반박을 참조.

82.한미연합사령부와 육군본부정보참모부에 따르면 5월초부터 5월 18일까지 북한의 특이동향은 감지되지않았다고 함

반박. 58의 반박을 참조.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시작해서 5월 24일까지 맹활약을 했다. 국군과 주한미군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것을 안 날짜는 북한군들이 맹활약을 시작한 5월 21일의 이틀후인 5월 23일정도일 것이다.  5월 18일에는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것을 

알지못햇다.

83.김일성은 5.18광주사태가 날 즈음에  루마니아를 방문해서 김일성이 광주사태를 일으키고 주도한 것이 아니고 

북한당국이 5.18발생을 사전에 예측했다고 보기어렵다.

반박. 김일성은 1980년 5월 13일이전에 루마니아를 방문해 있다가 광주사태로 인한 향후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비하기위해 5월말까지 예정되어있던 

루마니아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5월 13일 급히 북한으로 귀국했다. 

김일성이 5월 13일 북한으로 급하게 귀국한 것은 광주폭동은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일어났으니 광주폭동의 상황을 보고 그에 대응하는 지시를 

내리기위한 것이다. 김일성과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는 1979년 10.26사태이후부터 

남한에 북한특수부대를 침투시킬것을 준비해왔고 김일성은 작전의 골자를 5월 1일이전에 오진우,김정일,이을설,문제심,김중린에게 지시하여 두었다.

김일성은 1980년 5월 1일 중앙당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비밀지령을 내려 북한특수부대의 공작을 직접 지시했고 그 지시에 따라 북한군현역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 김일성이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와 의논해서 만든 작전계획에 따라 5월 13일이전인 5월 1일 이미 북한특수부대광주침투를 김일성은

비밀지령을 내렸고 그 지령에 따라 북한특수부대 600명은 5월 2일 출격하여 5월 3일 광주에 침투했다. 김일성이 루마니아를 방문한 기간에는

미리 짜놓은 작전계획에 따라 또 김일성이 지시한 내용에 따라 북한군들은 움직였고 오진우,김정일,이을설,문제심,김중린이 광주상황에 대응하는 

지시를 내리면 되는 것이다. 김일성이 전화로 광주상황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려도 되는 것이고.  

김일성의 5월 13일 루마니아에서 급히 북한으로 귀국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긍정하는 근거가 된다.

5.18광주폭동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김일성과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와 북한군은 치밀한  계획과 준비에 따라 일어난 사건이다.

84.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

반박. 역사적 평가는 3분의 1도 안되었다.  광주사태의 많은 쟁점에 대해 의견이 대립한다. 그 쟁점 중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가 있고

광주사태를 폭동,내란,반역으로 보는 견해와 민주화운동으로 보는 견해가 대립한다.

1980년부터 1996년까지 광주사태를 폭동,내란,반역이라고 규정되었던건 잊었나? 1980년부터 1996년의 그  평가가 맞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후 민주화세력의 득세와 국민화합차원에서 광주폭동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주고 보상도 해준 것이다. 

근래와 최근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확실히 입증하는 증거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근거들이 많이 주장되고있으니

광주사태에 대해 전부 역사적 재평가를 해야한다. 광주사태에 대해 허위날조하고 왜곡하여 민주화운동이라고 우기면 안된다.

85. 600명을 보내는건 게릴라전이 아니라 전면전이다. 한 도시에 일어난 사건에 특수부대들을 대거 보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반박.  600명을 보내는건 전면전이 아니라 게릴라전이다. 전면전과 게릴라전의 정의를 찾아보라.

한 도시에 일어난 사건에 북한군600명을 보낸 것이 아니라 북한군 600명을 보내 한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광주는 당시 인구 80만의 전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니 북한군 600명정도는 보내야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

86.북한에서 작전에 대해 비밀에 부치고 서약서를 써서 소문이 안난다.

반박. 북한특수부대600명이 준비하다가 침투하면 아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게 되고 소문이 안날리가 없다. 시일이 지나면 소문이 나게 마련이고 큰 전과가

있었으니 더 소문이 나게 된다. 김일성이 북한특수부대 600명 광주침투를 지시했고 김정일이 광주인민봉기를 총괄해서 큰 전과가 있었는데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북한에서 소문이 안내겠는가?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도 가담했는데 소문이 안나겠는가?

