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245개.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길지만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245개를 가지고있다. 그것들을 여기서 모두 적겠다.

245개 중에 반박을 할 수 없는 것이 100개정도는 될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과 합치면 

모두 400개정도는 될것이다. 400개 중에 반박을 할 수 없는 것이 150개정도는 될 것이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진실이니 증거들과 근거들도 많고 반박을 할 수 없는 증거들과 근거들도 많다.

반면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주장의 증거들과 근거들은 모두 쉽게 반박이 되어 박살이 난다.

내가 여기서 적은 글인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09개를 반박하겠다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245개.

1.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해서 맹활약을 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은 연고대생으로 사칭하여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이라고 속였다.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북한군들 600명에 대한 군의 기록과 정부의 기록과 기자들의 기록과 5.18단체의 기록이 모두 있다.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북한군들 600명 중 500명을 광주시민들은 환영식까지 열어주었다. 광주시민들도 연고대생으로 칭한 600명이 광주사태를 주도했다고

인정한다.연고대생으로 사칭한 북한군들 600명이 광주에서 맹활약하며 20사단 지휘부차량과 호위차량을 공격하여 차량을 탈취하고 전남17개지역의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엄청난 무기들로 무장하고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하여 장갑차 4대와 차량 410대를 탈취하고 광주교도소를 5번 습격하고 계엄군들과 총격전을

벌여 계엄군들을 광주에서 쫓아냈다.연고대생으로 사칭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당시 광주에 있던 계엄군들 4000명과 총격전을 벌여 계엄군들 4000명을 

광주에서 쫓아낼때 총으로 무장하지않은 광주시민들인 시위대들이 많이 있었지만 총으로 무장하지않은 많은 시위대들이 총으로 무장한 계엄군들 4000명을 

광주에서 쫓아내지못한다.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사격술과 전투능력이 뛰어나고 극렬했으니 광주에 있던 계엄군들 4000명은 희생자들을 적게 나오게 

하기위해 작전상 철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군사훈련을 받지않은 대학생들 600명이 그렇게 뛰어나게 전투를 벌일 수 있나? 

양아치들이 많았던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이 그렇게 뛰어나게 전투를 벌일 수 있나? 광주시민들인 폭도들 중에는 예비군출신도 별로 없었다고한다. 

군사훈련도 받지않은 대학생들 600명이 어떻게 최고의 군사훈련을 받은 막강한 공수부대원들 4000명을 총격전을 벌여 광주밖으로 쫓아낼 수 있나?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은 사망자명단에도 없고 5.18유공자명단에도 한 명도 없다.현재까지도 자신이 광주사태때 광주에서 연고대생으로

시민군으로 활약했다고 나타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다.그런 자들이 나타나면 보상금도 많이 받고 여러가지 혜택도 많고 지들딴에는 명예롭게 생각할텐데 

단 한명도 그런 자가 나타나지않고있다.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은 북한군534특수부대로 북한군최정예부대이니 위와 같은 결과가 된 것이다.

2.청진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

함경북도 청진시 청진역 북방 600미터 낙타산 해발 70미터에는 광주폭동때 광주와 광주근교에서 활약을 하다가 사망한 광주침투534특수부대전사자 158명의

묘지가 있는데 이를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라고 새겨져있다. 그 렬사묘는 1980년 8월 조성되었고 1998년 2월 8일 묘비가 세워졌다.

그 묘에는 시신들이 있는게 아니라 가묘로 전사자 158명의 유품 등이 매장되었다. 시신들은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고 광주에 있던 11구의 북한군시신들은

5.18광주망월동묘역에 매장되었고 광주근교에 있던 시신들은 살아있던 북한군들이 북한군개인마다 몸에 지니고있던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폭파하여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어 암매장했다.북한군들의 암매장된 시신들은 그렇게 했기때문에 찾기도 힘들고 발견도 힘들다

광주근교에서 전사한 북한군 534특수부대 158명의 묘와 묘비이다.묘와 묘비의 비석의명단과 3에서 말할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의 전사자명단이 정확히 

일치한다. 전라도것들은 청진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는 북한 어느 지역에나 다 있는 묘와 묘비라고 터무니없는 변명을 하고있으나 북한

어느 지역에나 다 있는 묘와 묘비는 6.25참전인민군전사자들의 묘와 묘비이고 청진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는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을 하다가 광주근교에서 전사한 북한534특수부대전사자들 158명의 묘와 묘비이다.

3. 북한으로부터 입수한 광주폭동때 맹활약을 한 북한특수부대에 대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

그 문서들에 대한 내용은 유튜브와 구글에 동영상이 있다. 그 문서들에는 광주에 침투한 특수부대이름과 병사수와 침투방법과 활약내용들과 전사자들명단과

전투기록장과 사망자처리내용과 그 전사자들의 묘와 묘비인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 사진과 명단이 있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특수부대는 

북한군534특수부대이고 그 특수부대원들 600명이 1980년 5월 2일 한 무리는 잠수함으로 5월 3일 새벽 2시에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영광해안에 

상륙하여 대기하고있던 간첩을 따라 광주에 조용히 잠입했고 다른 한 무리는 땅굴로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철원에 있는 땅굴출구를 나와 대기하고

있던 노인간첩을 따라 광주에 조용히 잠입했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특수부대 600명은 1980년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하기시작해서 5월 24일까지 

맹활약을 하다가 5월 24일 밤에 전남도청에서 갑자기 전부 사라졌다.그 문서들에 있는 활동내용은 침투한 북한군특수부대 600명은 20사단지휘부차량을 

공격하여 차량들을 탈취했고 아세아자동차를 공격하여 장갑차 4대와 군트럭 305대와 버스 105대를 탈취하여 운행했고 전남 17개시군의 44곳 무기고들을 

공격하여 무기들을 탈취했고 전남도청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광주교도소를 5차례 공격했고 전남도청지하실에 8톤트럭 1대분량의 TNT들을 폭탄들로

제조하여 설치했고 광주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 문서들에 전사자들명단이 있는데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명단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문서들에는 북한군특수부대 600명은 490명이 광주와 광주근교에서 죽고 110명이 북한으로 살아서 철수했다고되어있다.

전사한 북한군특수부대 490명은 11구의 북한군시신들은 5.18광주망월동묘역에 매장되었고 475명의 북한군시신들은 광주근교에 암매장되었다고하고

4명은 북한으로 가다가 사망했다고 되어있다. 그 문서들은 북한군과 보위부에서 작성하였다고 하는데 그 문서들에 의할때 광주폭동이 모두 논리적으로 

잘 설명이 된다. 그 문서들의 전사자들명단과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에 있는 비석의명단과 일치하니 그 문서들이 진실이라는 증거이다.

북한군이나 보위부가 허위정보나 역정보를 흘리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이익이 되거나 유리하게 하는 허위정보나 역정보를 흘리지 그들에게 타격이

되고 불이익이 되게  하고 불리하게 하는 허위정보나 역정보를 흘릴리가 없다.그래서 그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는 허위정보나 역정보가 아니다.

4.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침투한 북한군들이 맹활약을 시작한 5월 21일의 이틀후인 5월 23일정도에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해 맹활약을 하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월 23일이전에도 북한군들이 영광해안으로 침투했다는 첩보를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알고있었다. 국군일선지휘관들이 북한군침투정보를

상부에 보고를 했으나 상부에서는 일리가 있다는 의견과 과한 주장이다라는 의견이 대립했다고한다.

5.광주폭동때 주한미군 2사단에서는 광주에 북한군들 1개대대가 침투했다는 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2사단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 1개대대가

침투했다고 말했다.

6.1980년 5월 광주에 북한특수부대로 침투해서 맹활약을 하다가  살아서 북한으로 철수하여 북한에서 살다가 북한에서 어떤 이유로 못살게 되어 

탈북하여 남한으로 온 탈북자 몇명과 그런 탈북자들이 해외로 간 탈북자들 몇명.     그 탈북자들은 모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 말한다.

그들이 광주폭동때 광주에 북한군들로 침투해 활약했으니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를 그들보다 더 잘 하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그런 탈북자들로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김명국(가명),박승원, 분당에 사는 탈북자가 있다.

7.김일성은 1980년 5월 중앙당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비밀지령을 내려 북한군특수부대의 공작을 직접 지시했고 그에 따라 북한군현역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  김일성이 직접 지시.

8.황장엽 등 북한의 고위급탈북자들은 모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한다.

북한정권과 북한군의 고위급에 있던 자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를 잘 아는 부류이다.황장엽은 광주폭동은 북한군특수부대가 침투하여 선동하여

벌인 폭동반란사건으로 북한정권과 북한군이 일으켜놓고 남한정부에 책임을 전가했다고 말했고 광주학생문제는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北공명주의자들이 

책임전가한 일이다라고 말했고 5.18은 북한이 배후조종한후 남한에 책임전가한 것이라고 말했고 북한대남공작부인 조선노동당대남부서에 소속된 상당수가

광주사태가 끝난후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고 말하여 명확히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했다.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해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박승원 부참모장(상장)은 탈북하여 망명하였는데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를 주장한다. 망명한 북한무역회사사장인 김덕홍은 북한통일전선부에서는 분기에

한번씩 강연을 하는데 광주문제는 자기네들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외의 북한의 고위급탈북자들은 모두 5.18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한다.

9.북한군특수부대출신 탈북자들이 모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한다.

북한에서 북한군특수부대에 있던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상관들이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해서 북한특수부대들에 돌아가서 활약내용을

말하는 것을 들었으니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를 잘 아는 부류이다.

10.북한교과서와 북한역사책과 북한대남공작책에는 모두 광주인민봉기는 김일성이 일으키고 주도했다고 기술되어있다.

11.전남도청지하실에서 북한군들이 화순광업소에서 탈취한 TNT8톤을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제조하여 만든 폭탄들을 설치했다.

그 폭탄들은 대단히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제조하였기때문에 전라도지역 계엄군들 중에서는 폭탄전문가 배승일만이 해체할 수 있었고 온건파시민군들이

계엄군들에 폭탄들을 해체해달라고 요청하여 배승일이 5월 25일 5월 26일 이틀에 걸쳐 어렵게 폭탄을 해체해 대폭발이 일어나지않았다.

남한에서 그 폭탄들을 해체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명밖에 없을 정도로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제조되었다고한다. 그렇게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폭탄들을 

제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특수부대훈련을 아주 많이 받은 군인들만이 가능하다고한다. 군사훈련을 받지않은 대학생들,고등학생들이 그런 폭탄들을 

제조할 수 있나? 양아치들,구두닦이들,깡패들이 대부분 이었던 광주시민들인 시민군들이 그런 폭탄들을 제조할 수 있나?광주시민들인 시민군들에는 

예비군출신도 별로 없었다고한다. 예비군출신들도 그런 폭탄들을 제조못한다.

