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홍석현과

홍석현의 조카 이재용이,

박근혜와 독대한 내용에 관련된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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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손석희 앵커 교체 외압 받았다

 

유튜브에 영상 올려 "제가 받은 외압 5~6번, 대통령으로부터도 2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미대사직 제안 밝히며 "노무현의 선택이 미래"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재직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손석희 앵커를 갈아치우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밝혔다.

홍 전 회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JTBC 외압의 실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의 2분6초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이 영상에 출연해 메인 앵커인 손석희씨에 대한 교체 요구와 관련, "(JTBC의 2016년 10월 24일 최순실씨 태블릿PC 보도)그 전에 제가 받았던 구체적 외압이 한 5번에서 6번 되고요, 그 중에 대통령으로부터 2번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밝히는 것이지만,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그때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또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치렀던 위협을 느낀 건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그런 외압을 받아서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제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고, 21세기에 있을 수 도 없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제가 외압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태블릿PC 보도 이후는 이 정권이 좀 약해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홍 전 회장은 재임중 있었던 일화나 비전 등을 밝힌 동영상을 최근 여러 건 올렸는데, 그 중 '노무현의 선택, 홍석현의 선택'에선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 받았던 공직 제의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2분 48초짜리 이 영상에선 홍 전 회장의 사진 위로 그가 쓴 글이 자막으로 올라갔다. 자막과 육성 인터뷰에서 그는 "어느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제게 유엔 사무총장 한국후보와 주미대사직을 함께 제안하며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역할 해줄 것을 요청해온 적이 있다"며 "저는 하루하루 고뇌의 밤을 보냈다. 저의 태생적 배경, 재벌 관련 이미지, 언론사 사주라는 지위가 오히려 많은 것들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됐다. 고뇌의 밤은 매일매일 깊어만 갔다"고 했다.

홍 전 회장은 이어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왜 나, 홍석현을 선택하셨을까…. 그 분 주변에는 능력 좋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검증받은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데. 고뇌의 밤은 한 달이나 갔다"며 "그리고 노무현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그 분의 선택이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 분의 선택이 미래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많은 세월이 지나 다시 고뇌의 밤을 맞이한다. 홍석현의 선택을 생각한다. 이 선택이 미래를 위한 것이란 믿음도 가져본다. 지금 이순간보다 다가올 모두의 봄을 기대하며 용기를 가져본다.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외연 확장 차원에서 최근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 전 회장 등 '제3지대' 인사들에게 영입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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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박근혜가 ‘손석희 교체’ 외압” 폭로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 자리서 JTBC에 광고하지 말라 지시”도

홍석현 전 중앙일보ㆍJTBC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을 교체하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국정농단사태 이전부터 정권 차원에서 JTBC 보도를 통제하려는 유ㆍ무형의 압력이 있었다는 그간의 의혹을 직접 시인하는 발언이다.

홍 전 회장은 16일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 올려진 ‘JTBC 외압의 실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태블릿 PC 보도 이후엔 정권이 약해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다. 다만 보수층으로부터의 비난과 태블릿 PC가 조작됐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있었다)”며 “특히 태극기 광장에서 저나 저의 아들(홍정도 중앙일보ㆍJTBC 사장), 손석희 사장의 이름까지 거론되면서 규탄이 대상의 됐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그 전에 제가 받았던 구체적인 외압이 대여섯 번 되고 그 중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 있었다”며 “이번에 처음 밝히는 것이지만 (외압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홍 전 회장은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서 고초를 치렀던 입장에서 위협을 느낀 건 사실”이라고 토로하며 “그렇지만 외압에 의해 앵커를 교체하는 건 제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고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에 외압을 견뎌냈다”고도 말했다. 앞서 밝힌 “외압”의 내용이 “앵커 교체” 즉 손 사장의 퇴진이었다고 명시한 셈이다.

이 영상은 도입부에 “탄핵정국과 관련 JTBC에 대한 원망과 의심, 책임을 묻는 어떤 논리도 저는 수긍하지 않습니다” “진실 추구” “이제 제가 떠나온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딱 한 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일을 해주시라”라는 자막을 차례로 띄웠다. 홍 전 회장이 갑작스럽게 경영에서 물러난 이유를 두고 국정농단사태와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일가의 외압으로부터 JTBC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일었는데 이를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홍 전 회장의 영상이 올라간 경위는 파악되지 않았다”며 “영상을 통해 밝힌 것 외에는 따로 전할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미디어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중앙미디어네트워크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지난해 2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자리에서 손 사장을 교체하라는 압력이 있었다고 18일 보도했다. 이 부회장이 난색을 표하자 박 전 대통령이 JTBC에 삼성 광고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관계자의 주장도 덧붙였다.

실제로 JTBC에서 삼성 광고가 급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태블릿 PC 보도 이후로 ‘뉴스룸’이 종합편성채널 역대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외압설’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한 관계자는 “JTBC에서 삼성 광고가 지난해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해 올해는 거의 다 빠졌다”며 “외부에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삼성과 박근혜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 아니냐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한국일보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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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손석희 앵커 교체 압력 받았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이른바 '태블릿 PC 보도'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교체 외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홍 전 회장은 지난 16일 유튜브에 올린 'JTBC 외압의 실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홍석현' 이란 제목의 2분6초짜리 영상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제가 받았던 구체적인 외압이 5~6차례 되고 그 중 대통령으로부터 2번 있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태블릿 PC 보도 이후에는 정권이 약해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다"면서 "다만 보수층으로부터, 특히 태극기 광장에서 저나 제 아들(홍정도 중앙일보·JTBC 사장), 손석희 사장의 이름까지 거론되며 규탄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홍 전 회장은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치렀던 입장에서 위협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외압을 받아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자존심이 용서치 않았고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외압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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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손석희 교체 외압 5~6번…2번은 박근혜 대통령”

 

홍 전 jtbc 회장, 개인 누리집·유튜브에 영상 공개

“최순실 태블릿피시 보도 전에 수차례 외압 받아”

대선 코앞에 공개 두고 ‘정치적 미래’ 포석 해석도

 

홍석현 전 <중앙일보>·<제이티비시>(JTBC) 회장이 재직 시절 박근혜 당시 대통령 등으로부터 손석희 앵커를 갈아치우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홍 전 회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제이티비시 외압의 실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2분7초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이 영상에서 “(제이티비시의 2016년 10월24일 최순실씨 태블릿 피시 보도) 그 전에 제가 받았던 구체적 외압이 한 5번에서 6번 되고요, 그 중에 대통령으로부터 2번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때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또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치렀던 입장에서 위협을 느낀 건 사실”이라면서 “그렇지만 그런 외압을 받아서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제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고 21세기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제가 외압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외압의 주체와 횟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홍 전 회장은 또 “태블릿 피시 보도 이후는 이 정권이 좀 약해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습니다”라고도 밝히며, 외압을 받은 시기를 지난해 10월24일 이전으로 한정시켰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기인데다 하필이면 세월호 참사 3주기인 16일 공개된 영상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계 안팎에선 이것이 홍 전 회장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새 대통령이 통합정부를 해야 하고 나도 2~3년 안에 대한민국의 문제를 푸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하는 등 정치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홍 전 회장 쪽은 “(홍 전 회장이) 개인 홈페이지에 띄운 것으로, 언제 찍은 것인지, 어떤 의도인지 등은 본인 말고는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한테도 손 앵커 교체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삼성 미래전략실 출신의 한 임원은 ”19일에 열릴 이 부회장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이 부회장 진술조서에 관련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며 압력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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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박근혜, 독대에서 홍석현 전 회장에 불만 토로"

 

"朴, 흥분해 얼굴 빨개져…'이적단체' 표현 쓰기도"

"최태원과 통화, 내용 기억 안 나"…'독대 내용 상의·공유' 부인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이보배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단독 면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에 관한 불만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은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과 삼성그룹 전직 임원들의 속행 공판에서 피고인 신문을 받으며 지난해 2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의 3번째 단독 면담 내용을 설명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당시 대통령이 'JTBC가 왜 정부를 비판하나'라며 10분 가까이 홍 회장에 관한 불만을 말한 것이 사실인가"라고 물었고, 이 부회장은 "굉장히 강하게 얘기하셨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어쩌다가 JTBC 얘기가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박 전 대통령이 '홍 회장이 외삼촌 아니냐, 중앙일보 자회사 JTBC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홍 전 회장을 두고)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럴 수가 있나'라며 '이적단체'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부연했다.