북한교과서와 북한역사서와 북한대남공작책에는 김일성이 광주인민봉기를 일으키고 주도했다고 되어있다.

광주폭동이 약 39년이나 지났는데 소문이 안나겠는가?

87.땅굴근처에 근무했던 국군 수백명은 전사했어야 한다.

반박. 땅굴안에서 대기하던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은폐되어 찾기힘든 땅굴출구를 조용히 나와 땅굴출구에서 대기하던 간첩인 노인을 

따라 내려왔다.  땅굴출구에서 국군들과 마주치지않았으니 땅굴출구에서 국군전사자가 생기지않았다.

88.1980년 5월 21일 오전 8시 전남지역 진도개 하나 발령 5월 23일 해안경찰에 해안경계강화지시 전남해안군대해안경계 육로로 국군경계.

반박. 2의반박을 참조.

89. 황장엽 등 북한의 고위급탈북자들은 5.18북한군개입설을 언급한 적이 없다.

반박.터무니없는 헛소리다.황장엽은 명백히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주장했다. 80의 반박을 참조.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하여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박승원 부참모장(상장)은 탈북하여 남한에 망명하였는데 북한군광주침투를 주장했다. 내각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는 북한이 5.18광주소요를 계획하고

지휘했다고 말하여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주장했다. 망명한 북한무역회사사장인 김덕홍은 말하기를 북한통일전선부에서는 분기에 한번씩 강연을 하는데

광주문제는 자기네들이 한 것이라고 말한다고함. 그외의 북한의 고위급 탈북자들은 모두 5.18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주장한다.

90.1980년 광주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300키로미터정도 떨어진 도시이고 군사적으로 그다지 큰 가치가 없는 지역이었기때문에 북한측에서 광주에

개입한다고 별다른 이익을 얻거나 대한민국정부에 커다란 타격을 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반박. 남한에서 친북성향,반역성향,좌익성향,폭동성향이 전라도가 가장 높으며 폭동,내란,반역을 일으키려면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일으켜야한다.

광주에는 전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당시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와 간첩들이 꼬득이거나 선동하기 쉬운 사회밑바닥에 있는 자들과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실제로도 광주폭동에 사회밑바닥에 있는 자들과 학생들이 많이 가담했다.그래서 남한에서 폭동,내란,반역을 일으키려면 광주가 유력했다고

볼 수 있다.북한군들과 간첩들이 광주에서 폭동,내란,반역을 일으켜 전남전지역으로 확산시켜 전남국을 수립하거나 전라도의 폭동,내란,반역이 남한전체로

확산되면 당시 남한정부를 무너지게하여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군 10만에서 15만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했다.시위대와 시민군들의 중요구호가

전남국을 세우자와 전두환은 물러가라였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후삼국시대 고려가 후백제를 망하게 할때 나주지역을 고려에 먼저 포섭시켜 나주지역은 

후백제에 반역하여 고려와 왕건을 따라서 그때부터 후백제는 멸망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위와 같은 작전계획이 완전히 성공하지않더라도 북한군들은 

남한정부,국군과 광주시민들,전라도인들,시위대,시민군들을 이간시키고 남남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별다른 이익을 얻지못하거나 대한민국정부에 커다란 타격을 줄만한 상황이 아닌게 아니라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10.26사태이후 혼란기에 대한민국에

커다란 타격을 줄만한 상황이었다.

91.북한군개입이 맞다면 신군부의 무능력과 직무유기를 증명하는 것이다.

반박. 73의 반박을 참조. 북한군들임을 빨리 알아보지못하건 실수이나 침투한 북한군들 600명 중 490명을 사살했으니 무능력과 직무유기가 아니지.

92.  600명을 수송하기위해 상당수의 선박이 필요한데 북한군은 수송능력이 없다.

반박. 북한군들은 한 무리는 잠수함으로 한 무리는 땅굴로 침투했다.북한은 1965년 유고급잠수함 6척을 들여왔고 1973년에는 로미오급잠수함을 22척을 

들여왔다. 그외에도 북한은 잠수함을 들여오거나 건조했다.북한은 1980년에 잠수함 보유수가 남한을 훨씬 능가했다.1980년에 북한이 보유한 잠수함들로

수백명의 북한군들을 전라도해안으로 침투시킬 수송능력이 충분히 있었다.선박으로도 수백명의 북한군들을 수송할 능력이 있었다.