12.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군들(별칭 광수. 북한사람이 북한티비에 광주폭동영상이 방송이 되니 북한티비를 보다가 아는 사람이 나오자

쟤 광수네라고 말한 것이 시초가 되어 광수라는 별칭이 생겼다)으로 지목된 478명 중 광주시민들이 10명만이 자신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4명만이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았다. 99%의 정확성을 가진 영상분석기업으로 분석하여 478명 광수들을 지목하여 광주시민들 중에 광수가 있으면 나타나달라고

했는데 그동안 10명의 광주시민들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4명이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았다. 4명정도는 잘못 지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황장엽이 광수라고 나는 생각하지않는다. 478명 광수지목이 전부 엉터리라고 주장할려면 적어도 300명의 광주시민들이 자신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그 중 200명정도가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아야 478명 광수지목이 전부 엉터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겨우 10명만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4명이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았다. 전라도것들은 그 10명과 그 4명을 아주 떠들며 478명 광수지목이 전부 엉터리라고 우기고있다.

수백명의 광수들은 남한에는 없고 북한영상들과 북한사진들에 있더라고한다.

13. 잔류한 비전향장기수 중에 자신이 광주폭동때 북한군으로 장갑차를 몰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14. 북한정권과 북한군들과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광주인민봉기는 북한이 일으키고 주도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확고한 사실이다.

북한특수부대를 보낸 북한정권과 북한군들이 남한사람들보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더 잘 안다. 북한에서는 어린애들도 광주인민봉기는 북한이

일으키고 주도앴다는 사실을 안다.

15.북한군들은 4시간만에 전남 17개 시군의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엄청난 무기들로 무장했다. 전남의 무기고들 모두를 미리 조사하여 위치를 

파악해놓지않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전라도것들의 주장으로는 계엄군들의 과잉진압에 대항하기위해  급히 무기고들을 털어 무장했다고 

주장하고있으나 광주시민들이 계엄군들의 과잉진압에 대항하기위해 급히 무기고들을 털었다면 광주에 있던 경찰서와 파출소의 무기고들을 터는 정도였을

것이다.전남의 도시에 있는 경찰서와 파출소의 무기고들의 위치는 파악이 쉽지만 그외에 있는 전남의 무기고들은 극비사항이라 위치파악이 어려우니 그외에

있는 전남의 무기고들을 털려면 위치파악시간과 터는 시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일주일이나 이주일은 걸릴 것이다.북한은 광주폭동이 나기 몇달전부터 

적은 수의 북한군들을 침투시켜 또 남한에 있는 간첩들로 몇달전부터 전남에 있는 무기고들의 위치를 조사하여 파악해 두었다. 북한의 지령을 받던 남민전도

전남의 무기고들을 몇달전부터 조사하여 파악해두었다. 군사훈련도 받지않은 대학생들,고등학생들이 4시간만에 전남 17개시군의 44곳 무기고들을 위치를 

알아내서 털 수 있나? 북한군들과 간첩들과 남민전이  몇달전부터 미리 무기고들의 위치를 조사하여 파악해두었기때문이기도 하고  전남의 무기고들44곳을 

턴 북한특수부대가 최고의 특수부대훈련을 받았기때문에 4시간만에 전남 17개 시군의 무기고들 44곳을 털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무기고들을 털어 총으로 무장하는 것 본 적이 있나?

16 광주폭동때  광주교도소 5차례 습격. 장흥교도소 2차례 습격.

광주폭동때 광주교도소 5회 습격을 광주시민들인 시민군들과 시위대들이 하지않았다고 5.18단체들은 주장한다. 그러면 누가 광주교도소를 5회 습격했나?

광주폭동때 광주교도소를 5회습격한 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목격자들도 많고 기록들에도 분명히 있는데. 그러니 북한군들이 광주교도소를 5회습격했다.

광주시민들인 폭도들 많은 수가 무기들을 회수해서 반납하고 폭동을 그만두자 북한군들은 당시 광주교도소에 있던 재소자들 2700명과 그 2700명 중에 

있던 보안사범 180명과 합세해 폭동의 맥을 이어가려한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교도소습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17.화순광업소에서 탈취한 TNT8톤을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폭탄들을 제조하여 계엄군들이 재진입하면 광주를 날려버리고 80만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겠다고 악질적인 협박을 했다. 그 8톤의 폭탄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 광주시의 상당부분이 날아가고 광주시민들 수십만이 살해될 수 있었다.

전라도것들은 그 8톤 폭탄들이 뇌관을 끼우지않았고 도화선을 연결시키지않아 엄포용으로 쌓아둔 것이었다고 주장하나 그 8톤 폭탄들은 뇌관도 끼우고

도화선도 연결하여 한꺼번에 폭발시킬려면 한꺼번에 폭파시킬 수 있었다. 광주시민들인 시민군들과 시위대들이 자신들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이 사는 

광주시를 날려버리고 광주시민들 수십만을 한꺼번에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했을리가 없다. 

광주에 연고가 없는 북한군들이기때문에 그런 악질적인 협박을 한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8톤 TNT를 탈취하여 폭탄들로 제조하고 설치하여 80만 시민들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18.광주폭동때 민간인사장자들 166명 중 총상에 의한 사망자는 116명인데 계엄군들이 사용한 M16총에 의한 사망자들은 36명이고 폭도들이 무기고들을

털어서 탈취한 M1총,칼빈총에 의한 사망자들은 80명이다. 광주폭동이 난지 얼마 지나지않아 작성된 계엄사의 자료와 육군본부의 자료와 보안사의 자료가

모두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비율보다 M1총,칼빈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 비율이 훨씬 높다. 보안사의 자료에는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이 

24명이고 M1총,칼빈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이 94명이다. 최근 발표에는 LMG기관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이 47명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군들보병들과 국군헬기들에는 LMG기관총이 장착되지않았다고한다.  폭도들이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탈취한 무기들 중에 LMG기관총이 있었다.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은 계엄군들에게 사살된 민간인사망자들이지만

M1총, 칼빈총,LMG기관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은 폭도들이 폭도들을 사살한 민간인사망자들이다.  계엄사의 자료와 육군본부의 자료와 보안사의 자료는

광주폭동이 난지 얼마 지나지않아 많은 의사들과 전문가들이 감정,판정을 한 것이다. 광주폭동이 난지 26년후에 작성된 광주지검의 자료는 믿기힘들다.

광주지검의 자료에는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이 칼빈총,M1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비율보다 훨씬 높다. M16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비율보다 

M1총,칼빈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비율이 훨신 높으면 전라도것들에게 매우 불리해지니 광주지검에서 뭔가 조작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폭도들이 폭도들을 총으로 민간인사망자비율의 69%인 80명이나 죽였다는건 오발사고가 그렇게 많이 났을리가 없고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있었다해도 그렇게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에게 총으로 살해된 민간인사망자들이 그렇게 많을리가 없다.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인 폭도들과 광주시민들을 많이 죽였기때문에 그렇게 80명이나 M1총,칼빈총,LMG기관총에 의한 민간인사망자들이 많이 나온 것이다.

북한군들이 왜 광주시민들을 많이 죽였느냐하면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죽여놓고 계엄군들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여 광주폭동을 크게 일으키고 

북한군들이 실수로 북한말씨를 사용해서 그 북한말씨를 들은 광주시민들이 북한군임을 알아채면 거의 대부분 죽였다. 

또 북한군들을 따라 월북하려던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을 북한군들은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이

북한군들의 행군속도를 따라오지못할거라고 생각해서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을 대부분 죽였다. 광주에서 광주시민인 민간인들을 학살한 자들은 북한군들이다

계엄군들이 광주시민들을 학살하지않았다.계엄군들은 총으로 대항하는 폭도들을 방어권행사와 정당하고 합법적인 진압을 하여 사살한 것이다.

19. 광주폭동때 민간인사망자들 166명 중에 총에 의하지않은 민간인사망자들은 50명인데 그 50명 중 40명을 북한군들이 죽였을것으로 추정된다.

도청앞에 놓엿던 33구의 민간인사망자들은 20명이 칼이나 몽둥이에 의해 살해되었고 13명은 칼빈총.M1총에 의해 살해되었다. 계엄군들은 시민군들과 

시위대들과 수십미터거리에 있어서 계엄군들이 칼이나 몽둥이로 그 20명을 죽이지못한다. 그 20명은 북한군들이 죽인 것이다.그러면 광주폭동때 

민간인사망자들 166명 중에 72%인 120명이 북한군들에 학살된 것이다. 80명은 총에 의해 40명은 칼이나 몽둥이에 의해 북한군들에게 학살되었다.

20.  20사단지휘부차량이 그 시간에 지나갈줄 알아서 화염병들로 기습해서 차량 14대를 탈취해갔다.

21.북한평양방송은 광주사태를 실황중계를 했다. 

광주의 광송국들은 불타서 방송을 할 수 없었다.평양방송이 광주의 상황과 정확히 들어맞았다고한다. 광주에 북한군들과 간첩들이 있지않으면 그렇게 

빨리 알 수 없을거라고한다.

22.   300명으로 이루어진 두 그룹이 연고대생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당시 동아일보기자인 김영택이 국회청문회에서 증언했다.

23.광주사태에 대한 북한이 펴낸 기록들에는 그 시기에 그 장소에 와보지않고서는 기록하기 힘든 기록들이 있다.

가령. 특정 시각에 지나가는 차의 차넘버를 기록한 것. 신문,방송,전해들은 것으로는 그런 것을 알기 어렵다.

24. 윤기권월북사건.               광주폭동때 시민군으로 활동한 윤기권은 보상금을 받고 북한으로 월북했다.

25. 5.18광주망월동묘역에 매장된 아직까지 신원미상인 시신들 12구.  

남한사람의 주민등록에 없고 남한사람들이 아니니 북한사람들의 시신들이다.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 광주에 침투해 광주에서 활약하다가

사망한 북한군 11구의 시신들이 5.18광주망월동묘역에 매장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1명정도는 차이가 날 수 있지.

26.  광주폭동때 수백명이 광주와 광주근교에 암매장되었다는 소문이 꾸준히 있어왔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 광주폭동때 

광주근교에서 사망한 북한군들 475구의 시신들이 광주근교에 암매장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27코뮨주의 혁명가들과 남민전은 북한의 지령을 받으며 광주폭동이 나기 오래전부터 무장봉기인 광주폭동을 준비해왔으며 5월 19일을 거사일로 잡고있었다

28.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해 활동한 북한특수부대대원 중 한 명인 김명국(가명).

김명국은 특전사와 조우하여 3명을 쏘아죽였고 북한으로 철수하여 공화국영웅이 되었으나 탈북자들을 도운 혐의로 북한에서 못살게 되어 탈북하여 남한으로

온 탈북자이다.김대중정권때 국정원이 김명국에게 광주사태에 대해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고한다. 진실이 드러나는걸 두려워해서일 것이다.

29. 5.18 광주망월동묘역의 어떤 비석에 5월 22일 15시 09분 서울서 대학생 500명 광주도착 환영식이라고 새겨져있다.

그 500명이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북한군특수부대 600명 중 500명이다.

30.수사기록으로 본 5.18분석최종보고서라는 책.  지만원 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31. 폭도들 중 한 명이 쌍간나새끼라는 말을 하자 그 말을 들은 광주시민이 그쪽은 고향이 광주가 아닌 것 같은데 고향이 어디에요라고 물으니 그 폭도는

당황하며 강원도라고 둘러대고 그 자리를 급히 떴다고한다. 북한군에 강간당한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는 그 북한군이 북한말씨를 썼다고한다.

