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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萬春만춘(봄)개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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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로 인한 내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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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700백년의 안시 安市를 위협하는 강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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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개격파 당하는 천리장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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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원조 없이 홀로 성을 지켜야 하는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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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
천책상장( 天策上將 즉, 하늘이 내린 장수)
이라 불렸던 그는 전쟁에서 한번도 져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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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세기 645년 3월9일 
태종이 죽기 4년전 
그는 제1차 고당전쟁을 선포했다 그가 고구려를 침력하는 이유에는 자치통감 은 이렇게 전한다. 

“요동은 본래 중국의 땅인데 수나라가 네 번의 군사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지금 동방을 정벌해 중국 병사들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사방이 평정됐는데 오직 이곳(고구려)만이 버티고 있다. 짐이 더 늙기 전에 그대들의 힘을 써서 고구려를 빼앗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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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군대는 총 4개부대를 나누어서 진격 하였는데 각자 출발 날짜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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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첫 선발대는 
돌궐 제1제국과 투르크계 유목민족 설연타를 멸망시킨 당나라 최고 군부수장 이세적
요동로 행군 대총관이(고구려 침략군 육군 대장)되어 기병 보병 6만을 거느리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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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당나라가 요서에서 요동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요서 요동에 기준이 되는 요하라는 큰 강을 건너야 한다 당시 큰 대군이 이강을 건널수 있는 길은 총3개 였다 남도 중도 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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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라수착(파란색) 중도 회원진 (빨간색)북도 통정진(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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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굳게 믿고 있었던 거대한 자연장애물 
요하
고구려는 당나라 군대가 요하를 건너기를, 도하 하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앞선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루트는 중도를 택하여
 요동성 오골성 평양성으로 가는 루트였다 
그리고 침략 1년전 당나라는 계속해서 중도를 택하여 고구려 땅을 2번 정찰 하였고 고구려 첩자에게서도 당나라가 중도로 향해 진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중도로 통하여 곧장 보이는 요동성 반경으로 대부분의 병력을 매복시켜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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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세적 군대는 중도(회원진)로 가는척 하면서 북도(통정진)로 곧장 진격 하기 시작했다
그 기만책의 성공을
자치통감 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세적의 군사가 유성(柳城)을 출발했는데, 형세를 많이 벌려 놓아 마치 회원진으로 나가는 것처럼 하면서 숨겨서 용도(甬道)로 나아가서 고구려가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나아갔다. 여름 4월 초하루 무술일에 이세적은 통정(通定)에서 요수(遼水)를 건너 현토에 이르니 고구려에서 크게 놀라 성읍에서 모두 문을 잠그고 스스로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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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군 크게 당황하며 우왕자왕 하며 요동군 일부를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이세적 군대는 4월 1일 아무저항 없이 요하를 건넜다 그리고 바로 현토성을 공격하였고 요동도 부 대총관 이도종(이세민 조카)에게 신성을 공격하라 지시했다
그리고 같은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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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기병부대 영주 유성 도독 장검은 흉노의 기병으로 이루어진 기병을 이끌고 빠르게 남도를 이용해 요하를 건너
이세적 군대로 인해 우왕자왕한 고구려군 수천을 죽이고
이도종과 같은날 4월5일 각각 
요동 남쪽 건안성과 요동 북쪽 신성을 공격을 시작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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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부분 점령

파란색 부분 견제


5월12일 수군부대 장량이  요동 중도 방어를 위해많은 군사를 차출당한 난공불락 요새 비사성을 쉽게 함락한다

5월10일 황제 친정군 부대가 중도로 이용해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5월17일에 함락한다 이때 이세적과 장검은 황제의 안위를 위해 건안성과 신성을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고 요동성 공성전에 참여한다 그후 함락시키지 못한채 군사를 나누어 계속 견제만 하게 된다 6월 1일 전군이 백암성을 함락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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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당군들의 모습 기병이 입고있는것이 명광개 초기 버전)


6월 4일 당 군부들이 황제와 회의를 시작하 였다
이유는  안시성이었다. 그 성을 건너뛸 것인지 아니면 뽑아내고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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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통감’은 당 태종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안시성은 험하고 군사도 날카로우며 그 성주도 재주와 용기가 있어 막리지가 어지럽힐 때에도 성을 지키면서 복종하지 않아 막리지가 이를 쳤으나 떨어뜨릴 수가 없어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요동성과 백암성이 이미 함락됐고, 건안성까지 뽑히면 안시성은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고립된 성의 함락은 시간문제다. 병법’에 이른바 성에는 공격하지 않아도 될 것도 있다고 한다.”

안시성 공격에는 막대한 시간과 인적 물적 자원이 소모될 것이 불 보듯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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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적의 말은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는 북쪽에 있으며 우리 군사들의 양식은 요동성에 있는데 지금 안시성을 건너뛰어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만약 도적(고구려군)들이 우리들의 (군량) 운송로를 끊게 된다면 장차 어찌 합니까? 먼저 안시성을 뽑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안시성이 떨어지면 북을 울리며 가서 건안을 빼앗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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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안시성 대첩이 있게 되었다

6월20일 안시성에 도착 하지만 다음날 6월21일 고구려 연개소문의 구원군 15만이 안시성 반경 30km 지점 주필산에 도착했다 하지만 6월 23일 주필산 전투에서 패했다 

(그후 당군은 7월이 되어서야 비로서 안시성에 대한 제대로된 공격을 시작한다 주필산에 패한 남은 고구려 군대들이 대로 고정의 지시하에 계속해서 군량미를 차단하는 위협을 가해 건안성을 아예 공격할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개인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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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프로모션때 찍은 감독과 배우들



감독 김광식 

감독왈


"한국영화에서는 처음 보는 비주얼을 구현하기 위해 막판 총력전 중이다."