북한이 수백명의 북한군들을 수송할 능력이 왜 없어.

93.북한군은 남한으로 북한군을 침투시킬때 국군으로 위장시키고 국군군복을 입혀 내려보낸다.

반박. 북한군이 국군으로만 위장시키고 국군군복만 입혀 내려보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남한민간인들로 위장시키고 남한민간인복장을 입혀 내려보낼 수 있는거지.

94. 광주사태는 예측가능한 사건이 아닌 돌발사건이고 600명의 부대를 편성,교육,출동명령을 내릴때 시간이 걸린다.

반박. 46의 반박을 참조. 광주폭동은 돌발사건이 아니라 김일성과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와 북한군이 10.26사태이후 치밀하게 준비해서 일으키고

주도한 것이다.

95. 모든 무장간첩들의 시도가 실패했는데 광주만 성공했다면 이상하다.

반박. 광주폭동전의 무장공비들과 무장간첩들이 모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성공한 것들도 있고 남한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으로 어느정도 성공했다.

광주폭동때는 10.26사태이후의 남한혼란기를 이용해 북한군의 강점인 북한특수부대,땅굴,잠수함,심리전으로 친북성향,반역성향,좌익성향,폭동성향이 

남한에서 가장 높은 전라도에 북한군들600명을 보내 휴전선에서 아주 먼 광주에 북한군들을 침투시켜 국군의 허를 찔러 성공을 거두었다.

북한은 특수부대가 강하고 땅굴들이 위협적이고 잠수함강국이고 심리전의 고수들이다. 휴전선에서 아주 먼 광주에 북한군 600명을 침투시켜 

폭동을 일으킨 것은 국군의 허를 찌른 것. 손자병법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나지.

공기무비 출기불의 즉 적이 방어하지않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예상치못한 곳으로 나아가라.

북한이 휴전선에서 아주 먼 광주에 북한군들을 침투시켜 폭동을 일으킬지 국군과 당시 남한정부는 예상하지못했고 방어하지도 않고있었다. 

그래서 북한군들의 작전은 성공했다.

96. 북한군들 600명을 침투시켰으면 정전협정위반이다.

반박. 정전협정이 있은후 북한은 정전협정을 많이 위반했다.

97. 북한군들 600명이 침투했으면 한미연합사,유엔사 모두 가만 있지않았을 것이다.

반박. 맞다 가만있지않았다. 가만있지않았으니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 중 490명을 사살했지. 또 광주폭동때 미국항공모함 미드웨이호와 

미국항공모함  코럴시호가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광주폭동이 민주화운동이었으면 미국의 항공모함 두 대가 한반도에 왔겠는가?

98. 대간첩작전을 수시로 실시했다.

반박.  2의 반박을 참조. 대간첩작전으로 간첩들과 북한군들을 효과적으로 잡아내지못했다. 광주폭동때 북한군 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하고

간첩 약 1000명이 광주폭동을 보조했다.  광주폭동때 간첩들이 광주에서 무려 약 1000명이나 활동했는데 대간첩작전을 수시로 실시한 것으로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부정할 수 있나?

99. 광주사태에 여러가지 유언비어들이 돌았으나 북한군들이 광주에 내려왔다는 유언비어는 없었다.

반박. 1의반박을 참조. 광주폭동때 주한미군 2사단에서 북한군침투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2사단의 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다. 광주와 광주근교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군사기밀이라 광주시민들에게 널리 퍼지지않았을 것이다

당시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것을 아는 광주시민들이 쉬쉬 하면서 숨긴다는 증언들이 상당히 있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인정이 되면 전라도세력에 큰 타격이 되니 알던 광주시민들이 쉬쉬 하면서 숨길 것이다.

100. 북한군광주침투개입설은 소수설이다.

반박. 소수설이 다수설이 되고 통설이 되기도 한다. 근래와 최근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발표되었고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많이 주장되고있다. 

그때문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설은 통설이 되어야 하고 역사적 진리가 되어야 한다.

101. 광주도청지하실에 있던 폭탄들을 해체했는데 광주도청에 북한군들이 있었으면 보고만 있었겠나? 왜 사용안했나?