북한군들 600명은 남한말씨를 6개월간 배우고 연습하고 남한말씨만을 쓰도록 훈련을 받았고 광주에서도 남한말씨를 썼으나 실수로 북한말씨를 사용해서

상대가 북한군임을 눈치챈 광주시민들을 위 2명만 제외하고 모두 살해했다.

32. 북한 조선중앙영화사가 제작한 북한군들의 광주교도소습격장면영상.

33.광주폭동때 광주에서 북한군들임을 안 사람들이 쉬쉬하고 침묵한다는 증언들이 많다. 특히 일부 광주시민들이 그렇다고한다.

34. 5.18유공자명단 중 남한사람이 아닌 즉 한국의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들이 70명이 있다고한다. 남한사람이 아니면 북한사람으로 추정되지.

5.18단체들과 광주시가 명단을 공개하지않으려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한다.

35. 광주폭동때 광주현장사진속 29명이 최근 김정은과 촬영한 장군사진 29명과 동일인이었다고한다.

36.CIA요원이었던 마이클 리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증언했다.

5.18광주폭동당시 북한대남특수군요원들이 광주에 대규모침투했다고 말했다. 김일성이 광주침투북한군들의 실책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37.북한특수부대원으로 광주에 침투해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한 사람의 내용인 보랏빛호수라는 책. 저자는 이주성.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분. 박정희대통령이 저격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김일성은 쾌재를 불렀다.남조선을 먹을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즉 가마처럼 끓고있는 혼란한 남조선의 정세를 이용하여 몇달전부터 광주에서 군사적전을 벌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전라도는 봉건시대부터 반란,폭동을 

많이 일으켜온 지역이야.그 지역 백성놈들의 민심을 잘 이용하라.현정세에 맞춰 남조선혁명가들과 합심하여 전라도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폭동으로

확대시켜 남조선괴뢰정권을 전복시킬 군사작전계획을 만들라고 지시했던거야. 계획대로 폭동이 일어나면 전라도뿐만아니라 남조선전역으로 퍼져나가도록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만들어보라. 주도면밀하고 가능성이 있는 계획은 작전승리의 열쇠야. 청와대가 있는 서울과 남조선전지역으로 폭동을 확대하게 하라.

괴뢰정부기능이 마비되면 우리는 피를 흘리지않고도 남조선을 타고앉을 수 있어. 인민무력부장,통일전선부,교도지도국산하 정찰국,대남연락소 책임자들과

자리를 마련한 김일성은 광주폭동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들었다. 1010군부대부대장 문제심이 제출한 문건을 빠짐없이 보고난 김일성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줄 몰랐다.

38보랏빛호수의 저자 이주성은 북한군들이 전남도청지하실에서 광주폭동을 지휘했다고 말했다.

광주폭동당시 광주도청지하실에 있던 자들은 조선인민군타격대지휘관들이었다고 말했다.

39.탈북자들의 증언. 62저격여단에도 광주폭동때 남파되었던 북한군들이 30명이나 됩니다.

40.1980년 5월 광주에 남파되었던 북한중앙연락소전투원 정순성(가명)의 증언.

정순성은 1980년 5월 19일 비상소집으로 광주파견대장호위병12명의 일원으로 황해남도 장산곶해안에서 출발했다. 피견대장 문제심은 1010부대장으로

광주에 도착후 총기류 5400정 노획,시민군무장완료,아세아자동차공장습격,장갑차 4대 버스 400여대 탈취,폭약저장소습격 폭약 10톤 탈취를 지휘했고

전남도청지하실에서 작전회의를 주재했다.

41.1980년 6월4일 전두환은 22명의 신원미상시신들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으로 보고있다고 말했다.

전두환은 주한미국상공회의소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렇게 말했고 그 내용이 1980년 6월 17일 주한미국대사관이 문건으로 작성해 놓았다.

42.김대중정권과노무현정권의 국정원은 대부분의 탈북자들에게 5.18광주사태에 대해 말하지말라고 하였고 탈북자들에게 5.18관련보안각서를 쓰게 

강요했다.진실이 드러나는걸 두려워서 그랬을거라고 추측한다.

43.1980년 6월 15일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서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 주관한 광주폭동총화가 개최되었다.

그 자리에서 김일성은 광주에서의 전사자들을 모두 광화국영웅이라고 말하고 영웅묘지를 조성하여 단장시키도록 지시했다. 

광주에서 살아서 온 북한군들에게 공화국영웅메달을 수여했다.

44.북한통일전선부 영웅관에 5.18관이 있다. 그 곳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의 증거들이 상당히 많다고한다.

북한특수부대장교출신 탈북자인 임천용은 북한대남공작기관인 통일전선부의 지하자료실에 광주침투북한군증거들이 많이 있었다고하고 

광주사태관련자료들이 가장 많이 전시되어있었다고 증언했다.

45.광주폭동때의 악질유언비어들은 북한좌익의 수법이다.

46.광주폭동때 정체불명의 선동자들이 선동을 하였다.  북한군들이 선동을 하였다고한다.

47.해방구건설.  해방구라는 말은 권력이 미치지못하는 지역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한 지역을 가리키는 좌익들의 용어로 많이 쓰인다.

광주에서 광수부대원들이 물러났을때 광주에는 해방구로 선포되었다.

48. 북한교과서에 5.18광주사태는 김일성교시에 따라 발생했고 광주사태는 주체의 기치를 따른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으로 되어있다.

49. 계엄군 11공수 6지대장 신동국중위는 광주시민들이나 대학생들로 안보이는 폭도들이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50.북한은 5.18기념행사를 평양뿐만아니라 북한전역에서 대대적으로 매년 연다. 평양에서는 당-정최고수뇌부들이 참석한다. 김일성과 김정일과 

북한정권과 북한군이 5.18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기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북한은 4.19혁명민주화운동은 그렇게 하지않는다.

51.광주폭동때 죽은 민간인사망자 166명 중 80%가 계엄군들이 없는 장소에서 죽었다.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죽이고나서 계엄군들이 죽였다고 

거짓말하고 모략하여 광주폭동을 크게 일으켰다. 총을 쏘아대는 자리에 연고대생이라고 칭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동아일보기자의 국회증언이 있다.

52. 시체들을 실은 리어카의 연출자. 시체들을 실은 리어카뒤에서 계엄군들을 향해 카빈총을 쏜 폭도들이 있었다.

53.1980년 5월 16일 서울에서 7만명의 학생들이 서울역에 집결했다. 서울에서는 광주폭동같은 것이 일어나지않았다. 

서울에서는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침투해서 개입하지않았기때문이다.

54.시민군대장은 전남대생들도 아니었고 광주에 있던 재야민주화운동가들도 아니었다. 

윤상원도 아니었고 박남선도 아니었다. 박남선은 골재화물트럭운전사에 불과하여 시민군대장역할을 못한다. 광주사태가 시작되자 전남대운동권은

무기탈취에 반대했다. 양아치들,구두닦이들,깡패들이 대부분이었던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이 그렇게 뛰어난 군사작전을 지휘할 수 있나?

군사훈련을 받지않은 대학생들,고등학생들이 그렇게 뛰어난 군사작전을 지휘할 수 있나? 그들도 시민군대장,시민군지휘자가 아니었다.

시민군대장,시민군지휘자는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 중에 있었다. 총지휘자 이을설  지휘자 문제심.

55.광주폭동때 광주시민들은 집안에서 문을 걸어잠구고 폭동이 빨리 가라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훨신 많았다. 극렬폭동을 한 자들은 세상이 확 

뒤집어지길바라는 사회불만세력들이거나 북한군들이었다.

56.침투한 북한군들은 증거를 남기지말아야한다는 철칙때문에 복면을 하고 광주시민들과 어울리지않았다.

57.풍계리라는 책.  그 책에는 광주폭동이 날 즈음 북한군들이 남파되었다고 되어있다.

식민지파쇼정권에 반대하여 5.18광주인민봉기의 시위현장으로 남조선혁명가들의 투쟁을 도우러간다고 하면서 기세충천하여 떠났던 영웅들이었다.

통일전사들은 국방군들에 발각되었다.유철용은 긴급후퇴명령을 내렸고 무선을 통해 조선인민군사령부에 퇴각의사를 밝혔다.

58.침투한 북한군들 600명은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위장하여 북한군들인줄 사람들이 잘 알지못했다.

59.광주폭동무렵 신문에 북한선박이 남한에 왔다가 격침되었다. 북한군들을 실으러왔다가 들켜서 격침되었다.

60.북한에서 600명이란 용어는 광주폭동때 광주침투북한군들을 지칭한다. 연고대생으로 가장해 침투한 북한군들 600명은 

534군부대소속북한특수부대이고 600명의 연고대생은 광주에서의 암호명이다.

61.뒤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민간인사망자들이 열몇명 있다.계엄군들은 총으로 대항하는 폭도들을 진압하여 죽였으니 뒤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민간인사망자들은 계엄군들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이 아니다. 광주시민들인 폭도들끼리도 뒤에서 총을 쏘아죽이지않았을것이다.

뒤에서 총격을 받아 죽은 민간인사망자들은 북한군들의 총격에 의한 사망자들이다. 북한군들인줄 눈치를 채서 또는 북한군들이 죽여놓고 계엄군들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여 광주폭동을 크게 일으키기위해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뒤에서 총격을 가해 죽였다.탈북자들도 그렇게 증언한다.

뒤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민간인사망자들은 전부 칼빈총,M1총에 의해 사망했다고한다.

M16총에 의해 뒤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민간인사망자들은 없다.

62. 5월 18일부터 5월 20일까지의 폭동상황을 5월 21일 연고대생으로 칭하는 600명이 맹활약하여 폭동이 크게 증폭되고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준전시상황으로 돌입한다. 그것들은 강력한 군인들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연고대생으로 칭하는 600명이

크게 활약하지않았다면 5월 18일부터 5월 20일까지의 폭동상황이 유지되는 정도였을 것이다.

63.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은 광주에서 5월 21일 22일 23일 24일 4일간 크게 활약했다.활약한 기간이 짧았으니 북한군들이 침투한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64.북한특수부대출신탈북자 최충현이 말하기를 사단장 여병남과 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과의 대화에서 북한특수부대 1개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도 컸다는 말을 들었다.얼마후 북한군특수부대 지휘관들사이에서도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65.김일성교시. 사북사태를(1980년 4월 발생한 봉기)전민항쟁으로 끌어올려라   남조선혁명가들과 지하혁명조직들은 이번 사북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빈민 등 각계 각층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투쟁을 조직하고 전개하여 더 격력한 전민항쟁으로 

끌어올려야한다는 김일성교시.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 이 XX씨 증언.

66. 1979년 11월 3호청사에서 김일성교시. 10.26사태 이 사태가 수습되기전에 손을 써야합니다.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민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한다는 김일성교시.

67.1980년 5월 광주사태직전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이 내린 비밀교시.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없이 총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 무장봉기를 시켜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읍니다.