이 부회장 진술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중앙일보가 삼성의 계열사였는데 얘기를 좀 해 달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JTBC가 독립된 언론사이며 자신보다 홍 회장이 손윗사람이라고 상기시키자,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님이 누님이시니까 어머님께 말씀드려라"라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이 부회장에게 정치인 2명의 실명을 거론하고 "누구와 어떻게 내 얘기를 하고 다니는 줄 모를 것 같나, (홍 전 회장이) 정치에 야망이 있는 것 같은데 삼성이 줄을 대는 것이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이런 상황을 자세히 언급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굉장히 흥분하셨고, 얼굴이 빨개지셨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다소 흥분한 듯 "회장님(이건희 삼성 회장)이 살아계실 때부터"라고 말했다가 다급히 "회장님이 건재하실 때부터"라고 말을 정정했고, 몇몇 방청객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독대 후 홍 전 회장을 찾아가 독대에서 오간 대화를 전달했고, 이에 박 전 대통령과 홍 전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특검은 이 같은 이 부회장의 진술을 근거로 "독대에서 나온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는 뜻 아닌가"라고 지적했지만, 이 부회장은 "우리에게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것을 설명해야만 했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다른 발언과 달리 홍 전 회장 관련 부분은 즉시 오해를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는 취지다.

이 밖에 이 부회장은 3차 독대를 전후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총 19차례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은 것에 대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두 사람이 독대와 관련해 상의하거나 내용을 공유했다고 의심했지만, 이를 부인한 것이다.

그는 "최 회장과 매주 몇 차례씩 문자를 주고받았고, 2015∼2016년에는 특히 자주 했다"며 "그 무렵 최 회장에게 가족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많은 얘기를 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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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아마도,

홍석현이가 대권에 야망이 있어서,

박근혜 본인에 대한 불리한 보도를

JTBC에 내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재용과 박근혜간의 독대 내용을 바탕으로

추측해 본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2016년 12월 탄핵은,

홍석현이가 박근혜를 하야시키기위해

기획한 탄핵이라는 것을,

이제는 눈치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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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잘 모르는 사실이 또 하나 있는데,

 

박근혜 탄핵 기획의 일등공신인,

홍석현의,

부친 홍진기씨는 서울 출생이고

서울 토박이 이지만,

모친 김윤남씨가 전라도 여자이기 때문에,

 

홍석현은,

전라도 피가 반쯤 섞인,

전라도 혈통의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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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이 몸통이다<3>] 반호남인사의 호남기반 대권야망...친일·독재 부역 가족사 ‘아킬레스건’

 

대통령 탄핵 이끌어낸 촛불을 ‘집단지성’으로 찬양하며 ‘리셋코리아’ 외치며 야망 드러내

 

탄핵정국의 극심한 혼돈 속에서 서서히 대두되고 있는 것이 ‘홍석현 대권출마설’이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일부 호사가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설’에 불과하던 것이, 올해초 그룹차원의 대형프로젝트 ‘리셋코리아’ 출범식을 계기로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홍석현 회장은 당시 출범식에서 “광화문 촛불에서 집단 지성의 힘을 확인했다”며 대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홍석현 회장은 올해 1월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리셋코리아:내가 바꾸는 대한민국’ 행사 출범식에서 “광화문 촛불에서 집단 지성의 힘을 확인했다”며 “촛불의 에너지를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와 시민이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예찬하며 대안론 꺼내든 홍석현에 좌파매체들 “대권주자” 찬양

 

홍 회장은 이어서 현 정권을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앙시엥레짐으로 표현했다. 그는 “나라가 이렇게 된 게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부조리와 폐단이 쌓였기 때문”이라며 “앙시앵 레짐이 된 현 체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계사적, 문명사적으로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중민주주의를 연상케 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홍석현 회장은 “시민이 직접 나서서 만들 때가 됐다”면서 “리셋 코리아의 디지털 공간에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한 문제, 한 문제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이날 행사에 대해 친노좌파 인터넷매체들은 일제히 ‘홍석현 띄우기’에 나서며 홍석현 용비어천가를 외치고 나섰다. 중앙일보를 보수우파라며 적으로 돌리던 과거라면 상상하기 힘든 반응으로, 이제는 친노좌파 쪽에서 중앙일보를 동지로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미디어오늘은 2017년 1월 20일자 ‘촛불 치켜세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망론 실체는?’ 제하의 기사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발언과 대조해가며, 홍석현 회장을 대권주자로 평가했다. 같은날 미디어스 역시 ‘반기문 지고 홍석현 뜨나?’ 제하의 기사를 통해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대안으로 홍 회장을 제시했다.

 

친노 정권 주미대사 이래 ‘오래된 야망’

 

홍석현 회장의 야망은 사실 오래전부터 꾸준히 관측됐다. 다만 한때 부정부패와 탈세의혹에 연루돼 사그라드는 듯 하던 홍 회장의 야망이 이제 JTBC·중앙일보라는 강력한 무기를 발판으로 최근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홍석현 대망론’을 꾸준히 제기하며 책으로까지 펴낸 인물은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다. 그는 신아일보에 게재한 칼럼에서 홍석현 회장이 과거 UN 사무총장을 노렸다는 점을 언급했다. 조한규 전 사장은 “홍 회장은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사직과 함께 차기 UN 사무총장 후보 내정의 약속을 받고 2005년 워싱턴에 주미대사로 부임했다”면서 “2005년 7월 MBC가 ‘삼성 X파일’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아마 홍 회장이 UN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홍석현 회장은 노무현 정부가 내정한 총리후보였다는 설에도 휩싸여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평전 ‘이건희전: 초국가 삼성을 건설하다(심정택, 새로운현재)’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원래 홍석현 전 주미대사를 국무총리로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저자는 이학수 전 부회장이 노무현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홍석현 전 주미대사를 국무총리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고 썼다.

 

노무현 정권은 재벌기업인 삼성과 재벌언론사인 중앙일보와의 유착으로 유지된 정권이라는 구설에 자주 시달렸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재벌언론사주인 홍석현 회장을 주미대사로까지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의 홍석현 회장 주미대사 기용은 이전 김대중 정권에서 탈세 문제로 구속까지 됐던 인사에 대한 사실상의 정치적 면죄부라는 점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1999년도 보광그룹의 탈세 문제가 터졌을 당시 한겨레 기사.

 

무르익던 꿈을 좌절시킨 건 당시 MBC 이상호 기자가 폭로한 ‘삼성X파일’이다. 이를 기반으로 이상호 기자는 삼성그룹이 홍석현 회장을 통해 1997년 대선에서 약 100억원의 대선자금을 이회창 후보 측에 제공했으며, 전현직 검사들에게 수억원에 달하는 뇌물은 전달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홍석현 당시 주미대사는 대사에 내정된 지 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해 귀국했다. (관련기사 : 이상호, “문재인이 삼성X파일 수사 막았다”)

 

그러다가 JTBC가 태블릿PC 조작보도를 통해 국정농단 사건을 터뜨리고, 얼마전 외신인 일본 니케이비즈니스가 “JTBC가 최순실 사태를 가장 먼저 보도한 이유는 사주인 홍석현 회장의 대권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홍석현이라는 이름이 다시 정치권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니케이비즈니스의 보도를 ‘망발’이라고 몰아세웠지만, 결과적으로 홍석현 회장의 대권설만큼은 나날이 무게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 법원에서 기각이 되긴 했지만, 탄핵정국에서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죄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를 중앙일보·JTBC가 적극 지지하자, 홍씨일가가 삼성그룹을 넘본다는 소문도 확산됐다. 홍석현 회장의 누나 홍라희 여사는 남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망하면 상속재산의 절반을 우선 확보하게 된다. 홍라희 리움 관장이 홍씨 일가의 편을 들면, 외척인 홍씨 일가의 삼성 접수가 불가능한 시나리오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 이재용의 삼성까지 건드린 JTBC 홍정도 대표, 페이스북서 삼성 경영에 ‘깊은관심’ 노출)

 

홍석현, 외가의 호남기반으로 대권전략...친일행적·독재부역 가족사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홍석현 대망론을 꺼내들면서 홍 회장의 외가와 처가가 호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들었다.

 

홍석현 회장의 외할아버지 김신석은 호남은행 전무를 지냈다. 김신석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지만, 전남의 대부호였던 현준호 호남은행 대표에게 스카웃 된 이후 호남에 뿌리를 내렸다. 조 전 사장은 호남은행의 역사를 짚으며 “김신석은 오늘날 신한은행의 옛 간부인 셈”이라고 표현했다.

 

김신석은 대표적인 친일파다. 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됐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섰다. 이러한 ‘공로’로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는 김신석의 이름이 조선인공로자 353명 가운데 한명으로 수록돼 있다. 김신석의 딸이자 홍석현 회장의 어머니 김윤남은 광주욱공립고등여학교(현 전남여고)를 졸업했다.

 

홍석현 회장의 장인은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좌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재정권의 부역자’였던 셈이다. 신직수의 딸이 홍 회장의 부인 신연균이며, 손자가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다.