반박.  광주도청에 있던 북한군들은 5월 24일 밤에 광주도청에서 전부 갑자기 사라졌다. 5.18단체들도 시민군들과 시위대들이  5월24일까지는 

낯선 자들이 전남도청에 있어서 전남도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끼리이면 광주시민들인 시위대와 시민군들이 

전남도청에 들어가지못할리가 없지. 그 낮선자들이 북한군들이기 때문에 광주시민들인 시민군들과 시위대들이 전남도청에 못들어간거지.

김창길 등 온건파시민군들이 광주도청지하실에 설치된 8톤의 

폭탄들이 매우 위험하니 계엄군들에게 먼저 전남도청지하실에 설치된 8톤 폭탄들을 해체해달라고 요청하여 계엄군의 폭탄전문가 배승일이 전남도청에 

가서 5월 25일과 5월 26일에 걸쳐 8톤 폭탄들을 어렵게 해체했다. 배승일이 폭탄을 해체하던 5월 25일과 5월 26일에는 전남도청에 있던 북한군들이 

전부 사라져서 북한군들이 없었다. 김창길 등 온건파시민군들은 자신들이 폭탄을 해체해달라고 요청했으니 배승일이 이틀간 폭탄을 해체할때 폭탄을 

해체하는 것을 허용하고 배승일의 신변을 보호해주었다. 북한군들은 8톤의 폭탄으로 계엄군들이 재진입하면 한꺼번에 대폭발시켜 광주를 날려버리고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해서 위협용으로 사용했다. 북한군들은 8톤 폭탄들을 위협용으로 사용한거지 실제로 대폭발시킬려고 한건 아닐거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북한군들이 8톤폭탄들을 한꺼번에 대폭발시켜 광주시민들 수십만을 죽이면 전라도인들과 전라도는 영원히 반북으로 돌아선다.

그때문에 북한군들은 8톤 폭탄들을 터트려 광주시민들 수십만을 죽이지않았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테러를 저지르려 침투한 것이 아니라 심리전으로

광주의 폭동이 전남으로 확산되어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수립하거나 전라도의 폭동을 남한전체로 확산시켜 당시 남한정부를 전복할려고 한 것이다.

그러니 8톤 폭탄들을 터트려 광주시민들 수십만을 죽여서 전라도인들이 영원히 반북으로 돌아서버리게 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겠는가?

102. M16총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정되면 폭도로 규정되어 보상을 못받으니 칼빈총,M1총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정된 민간인사망자비율이 높았다.

반박. 광주폭동과 같은 국가적 중대사건에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을 칼빈총,M1총에 의해 사망한것으로 허위감정,허위판정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고 자격도 박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민간인사망자들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이해관계도 없는데 감정자들,판정자들이 허위감정,허위판정을 했을리가

없다. 광주폭동이 난지 얼마 지나지않아 작성된 육군본부의 자료와 보안사의 자료와 계엄사의 자료는 많은 전문가들이 감정과 판정에 참여해서 

그렇게 감정과 판정을 한 것이다. 육군본부의 자료와 보안사의 자료와 계엄사의 자료 모두 칼빈총,M1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의 비율이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 비율보다 훨씬 높다. 광주폭동때 민간인사망자 166명 중에 총상에 의한 사망자는 116명인데 육군본부의 자료에는 M16총에 의한 

사망자가 36명이고 칼빈총,M1총에 의한 총에 의한 사망자가 80명이다. 보안사의 자료에는 M16총에 의한 사망자가 24명이고 칼빈총,M1총에 의한 

사망자가 96명이다. 계엄사의 자료도 칼빈총,M1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이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보다 훨씬 높다.

칼빈총,M1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이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보다 훨씬 높다는건 폭도들이 전남의 무기고 44곳을 털어 가져간 

칼빈총,M1총으로 폭도들이 폭도들을 죽였다는 뜻이다. 오발사고가 그렇게 많이 날리가 없고 폭도들의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을 했다하더라도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폭도들끼리 그렇게 많이 죽였을리가 없다.폭도들끼리 많이 죽인건 폭도들 중에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을 많이 죽였기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북한군들은 북한군들임을 눈치챈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을 모두 죽였고 북한군들이 죽여놓고 계엄군들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해서 

광주폭동이 증폭되게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을 죽였고 북한군들을 따라 월북하려던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을 북한군들의 행군속도를 따라오지못할거라고 

생각해서 대부분 죽였다. 그래서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인 폭도들과 광주시민들 약 120명을 죽인 것이다.