68 미국방송NBC기자가 시민군총기에 의한 총상으로 죽임을 당한 시민사망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못박아 말했다.시위를 주도하였던 운동권학생들은

총기무장을 거부하였고 그들은 누군지 알지못하는 과격파가 등장해 무장봉기를 주도했다고 보도했다. 그 과격파가 북한군들이다.

광주에 침투해 있었던 북한군증언과 일치한다.

69. 화려한 사기극 5.18이라는 책. 그 책의 내용 중에는 안창식을 책임자로 하는 18명의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은 목포에 거점을 두고 그 곳에서 북한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광주작전과 관련된 지시들을 지령받고 집행하였다. 목포아지트에 대기하면서 광주시에서 매일 벌어지는 사건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신속하게 지휘부에 보고했고 안창식이 책임지도하는 16명의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은 5월 19일 새벽에 광주에 침투하여 대학가와 청년학생들의 

지도부세력을 우선 장악하고 그들에게 무기들을 공급하여 비무장형태를 폭력적인 무장폭동으로 격상시켰다는 구절이 있다.

70. 광주사태주동자 중의 한 명인 윤상원은 조총련으로부터 북한사회주의내용의 북한용 정치서적들을 운동권에 보급하는 일을 해왔다.

조총련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는다. 따라서 윤상원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있었을 것이 유력하다.

71.북한군들은 광주폭동에 비협조적인 광주시민들에게 화를 내면서 북한군입에서 북한말씨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정체가

노출될까하여 광주시민들을 살해하였다.

72.광주사태라는 용어는 5월 22일 목포의 북한군들이 처름으로 사용했다. 그 말을 서울에서 대자보로 붙이니 언론에서도 사용했고 언론은 

5월 23일부터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광주사태.목포사태.

73. 광주사태전에 이미 여러 달 체류하며 무기탈취준비 등 간첩역할을 한 북한특수부대가 있었다.

74. 광주폭동은 북한군개입정도를 넘어 북한군들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 5월 21일까지 5.18시위를 지휘한 지휘부는 나타나지않았다.

박남선,윤상원,김중배는 5월 22일 지휘부에 나타난 사람들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시민군대장으로 잘못 묘사된 박남선은 골재화물트럭운전사에

불과하니 광주폭동을 지휘하지못한다.윤상원은 5월 22일 결성된 학생대책위원회대변인이었다.김종배는 5월 22일부터 무기회수에 반기를 든 학생이었다

탈북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고 말한다.연고대생으로 칭하는 600명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는 것을 

광주시민들도 인정한다. 지휘부없이 그렇게 일사분란하고 동시다발적이고 뛰어난 군사작전이 가능한가?

75. 전남대생들이 상무대에서 무기를 탈취한 적이 없고 전남대에는 학생혁명군도 없었다. 광주시민인 시민군들은 5월 20일 상무대무기탈취사건을 

모르고 있었다. 북한군들이 무기탈취작전을 주도했고 시민군들로 위장한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나누어주었으나 총을 받지않는 광주시민들이

아주 많았다.

76.북한군들은 국군들과의 총격전으로 사망한 북한군들을 살아있던 북한군들이 북한군개인마다 몸에 지니고있던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북한군시신들을 폭파하여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국군들과의 총격전으로 부상을 입어 행군속도에 지장을 주는 북한군들은 

북한군개인마다 몸에 지니고있던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자폭하였고 자폭흔적을 살아잇는 북한군들이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그래서 북한군시신들을 찾기힘들고 발견하기힘들다.

77.계엄군 5.18상황실장 홍순영의 증언. 홍순영은 북한군의 지휘체계,전술,침투방법,특징을 잘 아는 군인이었으니 시민군들로 위장한 북한군들을 보고 

북한군인줄 알아보았다. 홍순영은 폭도들을 보니 북한군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한다. 그 근거로 북한군시신 3구에 신겨진 신발이 통일화신발

낡은 것으로 124군부대가 신고온 신발과 같다는 것,124군부대는 1.21사태를 일으켰던 북한군특수부대이다.지휘체계가 북한군같다는 것,걷는 모습이

북한군걸음걸이같다는 것.북한군시신들위에 하얀 찔레꽃이 놓여있었다는 것,찔레꽃은 남파간첩의 암호이고 북한군들이 아군과 적군을 가리는 방법이고

북한군이 가장 선호하는 꽃이다. 광주침투북한군총지휘자 이을설이 찔레꽃이 놓인 관들을 붙잡고 우는 장면이 있는 영상들이 있다.홍순영이 북한군같다는

정보를 상부에 보고했으나 상부에서는 일리가 있다는 의견과 과한 주장이다라는 의견이 대립했다고한다.

78.북한군잠수함이 서해를 거쳐 한강으로 들어와 잠실까지도 들어온 적이 있다.서해를 거쳐 영광해안으로 침투하는건 어렵지않다.

79 광주폭동당시 B2벙커에 근무했던 헌병의 증언. 광주폭동의 상황들이 실시간텔렉스로 계속 들어와 보니 일어나는 상황들이 일반적인 데모가 아니고

특수한 지휘부와 북한조종이 있엇다는 것을 직감했다.누가봐도 그렇게 느낄것이다. 처음에는 고정간첩들이 남한에 이렇게 많나라고 생각했다.

광주시가전 실시간보고를 보고 북한공작반란임을 직감했다.

80북한노인공작대가 20사단 61연대의 연대장을 속이고 부대이동을 막았다.

81.북한은 대한민국건국이전부터 대한민국수립이후에도 대한민국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공작을 해았다. 10.26사태이후 남한혼란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영향을 안미치고 공작을 안할리가 없다.

82.탈북자들의 증언에 광주에 북한군들로 갔다왔다고 말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군들이 무기고들을 털어서 당시 광주시민들인 남한봉기자들에게 

총을 주어도 잘 받지않았다고한다.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주어도 잘 안받았는데 그렇게 극렬하게 뛰어나게 전투를 벌이나?

극렬하게 뛰어나게 전투를 벌인 자들은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이었다.

83.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남조선에 침투하여 단기소부대작전을 하던 사람들은 게릴라전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고 광주에서 장갑차를 탈취하고 

무기고들을 습격한 것은 남조선시민들이 아니라 다 우리가 한 일이다라는 증언들이 있다.

84.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북한에서 파견된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의 정체에 대해서 조금이라고 눈치를 채거나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만 하면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은 그런 자들을 두말없이 즉석에서 시체로 만들어 처리하였다.북한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르지않거나 그들의 요구에 

불응해서 도망가면 그 사람들을 역시 절대로 살려두지않았다고한다.

85.자유북한군인연합인 북한특수부대출신 탈북자 임천용과 북한정찰대출신 탈북자 이덕선은 광주사건과 관련된 공화국영웅 62명은 확실하다고 증언했다

86.아주 잔인하게 살해된 민간인사망자들. 머리가 완전히 박살난 시신,두개골을 톱질한 시신,목이 잘린 시신 등.  광주시민들끼리 그럴리가 없고

계엄군들이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을 그렇게 죽이지않았다. 계엄군들에 전라도출신이 40%나 되었고 광주사태 진압책임자는 전라도출신 정웅이었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도 북한특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되어있다.

그렇게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해놓고 계엄군들이 그랬다고 뒤집어씌워 폭동을 크게 일으키게 하기위해 그랬다.

87.폭도들 수백명이 20사단지휘차량과 호위차량을 화염병으로 공격해 14대의 차량을 탈취했다. 총으로 무장한 국군들을 화염병으로 공격해 국군들을 

쫓아버리고 차량 14대를 탈취한건 매우 대담했다. 광주교도소를 5번이나 습격한 것도 대담했다. 전남지역 17개 시군의 44곳 무기고들을 4시간만에 

털은 것도 아주 대담했다. 화순광업소에서 TNT8톤을 탈취하여 폭탄들로 만들어 전남도청지하실에 설치하고 광주시를 날려버리고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한 것도 아주 대담햇다. 광주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도 대담했다.그런 대담한 행동들을 한건 북한특수부대가 했으니 그런것이다

88.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서도 어떤 이유와 목적을 위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89.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그들이 남한을 적화시키거나 그들이 남한의 권력과 군권을 완전히 잡기까지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철저히 부정한다.남한이 적화되거나 그들이 남한의 권력과 군권을 완전히 잡으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꺼리낌없이 떠들 것이다.

90.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인정되면 그들의 근간이 훼손되고 그들의 세력이 크게 위축된다.

그래서 그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광분하며 부정한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는 것을 아는 그런 자들과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자들도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철저히 부정한다.

91.탈북자 김태산은 광주폭동때 침투한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쏘아죽이고 계엄군들에게 뒤집어씌웠다고하고 김정일이 내각간부들을 급파하여 작전을 

참관시켰다고 증언했다.

92.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이 무장한 버스속에서 생존한 여고생 가방속에서 북한특수군보급품인 지포라이터가 발견되었다.

93.당시 국제일보기자이던 김양우가 쓴 시민군계엄군이란 책의 내용에 북한군의 장례식으로 보이는 이상한 장례식을 목격했다는 구절이 있다.

담양 창평 김대위집앞길에서 시신에 찔레꽃 한 송이를 두고 상주도 없고 구경꾼도 없는 이상한 장례식을 목격했다고한다. 찔레꽃은 남파간첩의 암호이다

94.무장트럭에 탄 폭도들 화이바에 찔레꽃을 꽂은 경우들이 있었다. 찔레꽃은 남파간첩암호이다.

95.탈북자 조귀임은 북한군들은 몇달동안 남한억양을 배우고 연습하고 머리를 길러고 시위대들을 뒤에서 쏴죽이고 북한군시체들은 야산에 암매장했고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쏴죽이고 계엄군들이 죽인 것으로 뒤집어씌우고 폭동을 조장했고 광주시민들은 총을 안받으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한다.

96.광주근교검문소의 김대위는 돈커크라는 기자와 그 일행들에게 북한군들이 야산,들판,논에 있고 대기하여 위험하니 그 기자들에게 들어가지말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15일 일본 Shimbun No1이라는 일본도쿄특파원협회지에 그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북한군들이 광주와 광주근교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광주와 광주근교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알고있었다고한다.

97.북한군들이 잠수함으로 침투한 지역은 영광군 염전면 두우리 백바위해변은 썰물때도 바닷물이 안빠지고 바닷물이 유지되는 특수한 지역이므로

북한잠수함으로 북한군들이 그 해변에 상륙하기 적합한 지역이다.

98. 침투한 북한군들은 AK소통같은 무기들을 안가져오고 전남 17개지역의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무기들을 조달하여 무장하여 계엄군들과 전투를 벌인건

매우 자신감이 있고 간도 크고 대담했다. 북한군들이 AK소총같은 무기들을 안가져온건 검문을 피하기위해서라고 추측한다.

대학생들,고등학생들,양아치들,구두닦이들이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99.침투한 534군부대특수부대는 북한특수부대들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는 북한군최정예게릴라부대이다.

100.LMG기관총을 쏘는 법과 다루는 법을 현역제대한 군인들도 잘 모른다.