 

신직수는 충남 서천 출신으로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했다.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5.16 혁명 이후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률고문을 맡았고 승승장구, 1963년부터 1971년까지 7년7개월 동안이나 검찰총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법무부 장관과 중앙정보부장까지 역임했다. 신직수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당시에 벌어진 대표적인 사건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동아일보사 광고탄압, 코리아게이트 등이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홍 회장의 가족사를 분석한 뒤 호남을 기반으로 대권에 나서면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 조 전 사장은 책 ‘제3의 개국’에서 “홍석현은 8대조 이래로 서울 왕십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지만, 모계(母系)는 호남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홍석현 회장의 누나 홍라희 여사가 태어난 곳도 호남이다. 홍 회장의 아버지 홍진기가 김윤남과 결혼해 낳은 장녀가 홍라희 리움 관장이다. 홍라희라는 이름은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라는 뜻의 ‘라희(羅喜)’를 한자로 쓴다. 여기에 김윤남 여사 이래로 홍씨 집안이 호남기반 종교인 원불교에 귀의한 점도 들었다.

 

하지만,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의 바람과는 달리, 홍석현 회장은 본인부터가 김대중 정권 이전인 1997년 대선 당시 언론사 사주로서 모 대선후보에게 “노조와 호남한테 아부해봐야 안되니 확실하게 보수편에 서라”는 압력을 넣으며 노골적인 반좌파, 반호남 정치개입을 했던 전력이 있음이 MBC 의 2005년 삼성 X파일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대표적인 반좌파, 반호남인사였던 이가 김대중 정권에서의 ‘방북’, 또 노무현 정권에서의 ‘입신’을 기점으로 해서 좌파와 호남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하는 넌센스를 대한민국 국민들이 과연 용납할는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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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존망의 위기 때마다,

왜 항상 전라도 혈통이 출몰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참으로 의아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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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인성문제란 무엇인가

 

 

전라도는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시점부터 표리부동하며 믿을 수 없고, 뒤통수를 치고 남을 등쳐먹는다는 등의 나쁜 인식을 전국적으로 받고 있었다. 이것이 <전라도의 인성문제>란 것이다.

 

전라도는 이에 대해 오로지 남탓을 하며 영남정권, 경상도, 불의한 대한민국 등이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 낸 어거지 음모라고 악을 쓰는 광견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오직 경상도 탓으로 몰아 대는 몰상식한 행태로 표출되는 이 전라도의 인성문제와 남탓하기는 대한민국의 극한의 갈등과 분열을 몰고 온 비극의 씨앗이며 핵심적 요인이 되어 있다.

 

전라도의 인성 문제에 대해 전라도가 경상도에 대해 목놓아 외치는 주장이란 것은 이런 거다.

 

<<경상도의 가장 큰 죄악성, 그것은 호남인들의 인간성을 건드린 죄악성이다. 이것은 거의 반인륜적인 범죄다. 사실 경상도 입장에서 호남 이외의 사람들을 통치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끝까지 영남패권주의에 도전한 세력은 호남이었다... 급기야 영남패권주의자들은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렀다. 그것은 호남의 인간성을 먹칠하고 왜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조직적으로.......경상도 주도의 36년간, 이러한 호남에 대한 이미지 조작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더구나 약자의 입장에서 함께 도와 주어야 할, 경상도를 제외한 팔도 사람들이 그 이미지 조작에 합세하고, 강자인 영남 편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개소리, 또는,

 

<<경상도 새끼들은 대한민국의 권력과 부를 독차지 하려고 혈안이 된 아주 나쁜 새끼들이다. 그런데, 경상도 새끼들에게는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전라도였다. 경상도 새끼들은 1:1로는 위대한 전라도를 이길 수 없는, 한 마디로 별로인 새끼들이다. 그리고 경상도 새끼들 중에는 기회 주의자가 무지 무지 많았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나쁜 경상도 새끼들 중에 이 기회주의자 새끼들이 잔대가리를 굴려서 만든 것이 지금의 지역감정이다. 지역 개발에 있어서도 경상도 새끼들은 경상도 정권의 지원아래 경상도만 발전 시키고 전라도는 계획적으로 낙후 시켰으며, 이는 위대한 전라도민이 타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고, 나쁜 경상도 새끼들은 이것도 모자라 타 지역 사람들에게 위대한 전라도민의 인간성을 사기꾼으로 매도하고 폄하시켜서 타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위대한 전라도민을 경계하게 하여 장사, 사업 등의 거래시에 엄청난 피해를 주게 하였다. 이로 인해 위대한 전라도민은 서울 등의 타 지역에서 빈곤층이 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은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이어지는 경상도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고, 타 지역 사람들은 나쁜 경상도 새끼들이 조성해 놓은 지역감정의 노예가 되어 지금까지도 맹목적으로 위대한 전라도민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경상도 새끼들이 만든 지역감정 때문에 사회의 빈곤층으로 전락한 위대한 전라도민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었고, 그래서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기생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경상도 새끼들이 정부, 사회 전반의 지도급 위치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상도 새끼들이 만든 지역감정에서 타 지역 사람들이 깨어나야 한다. 더 나아가 정말로 나쁜 새끼들은 경상도 새끼들이라는 것을 타 지역 사람들이 이제라도 깨우쳐야 한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위대한 전라도가 이번엔 반드시 정권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발전이 균형있게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

 

뭐 이딴 헛소리인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런 태도가 지식인이거나 무식인이거나를 따지지 않고 전라도라면 상하를 막론하고 떠들어 대는 파렴치한 행태란 점이다. 전라도인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전라도의 인성문제를 경상도 탓으로 몰아 붙이는 몰상식한 태도를 보인다.

 

 

과연 전라도에 대한 악평은 그들의 주장처럼 경상도 탓이거나 특정 세력이 전라도를 매도하기 위해 만들어 낸 악의적인 조작에 불과했던 것일까.

 

전라도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평가를 살펴 보기 전에 전라도가 이런 악평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먼저 살펴 보도록 한다. 타지역인들은 전라도의 이런 인성 차별에 대해 거의 제대로 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전라도의 인성문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 문제를 알지 못하는 자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눈뜬 장님에 불과하다.

 

전라도의 인성문제야말로 518 발발의 근본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의 극한의 갈등과 분열의 근원적 뿌리로 작용하는 분열의 핵이며 태풍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1. 인성 차별문제로 인한 전라도민 고통의 실상

 

 

1. 몇 가지 사례

 

전라도 출신으로서 소령으로 전역을 했고 <해소냐 호남독립이냐>, <호남죽이기 정면 돌파>등을 쓴 김환태는 "호남인의 인성 문제야말로 호남인에게 있어서는 죽고 사는 문제"라고 말을 한다. 김환태는 <호남죽이기 정면 돌파> 187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 1984년 우등열차를 타고 출장을 가던 길이었다... 객실 내 승객들이 죄다 똑똑히 들을 만큼 뚝배기 깨지는 듯한 굵은 목소리로 "전라도 놈들은 영 뒤끝이 안 좋아" 소리치자 그 말을 받은 일행 중 한 명은 몇 술 더 떠 "네 말이 맞다. 전라도 놈들은 믿어서는 안돼, 표리부동한 놈들이야" 하고 맞장구를 치자.. 또 다른 일행이 빠지면 섭섭할세라 근질거리던 입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왈 "전라도 놈들은 사기꾼 아니면 도둑놈이야" 하고 아예 막가는 말로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물고를 내었다....

 

객실에 실려 가는 다른 승객들도 누구하나 일어서서 "거 젊은이들 말을 함부로 하고 있네"라는 한 마디 말도 할 줄 모르고 오히려 젊은이들의 말에 공감이 가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어 쳐다들 본다.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혹시 나에게만 우연의 일치처럼 그러한 장면이 부딪혔는가 싶어 주위 호남친구들에게 물어 보니 심심하면 겪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묻긴 왜 묻느냐고 처연한 모습으로 되묻기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전라도 출신이라면 외지에 나와서 누구나 수도 없이 겪고 살았다. 저런 경험은 심심하면 겪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묻긴 왜 묻느냐고 처연한 모습으로 묻는 김환태의 친구의 반응은 전라도 사람이라면 오히려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일이었다.

 

 

 

2009년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이란 책을 쓴 김은식이란 자가 있다.

책 표지에 그는 1973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것으로 적혀 있지만 책 중에서 말하듯이 그의 성장과정을 함께 한 외할머니는 전남 광주 사람이다. 그는 이 책 44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몇 해 건너 한 번씩 명절 때나 볼 수 있었던 나의 어느 먼 친척 할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노총각 외아들의 중매를 부탁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물도 필요 없고 아무 것도 필요 없어. 살림살이도 필요 없어. 그저 숟가락만 들고 오면 돼. 아무 것도 따지는 거 없어. 그저 전라도 여자만 아니면 돼'

 

그리고 두어달에 한 번 쯤 나의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술 한 잔 하러 우리 집에 오곤 했던 조그만 회사를 한다던 어느 마음 좋게 생겼던 아저씨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늘어 놓곤 했다.