광주폭동이 난지 26년이 지나 작성된 광주지검의 자료는 믿기힘들다.광주지검의 자료에는 M16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이 칼빈총,M1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보다 훨씬 높다. 광주지검은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보다 칼빈총,M1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이 훨씬 높다고 판정하면 

전라도인들에게 아주 불리해지니 뭔가 조작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최근 LMG기관총에 의한 사망자들이 47명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북한군들이 전남의 무기고들 44곳을 털어 탈취한 무기들 중에 LMG기관총이 있었다

북한군들은 LMG기관총 두 대를  전남대병원 12층 옥상에 설치하고 도청방면으로 또 헬기에 사격했다. LMG기관총에 의한 47명의 사망자들은 북한군들이

LMG기관총으로 도청방면으로 총격한 것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AH-1J헬기에는 발칸포를 장착하고 500MD헬기에는 6열기관총을 장착했다.

UH-1H헬기에도 LMG기관총을 장착하지않았다고한다. 계엄군들 보병들도 LMG기관총으로 폭도들에게 총격을 가하지않았다고한다.

LMG기관총에 의한 47명 사망자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의 증거가 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인 폭도들끼리 LMG기관총으로 47명이나 죽일리가 없지. 

LMG기관총에 의한 47명사망자는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증거도 된다. 당시 헬기에 전부 LMG기관총을 장착하지않았으니 그렇다.

103.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표창을 받는데 수백명을 사살한 국군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다는 말인가?

당시 시위대와 시민군들과 북한군들이 구분이 안되어 사살까지 하고서도 북한군들을 사살한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시민군들을 사살한 것으로 아는 경우들이

많았다.계엄군들에 사살된 북한군들을 살아있는 북한군들이 북한군 개인마다 몸에 지니고있던 2~3키로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사살된 북한군시신들을 모두 폭파하고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그때문에 국군들이 북한군들을 사살을 해도 북한군시신들을 찾지못하고 발견을 

못했기때문에 북한군들인 것을 확인하는것이 어려웠다. 광주망월동묘역에 있는 신원이 아직도 확인이 안된 12구시신 중 11구의 시신들이 북한군들의

시신들이다.  그 시신들은 신원이 확인이 안되어 북한군들 시신이라고 단정하지못했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 그 11구의 시신들이

광주에 침투했던 북한군들시신이라고 적혀있다.국군들이 사살한 북한군들 수백명시신들을 북한군들 시신들 수백명이라고 밝히면 광주와 광주근교에서 

국군들과 북한군들이 전쟁을 벌인 것을 밝히는 것이고 북한군들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도 밝히는 것이 된다.

그런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전면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고 당시 혼란기에 남한 국민들이 크게 동요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사실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않은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전두환은 6월 4일 시원미상의 22구의 시신들이 북한군들 시신들로 보인다라고 말하여 북한군들을 사살한 것을 말했다.

104. 김일성과 김정일이 5월 18일 광주상황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해도 그 부대가 광주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고 20일이후일 것이다.

반박. 83의 반박을 참조.

105. 5월 18일부터 광주일원이 봉쇄되었고 5월 21일 계엄군들은 광주에서 철수하여 광주외곽을 포위해서 대대규모의 북한군들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침투했다면 국군들과 대규모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반박. 북한군들은 광주가 봉쇄된후에 광주에 침투한 것이 아니라 광주가 봉쇄되기전인 5월 3일 광주에 남한 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침투했다.

계엄군들과 북한군들의 대규모전투가 발생했다. 침투한 북한군들600명은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하며 대규모전투를 벌여 광주에 있던 계엄군들 4000명을

광주밖으로 철수하게 한다. 계엄군들이 광주밖으로 철수한 것은 상대의 공격이 거세니 희생자들을 줄이기위해 작전상 후퇴를 한것으로 추측된다.

군사훈련도 받지않은 대학생들 600명이 인원수도 훨씬 많고 최고의 군사훈련을 받은 막강한 공수부대를 광주밖으로 철수시킬 수 있나?

비무장한 시위대들이 많이 있었지만 비무장한 시위대들이 총으로 무장한 공수부대 4000명을 광주밖으로 철수시키지못한다.

양아치들이 많았던 광주시민폭도들이 그렇게 뛰어나게 전투를 벌일 수 있나?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에는 예비군출신도 별로 없었다고한다.