대학생들,고등학생들,양아치들,구두닦이들,깡패들이 LMG기관총을 다루어 사람을 명중시킬 수 있었겠나?

101. 북한군들은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 4대를 탈취하여 몰고다녔고 장갑차를 지그재그식으로 몰아 계엄군 1명을 깔아죽였다. 장갑차를 매우 

능숙하게 몬 것이다.장갑차를 몰아본 사람들이나 군사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장갑차를 몰아보지않은 사람은 모든 유형의 장갑차들을 몰지못한다고한다

연고대생으로 칭하는 600명 중 일부가 장갑차를 몰았는데 1980년에 대학생 중에 자동차를 몰고다니는 사람은 매우 희귀했다. 대학생들이 자동차도 

몰지못햇는데 장갑차를 몰 수 있었겠나? 대학생들과 광주시민들 중에 자신이 광주폭동때 장갑차를 몰았다고 주장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102. 5.18광주사태에 대해 슨 책들은 대부분 운동권이나 전라도것들이나 종북좌파들이나 종북좌익들이 쓴 책들이다. 그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좁은 시각과 입장에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세력확대를 하기위해 쓴 책들이다. 그러니 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전혀 안다룬

책들이 대부분이고 극소수 다룬 책에서는 다루었다고해도 완전히 왜곡하고 허위날조하여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는데 북한군침투개입을 빼버리고 말하면 말이 안되고 엉터리이다.5.18광주사태의 진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쓴 책들은 아주 부족하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실을 밝히는 책에서는 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진실이라고한다. 광주사태의 진실을 잘 아는 탈북자들은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광주사태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쓴다.

103.광주폭동때 북한특수부대침투개입을 총괄한 김정일은 작전성공과 전과를 이유로 승진했다.

104.1980년 5월 25일 미국국무장관 무스키의 전문에 온건파수습위는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과격파가 등장해 세력을 장악했다.

인민재판이 열렸고 약간의 처형이 이뤄졌다 학생시위대는 혁명정부수립을 주장하는 신원미상의 무장한 과격파들로 대체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인민재판.인민재판에 의한 처형.  6.25전쟁때 전라도가 인민군들수중에 들어갔을때 인민재판이 많이 열렸고 인민재판에 의한 처형도 많이 벌어졌다.

혁명정부의 수립을 주장하는 신원미상의 무장한 과격파들이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인민재판과 인민재판에 의한 처형을 하는 것 보았나?

105.당시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이 1980년 5월 26일 워싱턴에 보낸 전문에 광주의 상황은 더욱 나쁜쪽으로 과격전환을 했다. 과격파들로 이뤄진

무장그룹과 심지어 인민재판과 처형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인민재판.처형 .과격파.  104와 같은 의미이다.

106.광주폭동당시 미국항공모함 코럴시항공모함과 미드웨이항공모함이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광주폭동이 아주 안좋은 상황이라는 증거다.

북한은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광주에 침투시켜 폭동을 일으켜 폭동이 전남전역으로 확산되면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폭동이 남한전역으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정부가 전복되면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10만에서 15만의 북한군들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했다. 미국항공모함 두 대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위해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광주폭동의 상황도 매우 안좋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즉 북한군들 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광주사태가 정말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미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지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항공모함 두 대를 한반도에 

보내지않는다. 전라도것들 중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위해 미국이 항공모함을 보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으나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107. 광주폭동때 경찰 4명으 죽여 도청앞에 전시했다. 그런 행동은 6.25전쟁때 인민군들이 한 행동과 같다.

108.탈북자들은 남한에 들어올당시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고 경상도도 아니고 전라도도 아닌 제 3자 입장이고 중립적 입장이고 광주사태의 진실을 

잘 알 수 잇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들을 믿을 수 있다.탈북자들은 거의 대부분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109. 역사로서의 5.18이라는 책.4권짜리 김대령 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110. 1980년 3월 28일자 동아일보에 동아일보는 일본통일일보를 인용해 북한은 대남게릴라전을 획책하여 북한은 남한의 정치적 불안정을 틈타 

금년봄에 대량의 무장간첩을 남파하여 지방도시의 방송국을 점령하는 등 본격적인 남파게릴라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대남특수군군사적전계획을 작년

가을에 수립하여 인민군상장 김철만을 이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김철만은 124군부대와 제 7정찰여단을 통합하여 특수8군단과 

청년돌격독립여단이라 불리는 특공게릴라부대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111. 1980년 3월 23일 한강에서의 무장공비수중침투사건.  성동격서인 작전일 것으로 생각한다.

112. 1980년 3월 25일 포항앞바다에서 발각된 무장간첩선사건.  성동격서인 작전일 것으로 생각한다.

113.1980년 6월 28일 매일경제신문은 일본통일일보를 인용해 북한이 조총련에 제 2의 광주사태를 일으키라고 지시했고 북한은 최근 재일조총련에 대해

앞으로 모든 힘을 기울여 남한파괴,교란공작을 펴고 제 2제3의 광주사태를 한국각지에서 일으키도록 지령했다고 6얼 28일자 통일일보가 조총련계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조총련부의장 박재호는 평양에 1개월간 머무르며 북한의 대남공작총책임자인 김중린과 만나 대남공작의 전략전술에 

관한 상세한 지시를 받았다. 김중린은 폭동과 혼란을 한국각지에 유발시켜 남한을 반신불수의 상태에 빠지게 해 결정적 기회를 만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114.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의 구호 중에 하나인 전남국을 세우자라는 구호.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전남국을 세우자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재야운동권 중에서 남한정부를 전복하자라는 말을 하는 자들은 있어도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을 분리해서

나라를 만들자고 한 적은 없다. 광주시민폭도들은 북한특수부대 600명의 지시와 명령을 따라 전남국을 세울려고했다.

115.폭도들의 성명서에 매판자본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였다. 매판자본이란 식민지나 후진국 등에서 외국자본과 결탁하여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토착자본을 말한다. 김중린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올린 보고서에 매판자본가들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116. 근래에 북한TV가 남한에 방영되어 5.18시민군영웅들의 얼굴이 대부분 발굴되었다.나이든 모습으로 수백명이나 북한에서 발견되었다.

117. 안기부와 국정원도 광주폭동때 북한군남파를 알고있었다는 북한군출신 탈북자의 증언. 안기부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도 알고있었을 것이다.

118. 광주폭동계획을 기획하고 5.18광주폭동당시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지휘한 문제심은 광주폭동때의 전공으로 이후 인민무력부부부장까지 지냈다.

119. 전북한군상좌 김유송은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뒤에서 총질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끼리 그렇게 할리가 없다.

120.북한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이 강한 점을 활용했다. 특수부대.땅굴.잠수함.심리전.  북한군은 특수부대를 20만이나 보유하고 특수부대가 강하고

땅굴이 위협적이고 북한잠수함들이 남한에 비해 훨씬 많았고 심리전의 고수들이다.

121.광주폭동때 광주시민들인 주동자들,중요인물들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있었다. 윤상원은 조총련으로부터 북한서적들을 수입하여 남한에 공급하던

자로 조총련과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있었을 것이 유력하다. 코뮨주의혁명가들과 남민전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으며 광주폭동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122. 북한고위층들이 남한에 와서 휴전선에서 먼 5.18광주망월동묘역에 꼭 참배를 하겠다고하는건 광주에 침투해 맹활약을 하다가 사망한 

북한특수부대사망자들 11구의 시신들이 매장된 묘들에 참배를 하기위해서이다. 남한사람들이 한 민주화운동이자 혁명인 4.19

4.19희생자들 묘역에 북한고위층들이 참배를 하지않는다.

123. 미국정부정책입안재단인 헤리티지재단은 광주사태는 한국정부가 전라도민들을 학살할 의도와 목적아래 사전에 모의해 만들어낸 사건이 아니다.

미국이 개입한 사건도 아니다. 이 반란사태의 규모가 방대함을 생각한다면 사망자수가 현저히 낮은 것 이 사실은 한국정부가 국민피해를 극소화하기위해

노력을 경주했던때문인 것으로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그 말들을 되풀이하면 당시 남한정부와 계엄군들이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학살은 북한군들이 한 것이다.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80명 사살하고 총이 아닌 수단으로 40명 살해했다.

124.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졍하고나서 민주화운동과 좌익운동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혼동이 되어 국가와 사회가 좌경화,종북화되어가고있다.

125.광주폭동때 광주에 북한군침투개입여부를 잘 알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북한군들이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개입했다고 말한다.

잘 알만한 사람들의 부류들은 광주폭동때 북한특수부대로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해 북한에 살다가 탈북하여 남한에 오거나 해외에 있는

탈북자들(가령 김명국 ,박승원) ,북한특수부대출신 탈북자들, 북한고위층출신으로 탈북하여 남한에 망명한 사람들(가령 황장엽), 

당시 남한최고권력층(가령 전두환),당시 북한최고위층과 북한군최고위층( 가령 김일성,김정일,오진우), 광주폭동을 진압한 계엄군지휘자들과 

계엄군일선지휘관들, 시위대들지휘자들과 시민군들지휘자들.  앞의 6부류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126.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국군을 장갑차로 깔아죽이는 것 본 적 있나?

127.광주폭동대 북한군침투개입을 확실히 증명하는 증거들이 발표되자 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5.18왜곡처벌법을 만들어 

국민들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려한다.

128.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600명에 대한 정부자료에 20사단지휘차령을 수백명의 시위대들이 화염병공격을 하여 차량 14대를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검찰자료에 시위대 300명이 20사단지휘부차량을 탈취한 차량 14대를 타고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 4대와 차량 수백대를  탈취하여 오고 

고속버스5대를 타고온 시위대300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위대들이 버스수백대를 탈취하여 광주시내로 진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기부자료에는 유동3거리에 300명 광주공원에 학생 300명이 출현하여 600명이 도청으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129.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600명에 대한 북한자료에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들 중 무기고들을 기습하여 무기들을 탈취하고 군용차량 400여대를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북한대남공작책에는 600명이란 말은 광주폭동때 광주에서 맹활약을 한 534북한군특수부대를 지칭하는 암호명이다.

130. 광주폭동때 기자들이 출입이 통제되었던 광주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논화되고 사진으로 찍혀서 북한에 공개되어 북한사람들은 

1980년에 TV로 매일 광주에서 벌어지는 시간들을 시청했다. 김정일이 대남연락소와 일본조총련에 과업을 주어서 광주폭동을 촬영하여 공개했다

131. 북한게릴라훈련장에서 김정일의 발언.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한다. 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진압됐다.

땀이 적었고 훈련부족이다. 교도지도국은 남조선해방의 전초병이다.

132.김정일의 발언. 우리는 광주사건에서 많이 얻었지만 놓쳤고 놓쳤지만 내일을 위해서 남겼다.

133. 총을 꺼꾸로 멘 청년집단이 도청을 통제하는 사진들.  북한군들은 총을 꺼꾸로 멘다. 

AK소총의 결함으로 총구에 빗물이 들어가지않게 하기위해서라고한다.

134. 내각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가 남한으로 망명하여 북한이 5.18광주소요를 계획하고 지휘했다고 말했다.