'하여간 학벌이고 성격이고 다 필요 없다니까요. 뽑아서 일 시켜 보면, 좋은 대학 나오고 공부 잘했다는 놈들이 더 사고치고 일도 똑바로 안 해요. 그저 정신 똑바로 박히고 인간성 제대로 돼서 묵묵하니 성실한 놈이 최고에요. 그래서 나는 전라도 놈들은 안 뽑아. 거짓말이나 살살하고 좀 키워볼까 생각하고 있으면 뒤통수나 치고 말이지. 천성이 아주 야비하거든요.'"

 

이런 일들은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며 전라도민에 대한 인성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차별의 예는 너무나 많다. 이런 일을 일상으로 겪는 전라도인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전라도인들은 이런 상황을 도저히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할 형편이었으며 그 저항감이란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심정은 80년대에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 518을 야기한 가장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라도 인성문제와 광주사태> http://blog.daum.net/ikdominia/46

 

 

2. 일상생활에 결정적 장애로 작용한 <전라도인>이란 주홍글씨

 

 

 

이런 전라도인에 대한 비호남권의 인성 불신과 차별은 전라도의 사업, 결혼, 친구, 이웃 등 일상생활에 대단히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김진혁의 논문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지역감정 연구>에 의하면 다른 지역민들이 호남인과 가장 같이하기를 꺼리는 일이 사업(39.1%), 결혼(34.6%), 친구(22.3%), 이웃(13.9%) 등으로 나타났다. 김진혁은 사업에 있어서 가장 거부감이 큰 것은 전라도인의 믿기 힘들다고 알려진 인성문제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1989년 고흥화, 김창주의 <군생활이 지역감정에 미치는 영향; 육군사병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더 심하다. 전라도인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군인사병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라도인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 (46%), "친구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50.2%), "사업을 같이 하고 싶지 않다" (50.4%)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전라도 남원 출신인 김환태의 경험을 통해 들어 보자. 그의 책 <해소냐, 호남 독립이냐>(1993년, 쟁기출판사) 293페이지 이하의 내용이다.

 

 

70~80년대에 전라도 출신들은 서울사람이 다 되어서도 전라도라는 잉크자국만 남아 있어도 취업에서 전라도 출신이라는 점이 너무나 큰 장애로 작용했다고 한다. 면접시 "고향이 전라도인가", "전라도 어디인가", "지역감정을 어떻게 생각해" 등등의 불합격을 암시하는 질문을 공공연하게 받았으며 그래도 눈치 없이 성실히 답변을 할라 치면 "우린 전라도 사람 안 써요"라며 핀잔까지 주어 탈락시켰다.

 

 

이 뿐만이 아니라 전라도 출신들은 전라도란 이유로 방을 얻는 문제에서도 "고향이 전라도요? 방 나갔는데..."라는 말을 일상으로 들으며 극도의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육군 대위씩이나 되었던 김환태마저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겪으며 살았던 일이었다.

 

 

게다가 전라도인들은 타지역민과의 결혼에도 정말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비호남인들 중에는 자녀가 전라도 출신과 교제하고 있으면 "부모 자식간에 인연을 끊겠다", "너는 이제 내 자식이 아니다". "어디 사람이 없어서 호남 사람을 사귀느냐"는 등 모진 말까지 들어야 했고, 심지어 평소에는 지역감정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식이 호남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하필이면 호남사람이야..."하며 못마땅해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전라도가 전국적으로 극도로 나쁜 시선을 받고 살았던 점, 확실히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전라도가 이렇게 살았던 모든 이유를 남탓, 특히 경상도와 영남정권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잘못 없는 전라도를 영남정권이 차별하고 희생양으로 이용하기 위해 전라도인들에 누명을 덮어 씌웠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랬을까? 정말 경상도나 영남정권 탓에 전라도가 저렇게 한스런 삶을 살았던 것이고 유시민이 "문제는 전국적인 전라도 혐오증"이란 말을 할 정도로 현재도 전라도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정말 얼토당토 않은 엉뚱한 사람 때려 잡고 남 탓하기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는 미친 개소리의 전형이다. 영남정권 이전인 50년대나 60년대의 정확한 기록에 의하더라도 전라도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 극악했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영남정권 이전 시점과 비교해 지금이 양반임을 알 수 있다.

 

영남정권이 들어서기 전이나 직후의 전라도에 대한 전국적 평가를 살펴 보겠다.

먼저 60년대의 전라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다.

 

 

 

2. 1960년대의 전라도에 대한 평판

 

1. 정병산씨 이야기

 

다음은 초졸 학력으로 검찰 사무관 승진시험에 7전8기로 합격한 전라도 출신 정병산씨의 이야기이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715891).

 

*태어나신 고향은 어디시죠?

"정확히 전라남도 승주군 황정면 임산리입니다."

 

*서울에 내리셨을 때가 몇 년도였나요?

"그 때가 1967년이나 1968년, 그 사이일 겁니다."

 

*그럼 어디서 깨어나셨어요?

"누가 지팡이 같은 것으로 툭툭 건드린 것 같아서 눈을 떠보니까 하얀 두루마기에 갓을 쓴 노인 한 분이 저를 건드리신 거예요.... 그 때 불현 듯 생각난 것이 제가 이발소에서 머리 감겨주는 것을 배운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발소에 가서 머리감겨주는 일을 구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이발소를 가게 되었죠. 그런데 이발소에서 전라도 놈들은 도둑놈이라고 안 써주는 거예요. 그래서 대여섯 군데를 다녔는데도 전라도 사람이라고 취업이 안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서울말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몇 군데를 더 다녀봤더니 한 곳에서 한 번 들어와 보라고 하는 거예요."

 

*이발소 종업원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설움도 참 많을 것 같아요.

"제가 이발소에 취직을 해서도 제가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직 마음을 못 놓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민등록등본과 호적등본을 떼어 오라고 하더라고요."

 

60년대 중반 무렵 이미 전라도 출신들은 서울에서 대여섯 군데를 다녀도 전라도 사람이라고 이발소에조차 취업을 못하고 있었다. 이는 최소한 서울지역에서 전라도민에 대한 거부감이 민중들의 마음 속에 매우 깊이 내면화되어 있지 않았으면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2. 시상으 그런 벱이...

 

계속해서 60년대 초로 간다. 어느 전주 출신 학생이 겪은 실화이다. 월간중앙 1988년 6월호에 실린 글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고흥화의 <자료로 엮은 한국인의 지역감정>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서울의 대학에 합격한 이 전라도 학생은 사글세방을 예약했는데 3월에 다시 상경했을 때 잔금을 치르려 하는 순간 복덕방 할아버지가 집 주인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안된다고 했다는 날벼락같은 말을 한다. 어머니와 함께 솥, 남비, 양은그릇, 김치, 된장까지 바리바리 싸서 상경했던 이 학생. 아는 친척도 없는 서울에서 할 수 없이 선배의 자취방을 찾아 갈 수밖에 없었던 이 학생이 정작 이 순간 가장두려워했던 것은 오히려 다른 문제였다.

 

 

그는 "시상으 그런 벱이 어디 있어, 원 시상으..."라며 연신 야박한 인심을 탓하는 어머니의 입을 틀어 막느라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왜인가. 어머니의 큰 전라도 말씨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 자신들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60년대 초반에 전라도 사람에 대한 서울인들의 인식은 참으로 극악했던 것이었다.

 

 

 

3. 1950년대의 전라도에 대한 평판

 

1950년대로 가도 마찬가지다. 전라도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쁘다. 50년대 전라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너무나도 좋지 못했다. 이 당시 처음으로 전국 8도민에 대한 전국적인 여론 조사가 있었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심리학자이자 심리학계의 태두인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진숙의 <팔도인의 성격에 대한 선입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 지역감정 연구에 있어서 가장 널리 참고로 인용되는 자료이다.

 

 

1. 이진숙의 <팔도인 성격에 대한 선입관념>

 

다음은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진숙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8년 6월~9월 사이에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이다. 이진숙은 이 조사 결과를 그 다음해인 사상계 1959년 12월호에 "팔도인 성격에 대한 선입관념"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했다. 여론 조사의 대상자들은, 남자대학생 238명(서울 문리대,상대,외대생), 여자대학생 160명(이대생), 사병 209명(각 부대의 사병), 장교 148명(각 부대의 장교) 이상 모두 755명이었다.

 

1958년 이진숙의 조사 결과에 나타난 전라도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았다 (기타 미미한 %를 차지한 결과는 생략).

남자대학생.... 간사하다(68.1%) 인색하다(21.9%)

여자대학생.... 간사하다(64.4%) 인색하다(18.1%)

사병... 간사하다(48.3%) 깍쟁이다(16.3%)

장교... 간사하다(64.9%) 사교적이다(20.3%)

 

이진숙은 조사결과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전라도 사람은 간사하다. 남대생 여대생 사병 장교의 이 특성에 대한 선택률은 각각 68% 64% 48% 64%로 되어 있다. 이 외에 25% 이상의 선택률을 가진 특성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라도에 대하여 간사하다는 선입관념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라고 하겠다. 예전부터 운위된 교활한 전라도 사람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입 끝에 오르고 있다.