북한군들이 광주교도소를 5회 습격할때 전투가 벌어졌다.  5.18단체들은 시민군들과 시위대들이 광주교도소를 한번도 습격하지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누가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나?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는 것을 본 목격자들도 많고 그런 기록들이 

다 있는데. 그러니 북한군들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것이다.

북한군들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해서 점령하여 광주교도소에 있는 재소자 2700명과 그 재소자 중에 있는 좌익사범 180명을 광주폭동에 합세하게 하여

광주폭동의 맥을 이어가게 하려 한 것이다. 북한군들이 광주밖에서 북한으로 도주할때도 계엄군들과 대규모전투가 벌어졌다.

106. 광주폭동당시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이 남한에서 1980년 발생한 시민봉기당시의 소요사태를 이용하려 시도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은 

그런 증거를 보지는 못했다. 당시 자신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소요사태의 원인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반박. 13의 반박을 참조.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전두환과 매우 사이가 안좋았고 갈등도 심했다. 광주폭동에 대해 북한군침투개입을 인정하면

당시 권력을 어느정도 장악하고있던 전두환이 북한군침투개입방어를 명분으로 권력을 확실하게 많이 장악하게 될것이니 전두환에게 아주 유리해진다.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그렇게 되는 것을 아주 싫어했을 것이다. 광주폭동당시 광주에 북한침투개입정보로 주한미군 2사단에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 2사단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2시단에서 존 위컴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그런 보고를 했을텐데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왜 그렇게 말할까? 북한이 소요사태를 이용하려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고 소요사태의 원인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있었다고 말했다. 가능성있었다..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있었다. 말의 의미에서 왠지 뭔가 진실을 말하지않는듯한 느낌을 주고 

면책성발언을 하는듯한 느낌도 주지. 북한잠수함으로 북한군들이 상륙하는 것이 목격된 것도 아니고 땅굴로 북한군들이 침투하는 것이 목격된 것도 아니고 

AK소총이나 북한군복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북한군들이 북한군들이라고 밝히거나 자백을 한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있었고 그런 증거를 보지는 못했다고 말한게 아닐까?

광주폭동당시 미국항공모함 코럴시호와 미국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미국대통령과 미국국방장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이 그런 결정을 했겠지.

광주사태가 광주시민들이 민주화운동을 한것이라면 미국의 항공모함 두 대가 한반도에 전개되었겠는가?

107. 전두환일지인 호랑이일지와 양지일지에 5.18북한군투입내용이 없다.

반박. 내가 호랑이일지와 양지일지를 다 보지못했다. 기사에 있는 내용만으로 말하겠다. 그 기사에는 호랑이일지와 양지일지에 광주사태는 

북한의 계급투쟁에 동조한 국가전복경향을 띠고있다.현실정치문제를 내세워 공공연히 정부태도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의 시위.

더구나 위험스러운 것은 이번 학생시위와 광주사태를 계기로 북한괴뢰의 계급투쟁의식에 공공연히 동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혁명으로 국가를

전복하겠다는 경향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에 대해 전라도것들은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왜곡한 것이 아니다.맞는 말이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 600명은  세상이 확 뒤집어져버릴 것을 바라는 광주의 사회밑바닥인 자들과 학생들을 꼬드기고 선동하여 광주폭동에 가담하게

하여 광주폭동,내란,반역을 일으키고 주도하여 그 폭동이 전남전지역으로 확산되면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전라도의 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당시 남한정부를 전복할려고한 것이다.

호랑이일지와 양지일지에 있는 위 내용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건 아니지만 광주폭동때 광주침투북한군들의 작전계획과

상당히 비슷하니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어느정도는 추정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전라도것들이 위 기사내용도 적었던데 전라도것들이 

적은 기사내용에 저 정도의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추정하는 내용이 있으면 호랑이일지와 양지일지를 전부 샅샅히 찾아보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지.

전두환은 1980년 6월 4일 말하기를 22명의 신원미상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들로 보고있다라고말해 

처음으로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했고 39년간 계속 그런 주장을 했다.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광주폭동당시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고 상부에 보고도 했다. 

주한미군2사단에서 북한군광주침투개입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2사단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광주폭동때도 전두환은 북한군광주침투개입정보를 보고받았을것이다. 전두환 자신이 그 정보를  밝히는 시기와 형식을 1980년 6월 4일 

주한미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찬에서 처음 밝힌거지 그 정보를 밝히지않은 것이 아니다. 그 주장을 39년간 계속 주장했고 호랑이일지와 양지일지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추정하는 내용이 있지.그러니 호랑이일지와 양지일지는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가 되지못한다.