역사적 실 인물  



당태종 이세민: 박성웅 (주)


연개소문: 유오성 (조)



허구적 인물  : 


양만춘 조인성 (이건 반전이 있음 소설 책에 나옴)


사물 (연개소문 밀사+학도병) 남주역 (주)


추수지 (안시성 짬 부관) 배성우 


파소(안시성 기병대장) 엄태구


백하(양만춘 동생+안시성 여군 대장) 설현 


풍(안시성 검도사관 )박병은 


활보(안시성 부월(도끼)수장?)오대환 


우대 (안시성 노동조합대표 )선동일


시미 (안시성 신녀) 정은채 


소벌도리(안시성 촌장) 장광 


달래 (안시성 설현 부관) 이정아


눌함 (안시성 병사)김욱


안시성은 8등신들만 들어갈 수 있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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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사진

빨간색이 토산 파란색이 성벽이 있던 정문부분


안시성에는 해자의 흔적이 없다. 하지만, 산성이라 공성기를 성벽으로 가져가기 쉽지 않다. 안시성은 성벽의 90퍼센트 이상이 산 위의 토벽이다. 당군이 공성기를 동원해 집중 공격을 할 수 있는 곳은 낮은 성의 정문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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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이 안시성 부근에 도착한 것은 645년 6월 20일이었다. 

자치통감을 보면 당태종에게 항복한 고구려 장군 고연수와 고혜진이 안시성 사람들의 사투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안시성 사람들은 그 집안을 돌보고 애석해하면서 스스로 싸우니 (안시성을) 쉽게 뽑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골성의 욕살(褥薩)은 늙은이여서 굳게 지킬 수 없으니, 군사를 옮겨서 아침에 그곳에 다가가면 저녁에 이길 것입니다.”

이어 지역 본부인 오골성이 함락되면 주변의 여러 작은 성들은 저절로 항복할 것이고 군대를 몰아 압록강을 건너 평양으로 나가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당태종의 신하들도 모두 찬성했다. 하지만, 황제의 처남인 장손무기가(당나라 최고 실권자)반대했다


안시성은 8월 당시까지 요지부동이었다. 

황제는 토산을 쌓았고 비가 내린 8월 어느 날이었다. 태종의 조카 이도종과 그 부관 부복애(傅伏愛)가 자리를 비운사이 토산이무너지고 고구려군이 토산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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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모공(謀攻) 편에서는 성을 공격하는 일이 최하의 방법이라고 했다. “토산을 만드는 데 다시 3개월이 필요하다. 그 위에, 혈기에 넘치는 장군이,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해 병사를 개미떼처럼 성벽에 기어오르게 함으로써 성을 공격해 병력의 3분의 1을 죽이고도 성을 함락시킬 수가 없다면, 이는 재앙이다.” 손자의 이러한 지적이 안시성에서 재현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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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 9월 18일 당태종은 철수를 선언했다. 연개소문의 공작 성공으로 전선은 고구려의 안시성에서 몽골리아로 옮겨갔다. 연개소문의 사신이 설연타 부족을 움직여 당을 침공하게 되었다

그당시 설연타 부족의 왕이 죽고 당나라 이세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둘째아들에게 연개소문이 투자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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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은 몽골 초원에서 645년 12월 14일부터 이듬해 2월 2일까지 체류하면서 설연타 토벌전쟁을 지휘했다. 고구려 정벌을 방해한 설연타에 대한 철저한 보복이 이뤄질 터였다. 645년 12월 25일 설연타 다미가한의 침공은 저지됐다. 이어 이듬해인 646년 1월 8일 하주(夏州) 도독 교사망(喬師望)·집실사력이 설연타를 격파하고 2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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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시성> 김광식 감독, "시대적인 배경이 과거일 뿐 전쟁영화를 구현한다"

시놉시스_ 645년.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 받은 권력자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은 요동정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의 수장 연개소문과 대적하기도 전, 대수롭지 않다고 여긴 안시성이 발목을 잡는다. 당시 연개소문(유오성)에게 반역자로 낙인찍힌 안시성 성주 양만춘(조인성)은 인품과 전투 지략을 두루 갖춘, 백성들의 영웅이다. 양만춘은 연개소문의 비밀지령을 받고 안시성에 침투한 병사 사물(남주혁)과 시시때때로 침략을 전개하는 이세민의 군대 사이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한다. 기마대장 파소(엄태구), 검도수장 풍(박병은), 여군 부대의 수장 백하(설현) 등의 헌신과 함께, 나라가 버린 양만춘이 나라를 구하는 88일간의 사투가 시작된다.

영화는 안시성을 리얼하게 고증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고구려의 정신을 보여주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안시성은 가장 고구려적인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지난해 개봉한 <남한산성>을 비롯해 규모가 큰 액션 사극 장르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안시성>의 새로움과 도전 지점은 무엇인가.
=내 접근 방식은 ‘사극 액션’ 영화다. 시대적인 배경이 과거일 뿐, 전쟁영화를 구현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사극 액션물이 캐릭터에 중심을 두다가 마지막에 전투를 펼치는 구조라면, <안시성>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할까를 중점으로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전쟁과 인간이 한데 놓여 있을 때 그 안의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다.  
(응 명량 처럼 카타르시스 좀주고
 허구인물 많이 넣어서 신파극으로 돈벌거야 제작비 180억이라  순익분기점 넘어야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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