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푸틴은 평양과 모스크바에서 각각 「조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한다는 부분이었다. 남북 경제협력에 이어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된다면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김정일도 이 계획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 답방 1년 만인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 지역을 다시 방문해 조러 모스크바 선언의 이행 문제를 협상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북한 체제의 한계 때문에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러시아는 건설 의지가 확실했고, 한국은 언제라도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국 철도를 연결하는 수송로를 열고 컨테이너나 석탄과 같은 중량 화물을 수송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를 어느 정도 직선화하고 터널과 교량도 많이 건설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되어 철도 현대화가 진행되면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했다.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북한 군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스스로 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부대 이전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개성 공단 건설 때도 군부는 새로운 주둔지를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 군부는 당연히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과 부대 이전을 반대했다.


부대 이전만 해결해 주면 되는 문제였지만 북한은 그렇게 할 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김정일이 군부의 반대를 물리치지 못한 이유다. 동해안 철도 현대화 계획은 자연히 힘을 잃었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의 하산부터 함경북도 나진항까지의 철도만 현대화하기로 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과 러시아는 아직도 한반도 종단철도 수송로 창설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구글 어스를 통해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북한의 동해안 철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비행장이 수없이 많다. 지금도 북한은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이 가능한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물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동해안에 무수히 산재한 부대 이전 비용까지 부담한다면 말이다. (태영호 증언 p.140~142)




동해안에 산재해 있는 비행장들과 군부대 전부이전해야만 가능

돈으로 때우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