135. 김일성이 말하기를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적화시킬 수 있는)절호의 기회를 3번 (6.25전쟁, 4.19혁명, 5.18광주사태) 놓쳤는데 

광주사태가 제일 아쉽다.

136. 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북한군들은 퇴각할때 북한군시체들을 야산에 묻었다고한다.

137. 광주폭동에 가담한 북한특수요원인 안창식을 남편으로 삼아 함께 살던 북한여고사의 진술에 광주폭동은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고한다.

138.탈북자 김명국(가명)은 광주에 북한군특수부대로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하여 북한에서 살다가 탈북자들을 도와주었다가 북한에서

못살게 되어 탈북하여 남한에 온 탈북자인데 도청까지 북한군대장을 호위했고 국군 3명을 쏘아죽였다고한다.

139.광주폭동당시 폭도들을 태운 트럭 2대에 인공기를 달고있는 장면이 TV에서 방영되었다.

당시에는 차에 인공기를 달고다니면 잡혀가서 큰 괴로움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140. 북한에는 기념할만한 것들에 5.18이란 이름을 붙인 것들이 즐비하다. 문천기계공장은 5.18기계공장으로 명칭변경을 했고 룡성기계공장 

1만톤 프레스는 5.18프레스라고 이름을 붙였고 철도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은 5.18철도무사고운동으로 이름을 붙였고 

전기기관차는 5.18기관차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외에도 기념할만한 것들에 5.18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많다.

141.5.18광주폭동을 일으킨 북한특수부대 600명의 지휘자는 문제심이다. 문제심은 1010군부대부대장이며 당시 현역 중장(별2개 한국의 소장에 해당)

이었다.문제심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5.18작전을 직접 지휘했으며 명령을 받고 50명을 대동하고 광주에 침투해서 작전을 지휘감독하고 돌아갔다.

문제심이 작성하느 광주작전계획은 1.교도국에서 남한광주현지에 파견할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된 25세이하 모범군인들로 

인원을 선발 2.아세아자동차공장을 습격하여 트럭과 장갑차를 노획 3.전라도전지역에 있는 무기고들을 습격하여 폭동군들을 무장 4.광주폭동에 파견하는

조선인민특수부대원들을 국군들로 가장시켜 침투시키려한다 그들이 시위에 참가한 광주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유언비어를 비롯한 심리전을 벌여

광주시민들과 전라도인들을 폭동에 합류하게 한다. 5.북한군들을 대학생 또는 시민으로 침투시켜 폭동진압국군들에게 사격을 한다 양측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그만큼 폭동을 확대시킬 수 있다. 6.남조선말과 억양에 능숙해야하는 관계로 머리를 장발로 길러 활동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7.폭동성공가능성. 박정희가 사살된 지금의 정세는 우리가 남조선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김대중을 미친듯이 섬기고있는 전라도인들

특히 광주의 민심은 터지기직전의 화약고라는 소식들이 현지에서 들어오고있다. 작은 사건이라도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기폭제같은 사건을 만들어낸다면

그들은 불나방이 되는줄 일면사도 들고일어날 것이다. 이런 지역감정들을 폭동에 이용한다면 보다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9.폭동이 일어나면 

그곳 현지상황에 대한 중계를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보도할 종군기자들을 현지에 파견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국내외 폭동현장을 

현지중계함으로써 남조선인민들로 하여금 국군들에 대한 분노를 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로써 전국적은 폭동을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한다. 10. 광주폭동에 참가한 전조선인민군특수부대원들의 신분이 노출되면 안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모든 국인들이 마스크 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김일성은 문제심이 제출한 작전계획안에 사인을 해주고 일어섰다.

142. 5월 21일 오후 3개공수여단에 속한 9개대대 모두가 몰살될 처지에 놓였다가 가까스로 시외곽으로 탈출했다. 광수여단보다 적은 군인수로 

공수여단을 몰살될 위기로 빠뜨리는 군대는 북한군최정예특수부대이다.

143. 1980년 5월 17일 김대중에 5월 19일까지 계엄을 철폐하고 최규하-신현확내각을 해체하고 전국혁명내각을 구성하였다. 이런 내용으로 

확답하지않으면 5월 22일을 기해 전국봉기를 단행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것은 김일성이 간첩들에 내린 전민봉기교시와 정확히 일치한다.

광주폭동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합작하여 일으키고 주도한 것이다.

144. 북한문건들에는 광주항쟁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인민들이 봉기했다고 기술되어있다.

145.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 그외 군대에 갔다오지않은 사람들은 총을 제대로 쏘지못한다. 양아치들,구두닦이들,깡패들도 총을 제대로 쏘지못한다.

예비군출신 폭도들은 별로 없었다고한다. 총을 처음 다루는 사람이 1~2시간 총쏘는 법을 배우면 총을 쏠 수는 있어도 멀리있는 사람과 몸을 숨긴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을 총으로 맞추지못한다.

146. M16총의 성능이 칼빈총,M1총보다 뛰어나다. 그런데도 M16총을 사용한 4000명의 공수부대가 600명의 북한군특수부대에게 총격전에서 밀려서

조선대와 광주교도소로 철수했다가 광주에서 쫓겨났다. 북한군특수부대 600명의 사격술과 전투기술이 뛰어났기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147. 계엄사령부와 계엄군지휘자들은 광주폭동초기에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분명히 개입했다고 말했다.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북한군과 비슷하지않은가.

148.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고 광주사태를 세계에 알린 독일인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북한간첩인 것으로 밝혀졌다.힌츠페터는 2015년 10월 10일 

북한노동당창건70주년 기념식에 나타났다. 북한노동당창건기념식에는 북한노동당간부거나 중요동조자만 참석할 수 있다. 힌츠페터는 북한정권의 

5.18국제선전전요원이었다. 김사복의 택시에서 내린 힌츠페터는 접선장소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특수요원들의 통역,호위를 받았고 북한특수요원들의

차를 타고 샛길을 통해 광주로 들어갔다. 힌츠페터는 자신이 찍은 영상들과 북한공작원이 찍어놓은 영상들을 받아가지고 세계에 알렸다.

149.전두환회고록에는 5.18광주폭동은 북한군소행이다라는 구절이 18번 나온다. 전두환은 당시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잇는 지위에 있었고 전두환은

1980년 6월 4일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처음 주장한이후 39년간 계속 그렇게 주장했다. 단 한 번 신동아와 몇분 인터뷰하며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39년간 계속 주장한 것과 가장 최근에 주장한 것이 중요하지 단 한 번 월간지와 몇분 인터뷰한 것이 중요하겠나?

정치인의 인터뷰는 한번씩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150.광주폭동때 수백명이 광주근교에 암매장되었다는 소문이 꾸준히 있었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 광주침투북한군전사자 475명이

광주근교에 매장되었다고 되어있다. 광주시민들은 광주시민들이 암매장된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들을 여러번 파보았으나 시신은 1구도 나오지않았다.

광주시민들사망자들이 아니라 북한군전사들이니 북한군들이 묻었으니 그렇지. 광주시민들 수백구가 암매장되었으면 묻는 사람들이나 목격자들 중에

광주시민들이 있으면 묻힌 장소를 알게되는거지.

151. 광주폭동때 폭도들은 자유민주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민족민주를 내세웠다. 민족민주라는 이데올로기는 제 3세계에서 공산사회주의계열이 대중을

기만하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위해서 공산화의 전단계로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152. 북한대남공작역사책에는 광주사태가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기록되어있다.

153. 광주폭동당시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했던 분당에 사는탈북자의 증언에는 침투한 북한군들이 먼저 발포하여 국군들을 쓰러뜨렸다고한다.

154. 전경복장을 한 시민군들.  탈북자들은 북한군들이 전경복장으로 위장을 했다고한다.

155. 어느 시점에서 폭도들 압도적 다수는 무기를 회수해서 반납했고 계속 그렇게 하자 북한군들이 반납을 못하게 했다. 북한군들이니 끈질기게 폭동을

이어가려했다.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이라면 압도적 다수가 무기들을 회수하여 반납하면 같이 무기들 회수와 반납에 동참했을 것이다.

156. 소령위장 북한군에 속아 사상자들이 있었다고 계엄군통신병 문병소가 증언했다.

157. 탈북자 이애란은 북한저격부대소속 이웃집오빠가 광주봉기 남한사태때 급파를 대비했다고 말했다.

158. 광주외곽주남마을 버스총격사건.  낮 12시 추정사망자 15명. 북한군들이 총격을 가해 사망자들이 생겼다.

159. 광주시장이 말하기를 광주교도소공격을 북한군들이 했다.

160.평양기자출신 탈북자 김길선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말했다.

161.북한이 발행한 대남공작역사책인 광주의 분노와 주체의 기체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남한자료와 일치하고 더 자세하다.

폭동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있고 상황에 맞게 전략을 달리해 싸웠다고한다.북한군들이 직접 작전을 했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162.남파간첩 손성모는 광주사태당시 북한군들 길안내자역할을 하였다.

163.광주사태현장에 침투했던 전북한조선노동당중앙당연락소 전투원이 증언하기를 침투한 북한군들은 시민봉기군들과 국군들로 가장하여 서로 

총질을 하여 이간책동을 했다고한다.

164. 미국무부와 CIA의문건에 북한정권이 유언비어로 광주사태를 조장했다고 되어있다.

165.북한이 만든 기록영화 조선기록영화촬영소제작 475명 광주인민항쟁. 광주폭동때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광주근교에서 사망한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이

475명이다.

166.북한으로 살아돌아간 북한군들 110명은 밤에만 산맥을 타고 이동했고 지리산과 태백산맥을 거쳐 비무장지대를 통과했다고한다.

167.5.18광주폭동당시 북한간첩들의 무선통신이 포착되었다고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광주침투북한군들의 무선통신은 감청에 걸리지않았다

168.김정일은 내각간부들을 급파하여 작전을 참관시켰다. 김태산증언.

169.김정일은 광주는 수령님께 바치는 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북한군특수부대장교출신 탈북자 임천용이 증언했다.

170.광주시민들 중에 시민군들을 조직한 사람이 없다. 북한군들이 시민군들을 조직했다.

171.북한이 직접 광주에서 촬영해서 뿌렸다고하는 5.18광주폭동영상이 있다.

172. 5월 21일 서해안으로 배로 들어온 소수의 북한군들이 있었다.

173. 북한군특수부대장교출신 탈북자 임천용은 증언하기를 5.18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은 땅굴을 통해 잠입했다고한다.

174. 당시 동아일보기자인 김영택의 기록과 증언에도 도청이 장악된후 정체불명의 복면부대인 폭도들이 나타났는데 대한민국사람들이 아니다.

복명무장단체는 외지에서 온 불순세력이다 이들이 무기반납을 저지하고 폭동을 확산시킨다.

175. 북한군들은 후퇴할때 따라붙었던 남한시민군들을 북한군들의 행군속도를 따라오지못할거라 생각하여 또 귀찮아서 살해해버렸다.