 

 

또한 서울, 경기, 충청의 세 지역 사람은 예의가 있다거나 경상도의 인심이 유독 남한의 다른 지역과 달리 평안, 함경의 북한인심과 공통된 점이 많다는 점, 즉 무뚝뚝하고 의지가 굳고 고집이 세고 남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등장한다. 경상도는 저 당시부터 무뚝뚝하다거나 남성적이란 인식을 받고 있었으며, 경상도 사나이란 말은 50년대 세간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전라도는 <간사하다>거나 <인색하다> 등 극도로 좋지 못한 인식을 받고 있었다.

 

 

 

2. 하와이 근성 시비, 유엽의 <개땅쇠의 변을 쓴 동기와 그 전문>

 

1959년 강원도 고성출신 시인 조영암의 "하와이 근성 시비"라는 필화사건이 있었다. 조영암은 당시 잡지에 전창근이란 필명으로 "전라도는 간휼과 배신의 표상"이며, "전라도 출신들은 우선 인류권에서 제외해야겠고, 동료권에서 제외해야겠고, 친구에서 제명해야겠기에", "하와이 말살론의 대두를 강력히 촉구한다" 운운의 지독한 글을 썼다가 잡지사가 폐간되는 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당시 전라도 출신 시인 유엽은 조영암의 글과 자신이 그에 대한 답변으로 자신이 썼던 "개땅쇠의 변"에 대해 다시 한 번 상세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가 민족문화 제4권 제8호(1959년 8월호)에 기고한 "개땅쇠의 변을 쓴 동기와 그 전문" 을 한 번 살펴 보면 50년대 전라도에 대한 전국적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매우 정확히 알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울에 올라 와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전라도에 대한 서울주민들과 타도인종의 기질을 잘 알고 있다. 역사적 기원은 소상하게 밝힐 수는 없으나, 우리 전라도 놈들에게 대하는 서울주민들과 타도인종들의 태도란 도리어 전라도놈인 내가 몸서리날 정도다. 워낙 전라도놈이 이중인격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중인격인 전라도놈을 상대하는 서울주민 및 타도인종들이 더 이중 삼중적인 데에 아니 놀랄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 전라도 놈들을 대한 때에는 그네들이야말로 한자락 깔고 교제를 하고 있다. 그것은 그네들이 전라도관에 관한 선입주견이 그리되었기 때문이다. 동좌석을 하고 앉아서 놀다가도 이러서서 나가는 뒤꼭지에 손까락질을 하며 또 하나 전라도놈 내가 남어있는 줄도 모르고 전라도넘 중상이 화제로 꽃을 피운다. 그러다가 내가 역시 전라도놈인 것이 깨닫게 되는 순간에는 너는 전라도 놈이지만 전라도 놈은 아니다 라는 말로써 위무하게 된다.>

 

 

 

 

 

3. 1955년 10월 22일 중앙대 학보 <풍전세류>

 

다음은 1955년 10월 22일 중앙대 학보에 실린 풍전세류라는 글이다. 어느 전라도 학생이 서울에 유학을 와서 느낀 전라도에 대한 극도로 차별적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저 서울양반이란 사람은 전라도인이란 말만 듣고도 몸을 움짓하며 서울사람들이 전라도사람이라면 아주 질색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며 이 전라도 학생은 서울사람에 대해 한편으로는 분개하고, 한편으로는 차별적 시선에 매우 고통스러워 한다. 저 서울양반은 전라도에 대한 어떤 인색때문에 서울사람들이 전라도라면 질색을 한다고 말할까.

 

 

 

서울 사람들은 전라도인들이 주머니가 둘이라거나 능글맛다거나 하는 험담을 하고 있었다.

이중인격에 인격이 능글능글한 사람들이란 악평을 받는다는 것이다.

 

 

 

50년대에 전라도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도로 좋지 못했다. 전라도 출신 시인 유엽은 전라도 사람들이 이미 호적을 세탁해서 고향을 다른 지역으로 바꾸고 살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타지에서 뼈가 굵었던 유엽이 직접 경험했듯이 세간에서 전라도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며 전라도인과는 동석을 하고 놀다가도 전라도인이 나가면 그에 대한 중상이 꽃을 피울 정도였다.

 

기타 사례에서도 전라도에 대한 타지역민의 극도로 나쁜 인식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었다.

 

 

 

 

4. 조선 후기 전라도에 대한 평가

 

 

그러나 전라도에 대한 이런 악평은 해방후에 시작된 문제도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명확한 기록에 등장하는 전라도에 대한 평가도 심각한 악평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1.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 인심편

 

이중환은 택리지 복거총론 편에서 옳은 풍속을 가리지 않으면 자신에게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자손들도 필연적으로 나쁜 물이 들어 훌륭하게 되기 어려우니 반드시 지방의 풍속을 가려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평안도의 인심이 가장 후하고 경상도의 풍속은 가장 진실하나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하고 교활하여 나쁜 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말한다. 전라도는 자식을 키우기에도 극히 좋지 못한 지역임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팔도총론> 전라도편

 

구체적으로 들어가 이중환은 팔도총론 전라도편에서 전라도는 풍속이 노래와 계집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며, 사람이 경박하고 간사하여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기는 지역이라고 한다. 대단한 악평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전라도에 대한 극심한 악평은 이중환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순암 안정복 등 조선시대 대부분의 제왕들과 학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또한 전라도는 과거에 올라 훌륭하게 된 사람의 수가 경상도에 미치지 못한 이유도 대개 문학에 힘써 자신을 이름나게 하는 사람이 적은 까닭이라고 덧붙인다. 그저 먹고 놀기만을 좋아하고 계집이나 밝히는 풍속 더러운 동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중환의 경상도에 대한 평은 완전히 판이하다.

 

팔도총론 <경상도편>

 

이중환은 팔도총론 경상도편에서 옛부터 수천년 동안 장상, 공경과 문장과 덕행이 있는 선비와 공을 세웠거나 절의를 세운 사람 및 선도, 불도, 도교에 통한 사람이 쏟아져 나와서 경상도는 한 마디로 인재의 광이라는 말이 속담처럼 전해 내려 오고 있음을 전한다. 게다가 특히 예안, 안동, 순흥, 영천, 예천등의 다섯 고을에 대해서는 한반도 최고의 지역으로서 한마디로 <신이 알려 준 복된 지역>이라는 극찬까지 덧붙인다.

 

이상 자료; 택리지 (이중환 저, 이익성 옮김; 2007년 을유문화사)

 

2. 성호 이익의 전라도평

 

성호 이익의 전라도 평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호사설 제3권 천지문(天地門) 양남수세(兩南水勢)

 

전라도로 논한다면, 1도의 물이 무등산(無等山) 동쪽의 물은 모두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서쪽의 물은 모두 남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며, 전주(全州) 서쪽의 물은 모두 서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덕유산 이북의 물은 모두 북으로 흘러 금강(錦江)과 합류가 되니, 비유컨대, 머리를 풀어 사방에 흩어진 것과 같아 국면(局面)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재주와 덕망 있는 자가 드물게 나오니 사대부로서는 거지(居地)로 삼을 곳이 못된다.

 

 

성호사설 제8권 인사문(人事門) 생재(生財)

 

 

전라도(全羅道)는 서쪽과 남쪽은 모두 바다이고, 동쪽은 대령(大嶺)이 경계(境界)이다. 사람들은 방술(方術 방사(方士) 술법)을 좋아하고 과사(큰소리치고 남을 속이는 것)를 잘한다. 전주(全州)는 감영(監營)이 있는 곳이다. 장사꾼이 더욱 많아 온갖 물화가 모여든다. 생강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데, 지금 우리나라 전역에서 쓰는 생강은 모두 전주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풍속이 사나워서 나그네가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데, 전주가 가장 심하고, 기질(氣質)이 나약해서 추위와 주림을 참지 못하는 것은 도내(道內)가 모두 마찬가지다.