전두환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않은건 광주폭동때 북한군들 600명이 광주와 광주근교에서 국군들과 전쟁을 벌였고 

북한군들 600명 중 490명이 사살되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북한과 전면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고 혼란기에 국민들이 크게 동요하게 되니 광주폭동때

북한군들600명이 광주와 광주근교에서 국군들과 전쟁을 벌엿다는 사실과 국군들과 전쟁을 벌인 북한군들 600명 중 490명이 국군들에게 사살되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않은 것일거라고 추측한다.

108. 광주사태기간 중에 시위대와 시민군들과 광주시민들이 북괴는 오판말라 김일성은 오판말라라는 글을 적은 현수막을 들은 적이 있다.

반박. 그 말들을 만든 사람은 광주사태주동자 중의 한 명인 윤한봉인데 윤한봉의 말에 의하면 모두 빨갱이로 몰릴까봐 일부러 북한을 까는 그런 말들을 

한줄씩 넣어주고 그랬다고 증언했다. 윤한봉은 반북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종북성향과 좌익성향을 가지고있었다.

109. 북한군들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면 왜 당시 남한정부는 대대적으로 홍보하지않았나?

반박. 북한군들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말하지않은 것이 아니다.전두환은 광주폭동이 끝난후인 1980년 6월 4일 22명의 신원미상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으로 보고있다고 말하여 처음으로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했고 39년간 계속 그런 주장을 해왔다.

광주폭동당시와 광주폭동이 얼마 지나지않아 광주에 북한군들 600명이 침투하여 국군들과 전쟁을 벌이고있다거나 벌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전면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고 당시 혼란기에 국민들이 크게 동요하게 된다.전면전은 국민들에게 국군들에게 남한정부에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해서 국군들과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않았을거라고 추측한다.

또 북한군들 600명과 간첩 약 1000명이 광주에서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와 광주경찰은 큰 책임을

져야하고 큰 문책을 받게되고 큰 비난을 받게되고 아주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일들을 방지하기위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와 광주경찰은 몰랐다고

말하거나 부정해버리자라고 결정했을거라고 추측한다. 당시 남한정부는 중앙정보부와 보안사와 광주경찰의 난처한 입장을 고려해서 북한군들 600명이

광주에 침투해서 계엄군들과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않았을거라고 추측한다.

110. 광주폭동때 광주에 있던 기자들 중에는 북한군들을 못보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북한군들이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위장하여 활동을 했는데 기자들이 북한군들인줄  알기어렵다. 

북한사람들을 남한사람들로 위장해서 보여주면 당시 기자들은 북환사람들이라고 판정할 수 있겠는가?

남한사람들을 북한사람들로 위장해서 보여주면 당시 기자들은 남한사람들이라고 판정할 수 있겠는가?

당시 기자들은 남한사람들과 북한사람들을 구분하는 비법이라도 가지고있었는가? 

북한군들이 많았던 지역들에 가서 북한군들을 취재를 해본 적이 있었는가?

행동이 크게 제약되었던 당시 광주에서 여러 곳을 취재했는가? 유언비어가 많이 나돌때 유언비어에 영향을 받지않았는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은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말하고싶은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 중에 북한특수부대의 전술,특징,침투방법,지휘체계를 아는 기자들이 있었는가?

없거나 극소수일 것이다. 전라도것들이거나 종북좌파들이거나 종북좌익들인 기자들은 북한군을 보고서도 못보았다고 말할 것이다.


위에서 1부터 110까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10개는 모두 나의 반박에 의해 박살이 났다.

수많은 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이 39년간  조사하고 연구하고 생각해서 만든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10개는 나의 반박에 의해 박살이 났다. 내가 반박해서 박살낼 말들의 골자를 생각하는데 1개당 5초가 걸렸다. 110개니 550초 즉 약 9분이 걸렸다.

39년간 수많은 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이 조사하고 연구하고 생각해서 만든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10개를 9분만에 반박해서 박살낼 골자들을 생각하다.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겁나지.겁날거다. 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겁날거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주장이 거짓이니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을 반박해서 박살내는 것이 

매우 쉬웠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10개 중에 쓸만한 증거나 근거는 단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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