176. 북한은 광주폭동의 군자금과 공작금을 지원하기위해 조총련에 1979년 19억엔을 송금하고 1980년 4월 14일에 조총련에 5억4천만엔을 송금했다.

1979년의 19억엔은 190억이고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1900억이상이다. 1980년의 5억4천만엔은 54억이고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540억이상이다.

177.5.18관련단체들은 광주시민들인 시민군들과 시위대들이 5월24일까지 낮선 사람들이 전남도청을 장악하고있어 전남도청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끼리라면 전남도청에 못들어갈리가 없었지. 그 낯선 사람들이 북한군들이니 5월 24일까지 전남도청에 못들어간거지

178.북한군특수부대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북한군들이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을 돕기위해 광주에 왔다. 광주폭동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작당하여 일으키고 주도한 것이다.대중씨라고 쓴 머리두건을 멘 폭도들 사진들이 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누구도 김대중을 대중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김대중은 북한군들에게는 대중씨였다.

179. 광주폭동은 이을설이 총지휘했는데 이을설이 총지휘하는 영상들과 사진들이 있다. 지프차를 타고다니며 지휘하는 모습영상들.

이을설이 찔레꽃이 있는 북한군시체들이 있는 관들을 잡고 우는 영상들.

180.전남도청에서 무수한 처형이 있었다. 전남도청이 북한군치하에 들어간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그랬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인 폭도들끼리 그렇게 서로 많이 죽일리가 없다.

181.북한군치하에서 광주시민들시신들이 많이 들어왔다. 계엄군치하에서는 광주시민들시신들이 적게 들어왔다.

182. 침투한 북한군들과 북한고정간첩들이 북한군치하의 광주를 통치했다.

183.남한정보기관은 광주폭동때 정보를 왜곡했다. 해주에 10만에서 15만의 북한군들이 남침을 대기하고있다는 사실을 왜곡했고 미국항공모함 2대가

한반도에 온 이유도 왜곡했다. 남한정보기관은 북한군들 600명이 침투했다는 것도 알고있었다고한다.

184. 탈북자들 몇명 몇십명만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2만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비공개적으로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한다. 그 2만명의 탈북자들 중에 공개적으로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증언한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광주사태에 대해 말하지말라는 5.18보안각서때문이다.

185. 광주사태주동자 중의 한 명인 윤한봉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자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윤한봉은 광주에서 도망갔다.

그 누군지 전혀 모르는 자들이 북한군들이다.

186.북한은 1980년 5월초 전시사령부를 구성하여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광주사태가 다른 도시들로 확산될 경우 이들을 

지원하기위한 원병의 기능을 담당할 참이었다.전시사령부는 특수게릴라훈련을 받은 강력한 124군부대 등 10만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주력부대가 

해주와 개성부근에 집결했다. 주한미군정보기관은 이들을 인공위성사진으로 잡았다.

187. 광주시민으로 위장하고 유혈폭동을 선동하기위해 침투하다가 붙잡힌 간첩은 북한인민무력부직할부대심리전대대소속이었다.신문에 그 기사가 났다

188.김동명기자는 광주폭동때 북한군개입의혹을 5월 19일부터 품었다고 말했다.

189.폭도들이 광주시민들을 꿇어앉히고 머리를 땅에 박게하고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있는 사진이 있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인 폭도들끼리 그렇게 할리가 없다.

190. 광주에 있던 중앙정보부분실과 보안사분실과 경찰서에 있던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있는 서류들을 북한군치하에서 북한군들이 수거해 불태웠다.

191.납북여배우 최은희의 증언에는 광주폭동때 폭도들이 무기고들을 부수어가지고 무기들을 들고 서울쪽으로 향하고있다는 생중계방송을 보았다고한다.

이런 생중계방송은 북한군들이 무기탈취현장에 있었을때만 가능하다.

192.전남도청시신수습담당관의 양심선언. 5.18은 100% 북한공작원들이 꾸민 짓이다.

193.북한특수부대장교출신 탈북자 임천용은 자신이 소속한 특수부대의 자신의 지휘관이 광주에 침투했었다고 증언했다.

194.폭도들이 모든 무기들을 매우 잘 다루었다고 5.18광주헬기탑승병이 증언했다. 대학생들,고등학생들,양아치들,구두닦이들이 무기들을 그렇게 

잘 다루나? 예비군출신은 폭도들에 별로 없었다고한다.

195. 광주 송암동 야산에 토굴,숙영지,소뼈더미들이 있어 북한군들의 장기숙영흔적이 있다. 북한군들이 소를 잡아먹고난후 생긴 소뼈더미가 있다.

북한군장기숙영물증. 김유송전북한군상좌증언.

196. 1980년 5월 19일자 CIA보고서에  광주사태가 처음 난 다음날인 5월 19일 김일성주재로 열린 북한고위급비밀회담에서 광주사태가 

전국규모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면 즉시 남침을 한다고 김일성은 결심했었다고 되어있다.

197.CIA문건에 김일성과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등 북한군수뇌부는 광주사태가 나기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있었다.1980년 5월 19일 주석궁에서 

김일성과 오진우 등 북한군수뇌부비밀회담에서 김일성과 북한군수뇌부들은 광주폭동이 전민봉기로 확산되면 남침하기로 결정했다고 되어있다.

북한군수뇌부들이 작전계획을 만들어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실행하게 했으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있은거지.

198. 광주기자 김동문이 본 5.18광주사태는 북한군침투가 사실이다.

199.김일성교시. 남한계엄사령관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남조선정세가 그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군수뇌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연락부와 인민무력부에서는 언제든지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4시간 무휴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1979년 12월 20일 중앙당확대간부회의에서 김일성이 말함.

200. 5.18시위대들에서 방위병 중에 한 명인 이재춘은 광주에 조직적인 간첩활동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북한방송을 청취하니 광주에서 당시 상황과

정확이 들어맞았다.

201.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회고록에는 전남출신의 당시 합참의장인 문형태의 생각은 공산당들이 시내에 들어와 있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과격분자들을 조종하고 있는게 틀림없다는 구절이 있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으면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회고록에 그런 내용을 썼겠나?

202.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명령 ㅇㅇ호. 최근 남조선에 조성되는 긴장한 정세는 조국통일의 대사변늘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있다.조만간 남조선전역에서 들고일어날 영웅적인 남조선인민들의 대규모의 혁명적 항쟁을 지원하기위하여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은 

사회주의조국을 사수하는 전초선의 보루이며 조국통일의 가장 유력한 전위부대이고 일당백의 강력한 무정력인 조선인민군장병들에게 다음과 같은

전투명령을 하달한다. 준전시상태돌입했다.

203. 3만 2천명의 탈북자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들은 사람의 비율이 90%이상이다.

204.북한노동당소속출판사들이 1982년 및 1985년에 2개의 5.18역사책을 썼다. 거기에 있는 자료들과 처음 공개된 남한검찰수사자료들을 대조해보면 

중요한 사실들과 통계가 일치한다. 공수부대를 향해 지그재그로 돌진하던 대형버스가 광전교통 전남 5아 3706이라는 번호판. 시위군중의 구체적인

폭동행위기록, 광주의 수많은 곳에서 전개되는 상황들을 북한사람들이 와서 기록한 것이다.

205. 김일성은 광주사태를 대비하고 향후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비하여 5월말까지 예정되었던 루마니아방문일정을 단축하고 5월 13일 북한으로 

급히 귀국했다. 김일성이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5.18광주사태가 일어났다.

206. 5월 21일 오전 8시에 광천동과 농성동과 돌고개에 동시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었다.그 동네들은 공수부대가 전혀 간 적이 없는 곳이다.

그 바리케이트들은 공수부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상무대군인들을 전투대상으로 설치된 것들이다.

207. 광주에서 시민군인 저격수들로 활동한 북한군들의 이마에 두른 백색수건에 쓴 구호에서 김대중,슨상님.김대중선생이 아닌 대중씨로 씌어있다.

김대중은 광주운동권에서는 슨상님,김대중선생이었으나 김대중내란음모를 지원하던 북한군들에게는 대중씨였다. 그 당시 광주에서 광주시민들 중 

김대중을 대중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208. 북한세력이 광주에 침투해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은 광주사태당시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이 제기한 것이다.

시민군폭약창고 수문장 양홍범, 이기호변호사, 그외 많은 광주시민들.

209.장형태 당시 전남도지사는 북한세력의 광주사태개입낌새를 처음 알아차린때는 5월 21일 오전이었다.

210. LMG기관총공격에 의한 사망자 47명. 폭도들이 전남의 무시고들을 털어 탈취한 무기들 중에 LMG기관총이 있었다. 계엄군보병들이 LMG기관총으로

폭도들에 총격을 가하지않았다고한다. 계엄군의 AH1J헬기에는 발칸포를 장착했고  500MD헬기에는 6열기관총을 장착했다. UH-1H헬기에도 

LMG기관총을 장착하지않았다고한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전남대병원 12층 옥상에 LMG기관총을 두 대를 설치하여놓고 도청방면과 헬기에 

사격했다. LMG기관총총격에 의한 사망자 47명은 북한군들이 도청방면으로 총격을 가해 생긴 사망자들로 추정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인

폭도들끼리 LMG기관총으로 47명이나 죽일리가 없다.

211.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의 국정원에서 탈북자들이 북한군침투개입증언을 하지말라고 탈북자들을 협박했다.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말하지못하도록 협박당한 탈북자들도 있다. 탈북자들 대부분에 5.18보안각서를 써도록하였다.

212.전라도출신 전교사사령관인 소준열은 전남도청에 적색분자가 있다 불순분자의 책동이 있었고 실제로 간첩도 있었다고 말했다.

213. 전남출신 합참의장인 문형태는 광산당들이 시내에 들어와 있거나 외부에서 과격분자들을 조종하고있는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214. 북한이 만든 기록영화 475명 조선기록영화제작소 제작 광주인민항쟁.  침투한 북한군들이 전사하여 광주근교에 암매장된 수가 475명이다.

215.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이전의 북한무장공비들과는 옷,무기,행동을 완전히 다르게 해서 북한군들인지 무장공비들인지 알아보지못했다.

이전의 무장공비는 무장공비티가 나는 복장으로 또는 국군복장으로 AK소총 또는 칼빈소총과 폭탄을 가지고 내려왔고 전투를 벌이며 침투했다.

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복장으로 위장하여 와서 광주에 잠입했고 광주에서는 시위대나 시민군복장으로 위장해 활동했고 AK소총과 

칼빈소총과 폭탄을 가지고오지않아서 전남의 무기고들을 털어 현지조달로 무장을 했고 침투시 전투를 벌이지않고 조용히 잠입하여 광주에서만 

시민군으로 위장하여 전투와 심리전을 벌였다.

216.임산부를 죽인 자들은 얼굴을 무섭게 칠한 무장시민군이었다고한다.임산부 최미애 학살.목격자 증언.계엄군들은 얼굴을 그렇게 칠하지않았다고한다.

217.5월18일 새벽 공수부대가 여자유방을 도려내죽였다는 대자보가 붙었다.공수부대가 도착도 안했는데도 공수부대가 오기전날 그런 대자보가 붙었다.