 

 

 

성호사설 제12권 인사문(人事門) 추악지언(醜惡之言)

 

 

판서 이기(李?)는, “내가 일찍이 선정(先正)에게 들으니, 이같은 추악한 말이 조종조(祖宗朝)에는 절대 없었는데, 연산(燕山) 말년부터 정국(靖國) 초년에 이르러 처음 호남(湖南)의 영광(靈光)ㆍ만경(萬頃)등지에서 시작되어 드디어 사방에 전습(傳習)된 것이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연산 말년에 음란하고 추악한 짓을 자행했으니, 풍속이 나빠진 것은 그렇다 하겠지만, 거의할 즈음에 추매(椎埋)의 무리들이 많이 득세하여 이들이 지위를 차지해 백성들에 임하였으니 풀 위의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쓸리는 것이기 때문에 허물어지듯 악을 따라 차츰 오늘날에까지 이르러서 다시 개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성호사설)

 

 

전라도는 방사와 술법을 좋아하고 큰소리 치고 남 속이는 것을 잘하며, 게다가 풍속이 사나와서 나그네가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 인심 야박한 동네라는 둥 최악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호 이익의 경상도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성호사설 제13권 인사문(人事門) 영남 오륜(嶺南五倫)

 

토풍(土風)으로 말하면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검소하고 사치하지 않으며,

부녀는 반드시 밤에 길쌈하고 선비는 모두 짚신을 신으며, 혼인 상사에 집 형세의 있고 없는 것에 따르고, 붕우와 친척이 도와주어 전복하고 유리하는 환을 면하며, 백성은 모두 토착하여 농사를 짓고 교활한 도적이 일어나지 않으며, 국가에 일이 있으면 솔선으로 난에 임하여 죽고 사는 것을 따지지 않으며, 만일 글을 읽고 도리를 말하여 그 행검과 재능이 밖으로 나타나는 자가 있으면 또한 옷깃을 여미고 스승으로 높이지 않음이 없으니,이것이 후한 풍속, 즐거운 땅, 인의(仁義)의 시골이다.

 

 

 

 

 

3. 다산 정약용의 전라도 평

 

전라도에서 살았던 다산 정약용 역시 경상도는 극찬했으나 전라도에 대해서는 매우 좋지 못한 평가를 하고 있었다.

 

 

정약용은 조선 팔도 중 경상도가 가장 장원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대부의 존귀함과 부유함이 줄지를 않은 곳이라 극찬했다. 이는 다른 역사적 평가들과도 동일한 것이다. 조선시대 어떤 사료에서든 영남은 가장 찬양받는 곳이었다. 정약용은 그 다음으로는 호서, 즉 충청이 좋다고 했다.

(자료; 택리지, 이중환 저, 이익성 옮김; 2007년 을유문화사)

 

그러나 전라도에 대해서는 완전히 판이한 평가를 하고 있다. 전북 남원 출신의 김환태는 <해소냐 호남독립이냐> 128페이지에서 정약용마저 호남은 풍속의 질박함이 없어 뛰어난 가문이 서넛밖에 없다고 악평했다며 분개하고 있다.

 

 

어찌 분개할 일이겠는가. 실제로 전라도에서 살아 가장 전라도를 잘 아는 정약용이 전라도의 풍속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그냥 그저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인 것이다. 역사적 평가는 그저 진실의 기록일 뿐이다.

 

 

 

4. 순암 안정복의 전라도 평

 

안정복은 그의 저서 임관정요 풍속장에서 팔도인의 인성 특징에 따른 교화방법을 이렇게 서술한다.

자료; 김환태, <해소냐 호남독립이냐> 127페이지

 

역시 전라도는 거짓 성실한 척한다는 등 기교를 부리고 진실되지 못하다는 평가가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전라도가 거짓되고 사람을 속이는 일에 능하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

 

 

 

5. 외국인 선교사들의 전라도 평

 

그럼 외국인 선교사들이 본 전라도는 어떤 지역이었을까. 다음은 샤를르 달레가 저술한 <조선교회사 서론> 1966년판 240페이지의 내용이다. 이 책은 천주교에 대한 조선의 박해가 시작되었던 1593년부터 마지막 박해가 끝나던 1871년까지 약 280년간의 선교 과정을 모아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판된 저서이다. 이전에는 우리나라를 전혀 알지 못했던 여러 프랑스 성직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직접 보고 들은 생생한 경험을 모아 편찬한 귀중한 자료이다.

 

 

북쪽의 두 도, 특히 평안도 사람들은 다른 조선사람들보다 더 굳세고 더 미개하고 더 사납다. 그들 중에는 양반은 매우 적고 따라서 벼슬아치들도 매우 적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들을 왕정의 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그들을 소중히 다루면서도 엄중히 감시하고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노상 두려워하고 있는데, 반란이 일어나는 날에는 진압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황해도 사람들은 옹졸하고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매우 인색하고 신의가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경기도, 즉 수도가 있는 도의 주민들은 경박하고 지조없고 사치와 쾌락에 빠진다. 전국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그들이다. 조선사람들의 야심, 탐욕, 낭비, 사치 등에 관한 우리가 앞서 말한 것이 특히 들어 맞는 것은 그들이다. 거기에는 높은 벼슬차치와 양반과 학자들이 매우 많다.

충청도 사람들은 모든 점에서 경기도 사람들와 비슷하고, 그 정도만이 보다 적을 뿐 그들의 장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전라도에는 양반이 적다 그 주민들은 다른 조선사람들로부터, 버릇없고, 위선적이고, 교활하고, 자기들의 이익만 구하고, 덕만 볼 수 있다면 언제고 가장 타기할 만한 배반행위도 서슴지 않고 할 사람들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경상도는 성격이 딴판이다. 그 주민들은 훨씬 수수하고, 풍속의 부패가 덜하고, 구습은 보다 충실히 지켜지고 있다. 사치도 적고 엄청난 낭비도 적다. 그러므로 조그만 유산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같은 집안에서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상속되어 간다. 문학연구는 다른 데보다도 왕성하며, 흔히 젊은이들은 하루 종일 들에서 일한 뒤에 밤에는 늦도록 글을 읽는다. 신분 높은 여자들도 다른 도에서처럼 엄중하게 갇혀 있지는 않다. 그 여자들은 낮에 계집종과 함께 외출하지만 아무런 모욕도 아무런 실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불교, 즉 석가모니의 종교가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경상도이다. 그들은 그들의 미신에 매우 집착하여 개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 번 기독교도가 되는 날엔 그들의 신앙은 끝내 단단하여 변함이 없다. 이 도에 매우 많은 양반들은 거의 다 남인에 속하고, 이 역사책에 자세히 적어 놓은 마지막 혁명 이래로 현관과 공직에 참여치 못하고 있다.

 

 

외국인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전라도 역시 대단한 악평으로 일관되어 있다. 다른 역사 기록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고 침뱉고 버릴 배반행위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라고까지 한다. 도대체 더 이상의 나쁜 평가를 생각할 수는 없을 만큼 전라도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특히 그 배신하고 믿을 수 없는 인성에 대해서 그러했다. 그러나 경상도에 대한 평가는 조선 팔도 그 어느 지역과 달리 극찬의 연속이었다. 경상도에 대한 극단적인 호평과 전라도에 대한 극도의 악평은 역사서 그 어디를 보더라도 동일한 기록들이었다.

 

 

 

5. 조선 전기 전라도에 대한 평판

 

1. 세종대왕의 전라도 평가

 

 

이런 전라도에 대한 평가는 조선 전기에도 전혀 다르지 않다. 조선조 최고의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은 전라도에 대해 산수가 배치하여 쏠리고 인심이 지극히 험하지만 인심이 험악하다고 억지로 편복을 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89권,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4월 4일(을해) 2번째기사이다.

 

편복을 가한다는 것은 곤장으로 두들겨 팬다는 말이니, 인심이 험악하다고 억지로 두들겨 팬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의미는, 이미 세종대왕도 전라도에 대해 극히 좋지 못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2. 성종대왕의 전라도 평가

 

아래 자료는 송정현, <호남지방의 역사적 낙후 원인> (전남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의 일부이다. 성종대왕이 전라도의 인심에 관하여 하문하며 맹현과 이극기의 답변하고 성종이 대답하는 말들이다.

 

 

 

전라도는 인심이 박악하여 떼도적이 일어 나고 하극상의 풍조가 있으며, 풍습의 교화를 위해서는 백년이 아니면 고칠 수가 없는 정도라고 했다.

 

또한 전라감사로서 전라도를 직접 다스리고 겪었으며 예조판서를 지낸 이극돈은 성종 13년 임금에게 전라도의 풍속을 이렇게 전했다.

 

 

도내의 인심이 강한하며 토호들은 무뢰지도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어서 범죄자들의 종적을 수사관이 쫒아 가도 무뢰지도들이 숨겨 주어 잡을 수가 없는 곳이 전라도라고 한다. 전라도의 인심과 인성, 기풍이 매우 좋지 못함은 대단히 일관된 평가였다.

 

또한 당령 전미는 성종대왕에게 전라도의 풍습에 대해 이렇게 상소했다.

 

 

도적은 악질이며 세간에서 호남에는 절도는 없고 강도만 있다고 하며, 귀신을 숭상하고 정조관념이 박약하여 인륜을 어지럽히는 일이 허다하고, 저축의 관념이 희박하여 풍년에는 서리를 다하나 흉년에는 유리걸식하며, 하극상의 풍조가 심하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일은 타도에는 없고 오로지 전라도에만 있는 풍속이란 것이다.

 

 

 

6. 전라도는 누구에게 책임을 돌렸어야 했나.

 

먼저 본인들에게 돌렸어야 했다. 그게 맞는 거였다. 전라도가 밖에 나와서 인심을 잃은 것은 그 누구 남탓이 아닌 바로 본인들의 탓이었기 때문이다. 전라도는 자신들이 억울하게 모략을 당한 선량한 민주시민일 뿐이라고 우기지만, 자신들을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모조리 이상한 게 아니라면 꼭 그렇게만 우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단 광주의 범죄율을 한 번 보자. 민주 성지라는 광주의 범죄율은 실제로 정말 높다. 전라도 사람들, 외부에 어떻게 보일까에 병적으로 신경쓰지만 남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민주 성지 광주의 범죄율은 정말로 높다. 이건 518이 그저 숭고하고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전라도에 대한 인성 차별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1) 광주는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5대 범죄 발생률 전국 1위 오명 (2009년 8월 31일)

절도는 전국 1위, 강도는 인천에 이어 전국 2위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43&aid=0002001442

 

2)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추악한 범죄 강간을 비롯해 인구 10만명당 절도, 아동실종율 역시 최근 3년간 전라도 광주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2006년~2008년)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483

 

 

3) 2010년 2월 4일 발표된 열람대상 아동 성범죄자의 비율 역시 광주 전남이 단연 1위였다. 인구 100만명당 열람대상 아동성범죄자수는 전남이 16.2명으로 가장 많았고 광주가 14.0명으로 뒤를 이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2024433

 

4) 특히 광주는 13~18세 범죄피해에 있어 전국에서 단연 독보적이어서 금품, 폭행, 협박, 폭력범죄 1위에 절도, 사기, 소매치기 등 재산범죄 역시 19.51%로 전국 평균(8.16%)의 2배를 넘는다. 무엇보다 성범죄 피해는 전국 평균 4.86%에 비해 광주·전남은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전남이 15.91%, 광주가 15.38%로 전국 1·2위를 기록했다(2009년 2월 19일)http://media.daum.net/society/nation/jeolla/view.html?cateid=100009&newsid=20090219100223126&p=yonhap

 

 

5) 학교 폭력도 광주가 단연 전국 1위이며(2009년 9월 21일 기사)http://news.nate.com/view/20090921n06269?mid=n0403

 

6) 인구 10만명당 조폭수도 전북의 25.3명에 이어 전남이 24명으로 2위를 차지(2006년 10월 20일)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43&aid=0000041891

 

조폭의 전국 평균 수는 10만명당 10.3명인데 전북과 전남은 그 더블스코어를 훨씬 상회한다. 숫자는 경기도가 782명으로 가장 많지만 10만명당 비율은 7.2명,서울 470명도 10만명당 4.6명, 부산 346명도 10만명당 9.5명으로 전남과 전북의 절반에조차 현저히 미달하는 수준이다.

 

다음해인 2007년에도 거의 동일하다. 광역시·도별로는 경기도가 29개파 910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서울 23개파 500명, 전북 15개파 488명, 광주·전남 15개파 477명 등의 순이지만, 인구 10만명당 비율은 여전히 사이 좋게 전북 1위, 전남 2위 (2007년 5월 17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227301

 

 

7) 2006년 10월 종합 범죄율, 광주 1위 오명을 얻었다. 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0846781&cDateYear=2006&cDateMonth=10&cDateDay=23

 

 

8) 게다가 광주는 2년 연속 교통사고율 전국 최고 오명까지 기록했다.(2009년 3월)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others/view.html?cateid=1001&newsid=20090310025404684&cp

 

솔직히 다른 광역시도 중 이런 지역 전국 어디에도 없다. 민주시민들의 범죄율이 이렇게나 높다는 거, 이거 이상하지 않나? 민주 성지면 뭐 정의롭고 선량하고 뭐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야 되는 거다. 한 지역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의롭고 순수한 민주시민이면서 동시에 이런 추한 범죄율이 전국 최고를 기록하는 지역이라는 현실은 부합할 수 없다. 이건 이상해야 정상이다. 이건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천년의 인성차별에 반발해서 들고 일어선 일이라는 충분한 방증이 될 수밖에 없다.

 

 

 

7. 모든 것을 경상도 탓으로 돌린 전라도

 

그 어떤 역사적 평가를 보더라도 전라도에 대한 악평과 그 인성에 대한 전국적 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라도는 이 인성에 대한 극악한 차별과 악평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수십년 전에 집권한 영남정권과 경상도, 그리고 불의했던 대한민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이 극단의 분열과 늪에서 질척대며 한 발짝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대한민국 분열과 갈등의 근원이 된 <전라도의 인성문제>란 것이다. 물론 전라도도 자기네끼리 이야기할 때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전라도인들이 외지에 나가서 인심을 크게 잃은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내심은 자신들의 인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이런 극단적 상황이 되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 역시 차별을 겪으며 비호남인들에게 밉보여 후손들까지 눈물을 흘리도록 한 호남 조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들이라고 이런 생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일상적으로 겪고 보는 전라도인들 아니겠는가. 본인들이 잘 아는 것이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그러한 인식을 완벽하게 감춘다. 절대로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남탓이라고 외친다. 실제로 전라도 사람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면 모든 전라도 사람들이 <전라도>란 한 마디로 도매금에 넘어 가 모두가 좋지 못한 시선을 받을까봐 너무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탓을 남에게 돌리며 자신들이 천년 이상 인성에 대한 멸시를 받은 원인을 모조리 수십년밖에 안된 영남 정권과 경상도 탓으로 돌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벌이고 있다.

 

아래 그림은 호남대 비호남의 지역감정과 전국적 전라도 차별에 전라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매우 잘 보여 주고 있다. 김진혁의 논문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지역감정 연구> 7페이지의 일부이다.

 

 

이 그림은 호남대 비호남의 지역감정에 전라도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단적으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차별받던 전라도는 모든 책임을 경상도로 돌리고 있다. 그 시초를 알 수 없는 전라도 차별의 지역감정으로 전국적으로 두들겨 맞고 망망대해를 하릴없이 떠다니던 전라도는 현대사에 정권을 잡은 영남이란 핑곗거리에 전라도 인성차별 근원의 화살을 돌리고 죽자살자 물고 늘어지는 형편인 것이다. 위 그림은 이런 전라도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호남대 비호남의 지역감정은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시점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이것이 정확한 팩트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은 전라도의 인성에 대한 불신과 차별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전라도는 오직 남탓, 경상도 탓만을 하고 있으며, 이 문제가 오늘날 대한민국 분열과 갈등을 낳은 태풍의 핵인 동시에 영호남 지역감정의 근본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말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다. 전라도에 대한 인성차별과 이에 대한 전라도의 어이 없는 남탓하기가 대한민국을 끝없는 혼란과 아수라장으로 몰아 넣고 있는 대한민국 불행의 근원적 핵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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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과 전라도 차별, 그 뿌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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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정치적 대결, 그 이후 계속된 군사정권의

>영향을 꼽는 듯 하다. 박정희의 개발독재시대에 영남만 발전시켰으며 군사정권

>시절엔 숙적인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유포시켰다는 설이다. 즉 지역

>감정은 대한민국 건국이후인 60-70년대에 날조되었다는 주장이다.

>

>

>

>하지만 이번 네티즌 논쟁중에 네티즌들에 의해 새롭게 제기된 이론들은 무시하지

>못할만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

>

>

>흔히들 전라도 차별의 발원지로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를 많이 언급한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그의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10가지의 유훈이라는 이 훈요

>십조는 서기 943년 그가 눈을 감기 직전 가까운 신하였던 박술희를 불러 훈요십조를

>전하면서 그 8조에서 "차현 이남과 금강 아래의 사람들은 배역을 하니 벼슬을

>주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사 태조 26년 4월 조).

>

>

>

>여기까지는 일반인들도 많이 알고 있는 내용이고 이에 대해 조작설을 제기하는

>등 전라도 사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

>

>

>그런데 이번 "지역근성 논쟁"중에 몇몇 네티즌들에 의해 핵심사료인 조선왕조실록에

>전라도에 대한 비하 내용이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듯 하다.

>

>필자가 직접 몇몇 사료들을 검색해본 결과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말하는 경우는 물론 직접 임금의 입을 통해서도 전라도 지역의 풍속과 인심

>에 대해 걱정을 하는 대목을 많이 볼 수 있다.

>

>

>대체적으로 당대 선조들은 전라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실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이다.

>

>

>

>### 성종이 전라도 관찰사 허침에게 유시하기를 "전라도의 풍속은 본래부터 강한하다

>고 하는데, 비록 사명이 있다하더라도 거의 두려워하고 꺼리지 아니하여 전자에 여러

>번 간사하고 난폭한 행동이 있었으니 엄하게 법을 다스려서 풍속이 각박한 것을 돌이

>켜 후한 데로 돌아가게 하라."

>

>

>

>### 김수손이 또 아뢰기를, “전라도에 음란한 풍속이 크게 성행하여 지아비가

>없는 여자 수십 명이 떼를 지어 사찰에 돌아다니며 놀면서 선음하며 혹은 아내를

>놓아 남을 주어서 의식의 밑천을 삼고 예사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니, 이 풍속이

>점점 젖어들어서 충청도에까지 미쳤습니다. 청컨대 엄하게 금하소서.”