218. 광주폭동 중 이을설이 아닌 북한군장군(3성장군)이 폭동을 계속할지 철수할지 알아보기위해 광주에 내려왔다. 

그 북한군장군이 철수할 것을 결정하여 북한군들은 철수했다.

219. 광주폭동때 침투한 북한군들에 대해 김일성이 철수명령을 내렸다.

220.광주시민들인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이 전남도청에 5월 24일까지 들어가지못했다. 5.18관련단체들도 그렇게 말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고 

광주시민들끼리 전남도청에 들어가지못할리가 없지.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있던 자들이 북한군들이니 광주시민들인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이 

전남도청에 못들어간거지. 5월 24일 밤 북한군들이 전남도청에서 철수하고나서야 광주시민들인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이 전남도청에 들어갔다.

221. 연고대생으로 가장한 600명은 복면을 쓰기도 했었다. 북한군들만 복면을 쓴건 아니다.목포에서 온 김대중계열의 복면부대가 있었다.

222. 김일성은 오판말라 북괴는 오판말라라는 현수막의 구호는 광주사태주동자 중의 한 명인 윤한봉이 만들은 말들이었는데 윤한봉이 증언하기를 

전부 빨갱이로 몰리지않기위해 일부러 북한을 좀 까는 내용들이 한줄씩 들어가고 그랬다고한다. 

윤한봉은 반북성향인 사람이 아니라 종북성향이고 좌익성향인 사람이다.

223. 침투한 북한특수부대대원이 전투현장에서 죽은 즉시로 북한군들이 개인마다 몸에 지닌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살아있는 북한군들이 북한군시신을 폭파했고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어서 남한사람들이 눈치채지못하게 하였고 발견하지못하게 하였다.

침투한 북한군특수부대대원이 전투현장에서 부상을 입어 행군속도에 지장을 주면 북한군들이 개인마다 몸에 지닌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부상당한 북한군은 자폭을 했고 자폭흔적을 살아있는 북한군들이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224.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자들은 북한군들임이 확실시되는 광주폭동때 광주에 온 연고대생으로 칭하는 600명은 

신군부의 공작원들이거나 편의대거나 선무공작요원들이거나 전두환의 특수공작부대라고 주장한다. 신군부의 공작원들,편의대,선무공작요원들,

전두환의 특수공작부대가 미쳤다고 20사단지휘부차량을 공격하여 차량을 탈취하고 전남 17개시군의 무기고들44곳을 털어 엄청난 무기들로 무장하고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하여 장갑차 4대와 차량 410대를 탈취하고 계엄군을 장갑차로 깔아죽이고 광주교도소를 5번 습격하고 계엄군들과 총격전을 벌여

계엄군들을 광주에서 쫓아내나? 폭동이 빨리 진압되도록 노력하지 미쳤다고 폭동을 크게 증폭시키고 무기반납도 못하게 막나?

전두환이 미쳤다고 분란을 크게 일으키고 느리게 권력을 잡으려고 했겠나? 분란을 덜 일으키며 빨리 권력을 잡으려하지.

225.광주폭동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작당하여 일으키고 주도한 것이다.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특정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위해 침투했다고 말했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이마에 대중씨라고 쓴 천을 매었다.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기위해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했다. 전남국을 세우거나 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정부가 전복되면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했다. 김대중이 광주사태를 일으켰다는 증거들은 많다. 김대중의 사조직인

국민연합을 통해 김대중은 광주운동권과 전라도운동권에 광주사태를 일으키라고 지시했다. 김대중은 녹두서점을 통해 맨처음에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김대중의 별동대들이 광주폭동때 활동했다. 김대중은 정동년에게 광주사태를 일으키라고 돈을 주고 지시했다.

226.김일성어록에 북한군들의 광주사태침투개입을 적은 구절이 있다.

227.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이나 재야운동권이 방송국을 방화하여 전소시키거나 세무서에 방화하거나 시청을 파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북한군들이거나 폭도들이나 그렇게 하지.

228.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인정되면 전라도것들과 종북세력과 좌익세력에 결정타가 됨을 알기에 전라도것들과 종북세력과 좌익세력은 

광주폭동때 광주에서 북한군들을 보고서도 못보았다고 할 것이다.

229.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인정되면 전라도것들과 종북세력과 좌익세력에 결정타가 됨을 알기에 전라도것들과 종북세력과 좌익세력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이 아주 많고 명확한데도 무조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230. 광주폭동때 미국항공모함 코럴시호와 미국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미국항공모함 두 대가 한반도에 전개되었다는건 한반도에

큰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때문에 그런 위험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한반도에 전개된 것이다. 광주사태도 최악의 상황이라는 뜻이다.

광주에 북한군특수부대 600명이 침투하여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하여 광주의 폭동이 전남전역으로 확산되게 하여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전남의 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정부를 전복시켜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군들 10먄에서 15만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한 것이다.

미국의 항공모함 두 대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위해 광주폭동때 한반도에 왔다.광주사태가 정말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미국은 한국정부에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지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미국항공모함 두 대를 한반도에 보내지않는다.

231.전라도것들은 상습적인 구라쟁이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전라도것들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에 대해 말하는 것도 왜곡하고 허위날조하여 말한다

종북좌익들은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들이다. 종북좌익들은 거짓말과 위장의 명수가 되어야 공산주의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레닌의 말을 신봉하고 

실천한다.그래서 종북좌익들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에 대해 말하는 것도 왜곡하고 허위날조하여 말한다.

232.전두환은 1980년 6월 4일 말하기를 22구의 신원미상시신들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으로 보인다고 주한미상공회의소기업인들과의 

만찬에서 말했다. 전두환의 그 발언내용이 1980년 6월 17일 미국무부비밀문건에 기록되었다.

233. 1980년 5월 25일 오전 9시 머스키 당시 미국무장관은 당시 한국의 보안사령관인 군의 실력자 전두환이 5.18사태에 대해 군사작전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234. 1980년 광주사태에 대한 대법원판결. 김대중은 북한의 사주를 받아 광주폭동,광주내란,광주반역을 일으켜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235. 북한문건에는 광주항쟁은 주체의 기치따라 남조선인민이 봉기했다고 기술되어있다.

236.광주사태는 원래 광주폭동,광주내란,광주반역으로 규정되었는데 민주화세력의 득세와 국민화합차원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주고 보상도 해주었다.

237. 광주폭동때 폭도들 수백명이 죽어서 암매장되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되었다. 

침투한 북한군들 중 광주근교에서 죽은 475명은 광주근교에서 암재장되었다.

238. 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이 광주사태에 대해 교과서로 삼는 황석영 등 3인공저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은 북한이 

발행한 광주사태에 대한 책들 즉 광주의 분노와 주체의 기체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많은 부분을 베꼈다. 북한의 그 두 책에는 사실을 

정확히 기술한 내용들도 있지만 남남갈등을 조장하기위해 허위로 모략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북한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영악하게 행동하는거지

황석영은 북한을 5번 밀입북하여 7번 김일성을 만났고 김일성에게 25만달러의 공작금을 받았고 북한대남공작기관의 남한저위조직인 단체에 오래 가입하고

있었다. 그때문에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그래서 황석영 등 3인공저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

그 책에서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전혀 언급안되어있다.

239. 광주폭동때 침투한 북한군특수부대 600명과 국군들간에 전쟁이 벌어지고있다거나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확실히 밝히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그 전쟁이 북한과의 전면전으로 벌진 위험이 있었고 혼란기에 남한국민들이 크게 동요하게 되니  북한군 600명과 계엄군들이 전쟁을 벌인 사실을 확실히

밝히지않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지않았다고 추측한다. 전면전은 엄청나게 부담스럽다.

240. 광주폭동때 광주에 있던 기자들 중에는 북한군들을 못보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북한군들이 남한민간인으로 위장하여 와서 시위대나 시민군들로

위장하여 활동을 했는데 기자들이 북한군들인줄 잘 알기어렵다. 기자들은 남한사람들을 북한사람들로 위장해서 보여주면 북한사람인줄 판정할 수 있나?

기자들은 남한사람들과 북한사람들을 구분하는 비법이라도 가지고있는가? 북한군들이 많았던 지역들에 가서 북한군들을 취재를 해본적이 있는가?

행동이 크게 제약되었던 당시 광주에서 여러 곳을 취재했는가? 유언비어가 많이 나돌때 유언비어에 영향을 받지않았는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은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말하고싶은가? 당시 광주에 있던 기자들 중에 북한특수부대의 전술,특징,침투방법,지휘체계를 아는 기자들이 있는가?

없거나 극소수일 것이다. 전라도것이나 종북좌파거나 종북좌익인 기자들은 북한군을 보고서도 못보았다고 말할 것이다.

241.  국군과 주한미군이 북한군보다 우세하니 북한이 무력으로 남한을 적화시킬려면 남한의 일부지방이 북한편이 되거나 남한의 전역에 폭동,내란,반역이 

일어나 남한정부가 무정부상태가 되거나 북한군이 획기적인 무기를 개발해야 북한이 무력으로 남한을 적화통일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일부지방을

북한편으로 만들려면 종북성향,친북성향,좌익성향이 강한 지역에 북한군이나 북한간첩을 보내어 그렇게 하려할 것이다. 전라도가 남한에서는 종북성향,

친북성향,좌익성향이 가장 강하니 북한군 600명과 북한간첩 1000명을 광주에 침투시켜 활동하게 하여 그렇게 할려고했다. 남한전역에 폭동,내란,반역이 

일어나게 할려면 폭동성향,반역성향,좌익성향이 남한에서 가장 강한 지역부터 폭동,내란,반역이 일어나게 하여 남한전역에 폭동,내란,반역이 일어나게

하려할 것이다. 전라도가 남한에서 폭동성향,좌익성향,반역성향이 가장 강하니 북한군 600명과 북한간첩 1000명을 침투시켜 전라도에서부터 

폭동,내란,반역이 일어나게 하여 남한전역에 폭동,내란,반역이 확산되게 하려했다.

242. 미국군사첩보위성에 해주에서 북한군들 10만에서 15만이 기습남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당시 북한군의 군사작전계획과 일치한다.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북한군들 600명을 광주에 침투시켜 폭동을 일으킨뒤 전남전지역에 폭동이 확산되면 전남국을 세우거나 전라도의 폭동이 남한전체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정부가 무너지면 해주에서 대기하던 10만에서 15만의 북한군들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했다.

243. 침투한 북한군들 600명은 6개월간 남한말씨를 배우고 남한말씨만을 사용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북한군들 600명은 광주에 침투하여 활동하면서 

남한말씨를 사용했다. 북한군들이 실수로 북한말씨를 사용해서 그 북한말씨를 들은 광주시민들을 2명만 제외하고 모두 살해하였다.

244. 광주폭동이 끝난후 963정의 총들이 회수되지않았다. 북한군들 또는 간첩들의 존재를 추측하게 한다.

245.광주폭동때 북한간첩들이 무려 1000명이나 광주에서 활동했다. 그 당시 광주에 북한간첩들 약 1000명이나 집결하고 활동을 한건 북한군특수부대

600명이 광주를 완전 장악한 기간이 있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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