>

>

>

>### 윤필상·윤호는 의논하기를,“전라도 백성들의 풍속은 다른 도와 비교할 것이

>아니어서 옛부터 성질이 완악(頑惡)하였으니, 다만 미천한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품관의 무리들도 시골에서 세력을 부리어 긴 울타리를 설치하고는 양민과 다른 사람의

>노비를 숨겨 두고서 약탈하여 다른 사람에게 팔고 있습니다."

>

>

>

>### 임금이 이극배에게 이르기를,“전라도의 풍속이 어떠한가? 내가 들으니 백제의 남은

>풍습이 아직도 없어지지 아니하였다는데, 그러한가?” 하니, 이극배가 대답하기를,

>“신은 구치함에 급하여 자세히 방문하지 못하였습니다마는, 듣건대 서로 죽이는 것을

>가볍게 여긴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이것은 진실로 큰 일이다. 사람이

>서로 죽이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법(法)이 있다고 하겠는가?”하였다.

>

>

>

>### 이맹현이 말하기를,“전라도는 인심이 각박하고 악하여 도둑이 무리져서 일어나고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능멸하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풍속은 백년 동안 교화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으므로, 임금으로서는 마땅히 염려해야 하니, 무릇 강상에 관계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있으면, 작은 일이라도 용서하지 말고 이런 풍속을 엄하게 징계하는 것이

>적당합니다.”하니,

> 임금이 말하기를, “전라도는 옛 백제의 땅인데, 백성들이 견훤이 남긴 풍습을

>이제껏 모두 고치지 못하였으므로, 그 풍습이 이와 같은 것이다.”하니,

> 이극기가 말하기를,

> “견훤 이후로 고려 5백 년을 지내고 조선조가 되어도서도 거의 1백 년이 되었으나,

>남은 풍속이 아직 없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다 완악하니, 명심하고 교화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가상하게 여겨 받아들였다.

>

>

>

>### 예종에게 성숙·성준·성건이 전라도에 횡행하는 도적의 횡포에 대해 상소하기를

>하물며 전라도 한 도(道)는 본래 백제의 옛 땅으로 인심이 박악하기가 다른 도의 배나

>되니, 만약 엄하게 다스리지 않는다면 금제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

>

>

>### 전라도 관찰사 안침(安琛)이 연산에게 아뢰기를,

> “본도는 인심이 음란하고 간사하여 남자는 여복으로 변장하고 무당의 버릇을 익혀

>사족의 가문을 출입하면서 노래와 춤으로 신을 즐겁게 한다 하며 주야로 그치지 아니

>하고, 여자는 음탕한 놀이를 좋아하여 산사를 돌아다니므로 패속이 막심하오니, 청컨대

>엄중히 금하게 하소서.”

>

>

>

>### 전라도 관찰사 김당이 중종에게 서장을 올리기를,

> “이 고을은 민심과 풍속이 몹시 완악(頑惡)하고 아전들이 횡포(橫暴)하여 그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새로 임명하는 수령은 위엄과 명망이 있고, 밝고 바른 사람을

>골라서 보내소서”

>

>

>

>### 전라도 재상 어사 장옥이 와서 복명하니 임금이 인견하였다.

> “전라도는 풍속이 거센 고장입니다. 염치를 모를 뿐 아니라, 사람 죽이기를

>닭이나 개를 죽이듯이 하고 수령을 깔보며, 또 남의 무덤을 파내는 것을 보통

>일로 생각하므로, 감사의 뜻은 반드시 경관을 청해다가 국문하여 조정이 경동하는

>뜻을 보이고자 합니다.”

>

>

>

>### 사헌부에서 명종에게 아뢰기를

> “더군다나 전라도는 인심과 풍속이 다른 도와 크게 달라서 무뢰배들이 친고라

>칭탁하여 청탁과 공갈을 하여 폐단을 일으키고 열읍의 수령이 응접하니 그 후폐가

>백성들에게 미칠까 염려됩니다 .”

>

>

>이와 같이 조선 당대에 조정에서는 전라도에 대해서 일관되게 풍속이 완악하고 인심이

>박악하므로 사고 다발지역으로 분류하고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이것을 당시의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그러한 정치적 맥락밖에서 실록을 기록하는 사신마저 자기 개인의견을 주석으로

>첨가할 때 당대 전라도에 대한 시대인식이 어떠한가를 반영해 보여주고 있다.

>

>

>

>###【사신은 논한다. 이는 비록 전라도 풍속이 야박하고 악한 때문이기는 하지만,

>필시 그 사람이 세력을 믿고 방자한 짓을 하여 원한 맺는 일을 한 소치가 아닐 수

>없으니 그렇다면 그 사람의 행동도 따라서 알 수 있다.】

>

>

>

>세종대왕 마저 “전라도는 산수가 배치하여 쏠리고 인심이 지극히 험하나,

>인심이 험악하다고 해서 억지로 편복을 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이니 조선시대에도 전라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인 것이 당대의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

>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북한지역까지 포괄하여 통치했고 경상도는 중앙의 통제를

>받는 변두리 지방에 불과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호남 지역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전라도에 대한 차별은 있어왔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

>

>

>과연 그 당시의 전라도 차별이 오늘날보다 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록에 기록된 전라도의 평가는 매우 과격하고, 부정적인 것 일색이라서

>오늘날의 특정지역에 대한 폄하는 그 원류가 군사정권이나 박정희는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전라도 지역의 풍습이 '완악'해졌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

>

>

>거기에 해방 이후 전라도 인구의 수도권으로의 급속한 유입이 이루어지면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이 지역사람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르거나 기존 지역민들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영남지역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김대중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을 펼치면서

>오늘날의 지역감정의 신화가 탄생한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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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구(冠岳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남부에 있는 구이다.

지명은 지역의 명산인 관악산에서 따왔으며, 면적은 29.57km제곱으로 서울에서 5번째로 넓으며 인구역시 53만명으로 서울의 5번째로 많은 지역이다.

이런 관악구가 서울 속의 “작은 전라도”로 불리우며 서울의 홍어존, 전라도 해방구로 불리우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서울에 위치한 관악구는 태생적으로 전라도와 연관이 없어야 정상인 것이다.

대체 어떤 이유로 관악구는 전라도 해방구가 되었을까?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농업으로 한계를 느끼던 전라도인들이 꾸역꾸역 서울로 상경하기 시작했으며 그 집결지가 바로 관악구였다.

처음 서울로 올라온 전라디언들은 막노동하거나 음식점이나, 노점상을 했으며 (시장 상인의 절대 다수가 전라도)

일부는 객지에 와서 먹고 살기 위해 사기치고 범죄 저지르고, 뒤통수치며 서울에서 살아간다. 깡패도 많았다. (모 검사출신 변호사 말에 의하면 잡힌 깡패들 90%가 전라도 출신)

당시 전라도 사람들의 악명은 어마어마했으며 기존 서울에 살던 사람들은 뒤통수치고 돈떼먹고 도망간다는 이유로 전라도 출신을 이발소에서도 안 받아줬고, 방도 안 내줬다고 한다.

때문에 전라디언들은 돈도 없고, 세들 집이 없어서 청계천이나 산기슭에 무허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다. 청계천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던 전라도 사람들은 1970년대 청계천일대가 재개발 되자 은평구나 광진구, 마포구로 찢어졌으며 산기슭이 많은 관악구에 대거 몰려와 무허가 건물을 짓기 시작한 전라도 사람들은 끝까지 빈촌을 형성했는데 봉천동 고지대, 신림 6동, 2동, 9동, 난곡 이쪽은 도저히 ‘집을 지을수 없는’ 산의 2부능선 경사에 꾸역꾸역 집을 지어서 결국 자기땅으로 만든 곳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농성하며 버티면서 재개발 보상금을 타먹기도 한다.

관악구하면 빼놓을 수 없는 “호남향우회”. 23만명을 자랑하는 이들은 관악구에 처음 기어들어온 전라디언들의 모태일 것이다. 실거주자가 아닌 친인척 유동인구까지 따지면 실제 관악구에 전라디언들은 70% 육박한다고 보면 된다.

전라도의 정치색에 따라 관악구도 자연스럽게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다. 민주당 대표인 한광옥 3선, 이해찬이 5선을 지낸 곳이며, 비민주당 계열에서는 한나라당 김성식이 2008년도 총선때 관악 갑에서 당선된것이 20년만에 처음이었다고 한다.

 

관악구에는 100m 간격으로 전라도 음식점이 있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심심찮게 전라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다.

 

관악구는 전국에서 성폭력범죄도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관악구와 전라도의 싱크로율은 성범죄 발생율로 증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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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도 태어난 곳은 경남 김해이지만, 본관이 전라도 광주 노씨이고, 문재인 역시 태어난 곳은 경남 창원이지만, 전라도 나주 남평 문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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